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시인 정지용 “북행 비화” 글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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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시인 정지용 “북행 비화” 글 충격
  • 경철수 기자
  • 승인 2005.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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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월호 김태운의<실화>글 인용
“거제도 포로 박창현은 시인 정지용(?)”

향토 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정지용이 한국전쟁 당시 박창현이라는 가명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담은 증언의 글이 발견 돼 충격을 주고 있다.

   
월간 중앙은 2월호에서 1954 당시 탐사보도 자유기고로 유명했던 김태운씨가 시사 종합월간지 <실화> 1954년 6월호에 실었던 ‘포로 되었던 시인 정지용, 그의 이북행 비화’라는 제목으로 감춰진 얘기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김태운은 정지용이 첫째, 북의 붉은 치하에서 자수하러 갔다 체포됐다는 설과 둘째, 이후 북으로 끌려가 폭격으로 죽었다는 두 가지 치열했던 당시 논쟁과 소문을 시작으로 정지용의 행적에 따라 새로운 사실을 소개했다.

△다른 좌파 문인들과 달리 한사코 북으로 가지 않았던 지용이 6.25때 자수하고 전향 △좌파 문학가 동맹이 한국전쟁 때 재남(남에 잔류하던 문인)파와 보련(보도연맹)계를 주축으로 문화공작대에 소속△문화공작 임무를 7월 낙동강전투에 강제 투입△8월 왜관 인근 ‘트리 오 트리’ 전투에서 인민군이 패퇴해 인민군에 생포 △군속 노무자 박창현이라는 가명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 △소제부 거쳐 취사반장으로 생활하며 술과 번민으로 허송세월 △북행이냐 남 잔류냐의 귀로에서 고뇌하다 자신의 죄 값을 치를 방도가 없다고 판단, 북 선택 등이 그것이다.

또한 필자는 “당시 북행을 택했던 영자 포로 명단에서 1933년생 강원도 신고산 출산의 박창현 이라는 이름이 있었다”며 “시인 모윤숙이 지용을 찾기 위해 거제 포로수용소를 뒤졌으나 가명 박창현으로 생활하고 있어 찾을 길이 없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최태응은 “납북문인 정지용의 비극’<사상계, 1962년 12월호>에서 ‘정지용이 강제 납북돼 영어 선전방송을 하다 유엔군에 붙들려 갔다는 얘기가 있다라는 풍문이 귀를 의심케 했다”라고 담고 있어 이야기의 신빙성을 다소 의심케 하고 있다.

정지용의 북행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이슈가 됐다고 한다. 49년 9월 <이북통신>이 ‘지용 월북’ 제하의 실은 것이 발단으로 지용이 직접 찾아 다니며 오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서울 휘문의숙(휘문고의 전신)을 나온 지용은 일찍이 월북한 이태준의 1년 선배로 역시 월북한 시인 오장환의 스승이었다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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