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box안에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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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box안에 들어가고 싶다!’
  • 육정숙 시민기자
  • 승인 2005.02.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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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거리를 떠나지 못한 낙엽들이 매서운 겨울바람에 수선을 떨며 몰려다니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스산하다.

아들이지만 어느 딸 못지 않게 내가 힘들 때마다 상냥하게 엄마를 이해하고 따라 주었던 녀석인데 훌쩍 군 입대를 하고나니 허전하고 쓸쓸했다.

군에 입대 하던 날! 나를 문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빠른 동작으로 문을 닫고 가는 아들의 뒤를 따라 배웅을 했을 때, 뒤도 안돌아 보고 손만 번쩍 들어 흔들어 주고 가던 아들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겨울에 집 떠나 있으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더 추운 법이거늘...
그리움이 몰려와 아들의 밥그릇에 청수 한 그릇 떠놓고 불 밝히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온한마음으로 대처 할 수 있도록 간절함으로 기도도 드리고, 아들이 자던 방에 이불을 펴놓고 따스한지 이불 속에 손도 넣어보고 아들의 사진도 어루만져 보았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청년이라면 누구나 다녀와야 할 곳인데도 나만, 아니 내 아들만 군대 보낸 것처럼 서운하고 안쓰러웠다. 이 추위를 어찌 견디려는지, 식사는, 힘들다는 훈련은 등등 이것저것 생각하니 울컥하니 가슴으로 파도가 인다.

‘아들아, 해가 뜨고 달이 떠도 네 생각으로 꽉 차 있단다. 오늘도 무척 춥구나! 이제부터 추위 견디며 훈련받으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허나 가장 아름다운 청춘, 젊음이 있어 능히 이겨내리라 믿는다.’

유리창너머로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따듯한 방안에서도 온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스웨터를 껴입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하필이면 이때 추울까!’

그때 바람소리에 묻어 온 주홍색 오토바이 한대가 아파트 문 앞에 멈추어 섰다. ‘집배원 아저씨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갔다. 그사이 집배원은 일층인 우리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누가 군대 갔나봅니다. 마음이 우울 하시겠어요. 그런데 날씨가 추워......”
“네, 고맙습니다.”
빠르게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상자를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마음은 바쁜데 손은 왜 그리도 더딘지 테이프로 마무리된 부분을 한참만에야 뜯어서 열어보니 아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왔다. 옷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남도 다 보내고 잘 다녀오는 군대건만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인데 그것이 왜 그리도 안쓰럽고 서운 한건지 모르겠다.

아들 녀석도 할 이야기가 많은가보다 상자 안이건 밖이건 공백 란만 있으면 빽빽하게 적어 보냈다. 군에 입대한지 겨우 일주일 밖에 안됐다.

이제 시작인데...
그새 그리움이 인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상자 안에서 양말이며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기다가 보니 가슴이 무너지는 한마디의 글귀가 물기어린 시야로 들어왔다.

순간,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아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얼마나 그리움이 짙었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제 옷가지가 부럽기까지 했을까!

오늘은 어떤 일도 손에 잡힐 것 같지가 않았다. 녀석의 옷가지들을 보듬어 안고 멍청하니 앉아 오랫동안 아들이 던져놓은 그 한마디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엄마 이 box안에 나도 들어가고 싶다!
box안에 들어가고 싶다.
box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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