살아있어 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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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어 아름다운 풍경
  • 육정숙 시민기자
  • 승인 2004.12.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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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동물 또는 식물, 이들 모두는 삶의 양상들이 제각기 서로 다르지만 그들에게서 갓 태어난 어린 생명들을 보고 있으면 연약함속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이른 봄 언 땅을 헤집고 솟아나는 노란 연두 빛 싹에서, 짐승의 어린 새끼나 아기들의 생생한 눈빛에서 우리는 삶의 기운을 느끼는 동시에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토실한 엉덩이를 실룩이며 장난치는 아기돼지들을 보면서 꿈이 아닌가하고 내 팔뚝을 꼬집어보았다. 분명 살아있었다. 온통 돼지들의 수다로 시끌벅적한 농장은 이제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가을 햇살도 바람도 모두 살아있어 작은 바람에도 나뭇잎은 환희로 너울거린다.

아기돼지들이 건강하게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본 지가 얼마 만인가! 실로 아득했다. 살아있어 뛰노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따라 생생한 모습이 되어간다. 지나가던 맑은 햇살이 돼지우리 안을 기웃거리다 환하게 웃는다. 난산의 후유증이 컸는지 어미는 어린것들에게 젖을 물린 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평온해 보였다.

‘어느새 어미가 되었구나!’

몇 년 전 우리농장은 돼지질병이 들어와 많은 돼지들을 땅속에 묻어야했다. 여러 해당기관에서 조사를 하고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 투여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텅 빈 돈사엔 찬바람만 어정거렸다.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서있는 내 가슴으로 피멍울이 맺혔다.

멀리서도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우루루 몰려와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꿀꿀거리며 난리를 피워대던 녀석들은 온데간데없고 생생하게 빛나던 까만 눈동자들만 밤하늘별처럼 내 가슴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아기 돼지들이 있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나보다. 살아남았기에 기뻤지만 사료마저 구입 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은 내 마음을 칼바람으로 매질했다. 배가 고프다고 말도 못하는 저들은 힘없이 꿀꿀거리며 내가 이리가면 이리 따라오고, 저리가면 저리 따라 다녔다. 애원하듯 바라보는 그들의 처량한 눈빛을 끌어안고 나는 목 놓아 울었다. 돼지가 굶는 날엔 같이 굶었다.

그렇게 자란 아기돼지가 이젠 어엿한 어미가 되어 분만을 한단다. 못 먹여 키운 탓 일까? 그 딱한 것이 난산이란다. 분만유도주사를 놓았어도 별 반응이 없다. 난산일 경우 자궁 속으로 팔꿈치까지 손을 넣어 갓난 돼지를 빼내야 어미나 새끼, 모두를 살려 낼 수 있다 한다. 농장에 계신 아저씨는 내 팔뚝이 자기보다 가늘다고 새끼를 빼내 보자 한다. 팔이 가늘수록 어미에게 무리가 덜 간다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태초의 생명체가 숨쉬는 그 신의영역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했더니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단다. 질병으로 죽어가던 아기돼지들을 생각하면 무엇은 못할까 싶었다.

수월하게 들어 갈수 있도록 내 팔에 젤을 바르고 천천히 아주 조금씩 자궁 속에 손을 넣기 시작했다. 괜스레 내 아랫배가 뻐근해지는 것 같더니 알싸한 통증까지 느껴졌다. 농장 아저씨는 눈썹도 까딱 않고 들여다보고 계셨다. 기분이 묘했다. 공연히 내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라 눈을 감고 촉각만 곤두 세웠다.

미지의 세계, 그 어둠의 동굴은 뜨끈하면서 미끌한 감촉이 촉촉했다. 내 팔을 조여 오는 압박감만 없었다면 손끝으로 전달되는 알 수 없는 평온감에 아마도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 즉, 태초의 아득한 본향에 대한 그리움의 소산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손이 돼지의 자궁 속에서 휘둘러대니 그 아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게다. 내 몸 안에서도 뭔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아 자꾸만 나는 몸을 비틀었다. 그럴 때마다 내 팔의 움직임이 커서 어미돼지는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며 버둥대더니 호소하듯 참혹하게 울부짖었다. 거친 숨을 토해내고는 이내 실신하듯 신음소리만 허공으로 뱉어냈다. 생살 찢어내는 아픔이다. 순간 뾰죽한 물체가 손에 잡혔다. 갓난돼지의 송곳니였다.

어미돼지에게 조금이라도 통증을 덜 주기 위해, 오감을 손끝으로 모았다. 내 손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작은 생명체의 촉감이 가슴 가득히 감동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그 길은 좁고 너무 멀었다.

좁은 길에서 조여 오는 팔은 손가락 감각을 마비시켜, 송곳니를 여러 번 놓치는 동안 어미돼지는 거의 혼절한 상태였다.

출혈의 아픔!

큰 아이를 출산 할 때의 고통이 되살아나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얘야, 정신 차려라’ 다급한 어머니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타게 부르짖는 어머니 모습만 희미하게 보일 뿐!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하늘이 노래지고 모든 만물들의 호흡이 순간에 정지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숨조차 멈춘 듯 주위는 고요함이 머물러 정적에 쌓여있다.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하는 가장 엄숙하고 숭고한 시간이었다. 생살 찢어지는 듯 한 통증이 오더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아가의 첫울음소리가 들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갓난돼지가 내손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와 찬란한 햇살아래 서 있는 기분이다. 직원 아저씨는 녹초가 되어 있는 날보고 “아니 산모는 따로 있는데” 하며 웃으신다. 아저씨는 수건으로 갓난 돼지의 코와 입 주위를 닦아내고 녀석에게 초유를 먹게 했다. 젖을 먹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고통을 함께 했기에 더욱 사랑스러웠다. 그 녀석을 가슴에 안으니 뜨끈한 그 무엇이 뭉클함으로 솟아올랐다.
어미에게 가슴을 설레게 하고 살아 갈 수 있도록 희망을 가져다주는 것은 화려한 보석이 아니라 갓 태어난 생명체들의 꼬물거리는 모습이다. 이는 어미들이 죽음의 고통으로 얻어낸 생명이기에 이토록 신성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젖을 물리고 누워 있는 어미와 아기돼지들이 포근하고 정겨워 보였다. 어떤 녀석은 어미 배를 밟고 오르기도 하고, 젖꼭지를 물고 길게 늘이기도, 놓기도 하다가 쭐쭐 빨기도 하고, 아기돼지를 배 밑에 깔고 누워 젖을 먹는 녀석도 있었다. ‘사람의 자식인지 돼지 새끼인지’ 나 혼자 뇌까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삶의 여정은 첼로의 음률처럼 감미롭기도 하고 때론 눈보라와 폭풍우속에서 갈갈이 찢기고 바서지는 처절한 모습일 때도 있는 것이었다.

그 녀석들이 다 자라면 사람들의 식탁을 위해 떠나보내야 한다. 왜 하필 미물로 태어나 이런 인연으로 만났는지 마음만 저리고 아플 뿐, 낸들 달리 방도가 없지 않은가!

사람은 사람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그 삶의 방식이 달라 결국 돼지는 돼지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세상만물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울면서 태어나 사는 동안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 역시 결국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런 것이 다들 삶이라고 했다.

그래서 살아있어 아름다운 풍경임을.

노을빛이 농장의 하루를 접어가고 있다. 아쉬움에 타는 붉은 빛이 아니라 내일을 잉태한 그 그리움으로 저토록 황홀하게 타오르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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