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뿐인 민주지산 삼도봉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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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 뿐인 민주지산 삼도봉 화합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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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등산객들이 ‘봉’이 된 사연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민주지산은 충북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여름 피서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물한계곡을 끼고 있는데다 원시림의 자연미를 갖춰 등산인들에게 더없는 산행코스로 인기가 높다.

   
▲ 민주지산 정상에서 본 석기봉, 삼도봉쪽 겨울 능선.
특히 해발 1241m인 민주지산 정상을 중심으로 주변에 석기봉(1200m) 삼도봉(1177) 각호산(1176) 등이 장대하게 솟아 지리산 못지않은 산세를 이룸으로써 최근들어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민주지산은 1998년 4월 1일 육군특전사 장병들이 훈련도중 혹한으로 집단 죽음을 당하는 바람에 대대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삼도봉은 충북 영동군과 경북 김천시, 전북 무주군 등 3도가 경계를 이뤄 지난 1990년 삼도봉 대화합탑이 건립된 후 매년 10월 10일을 기해 화합의 기념행사가 열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자리에서 3개 시·군은 우애를 한껏 다지며 대외에 크게 홍보해 왔다. 그런데 충북의 많은 등산객들은 삼도봉 화합은 허울 뿐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민주지산에 올랐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빈발하는데도 지금까지 그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충북의 등산인들은 민주지산을 찾을 때 대부분 상촌면 물한계곡 쪽을 택한다. 이곳으로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주된 코스는 민주지산 정상에 올랐다가 석기봉 삼도봉을 거쳐 하산하는 것과, 우선 삼도봉에 오른 후 능선을 따라 민주지산 정상까지 갔다가 하산하는 것이다.

문제는 먼저 민주지산 정상에 오른 후 삼도봉 쪽으로 향하다가 하산하는 경우에일어 난다. 민주지산은 전반적으로 이정표가 부실하다.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등산객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빠진다. 3개 도가 접경하는 만큼 아차 실수라도 하면 처음 출발지와는 엄청나게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하산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은 해발 1200m의 석기봉으로, 충북 등산인들이 이곳 우회등산로를 타다가 영동 물한리 계곡쪽이 아닌 무주군 설천면 쪽으로 하산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것. 이런 일은 날씨라도 안 좋게 되면 더욱 많아진다. 민주지산은 시간에 따른 기후변화가 심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엔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석기봉 정상을 피하고 안전 산행을 위해 우회등산로를 택한다.

이 때 십중팔구가 무주군 지역으로 잘못 하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날씨가 대체로 흐려 민주지산 정상부근에 눈발이 날린 지난 5일에도 영동 물한계곡쪽에서 올랐다가 이렇게 무주군 쪽으로 잘못 하산한 충북 등산객이 3팀이나 발생, 곤혹을 치렀다.
등산객들이 이런 착각을 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는 하산로에 이정표가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 한 곳에라도 이곳으로 내려 가면 무주군이라는 이정표 , 예를 들어 ‘→무주’라는 푯말 하나라도 있으면 등산객들이 무주로 향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게 된다.

무주쪽으로 잘못 하산한 충북 등산인들의 봉변은 하산 이후에 더 가관이다. 무주군쪽 마을인 설천면 대불리 불대마을엔 이처럼 잘못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표적으로 개인택시 호출 번호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버스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영동 물한계곡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 거리가 자그마치 45㎞나 돼 택시 한 대당 5만원이상의 요금을 받는다.

등산객들의 입장에선 꼭 덫에 걸린 것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곳 무주군 불대마을 주민들이 등산객을 마주칠 때 처음 던지는 말은 “또 속았군”이다. 반면 5만원을 내고 45㎞를 달려 영동 물한리에 도착하면 이번엔 이곳 주민들이 “또 당했군”으로 비아냥댄다.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영동군 설천면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노익현씨는 “날씨가 궂은 날엔 잘못 내려 오는 등산객이 특히 많다. 어느 땐 단체팀이 잘못 내려 와 버스를 동원해 영동 물한리로 후송하는 경우도 있다. 단체보다는 초행인 개인 등산객들의 실수가 잦다. 오죽 했으면 아예 택시 호출번호를 달아 놨겠는갚라고 말했다.

무주 설천에서 영동 물한리로 가기 위해선 중간에 해발 800m의 큰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눈이라도 많이 오는 날엔 이동을 못하고 꼼짝없이 묶이게 된다. 지난 5일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한 회사원 김모씨(35·청주시 흥덕구 사직동)는 “내려 오는 길에 이정표가 없는 산은 여기 밖에 없을 것이다. 주민들의 얘기를 들으니까 한 두사람이 당한 게 아니다. 택시비 5만원도 아깝지만 만약 날씨가 안 좋은 늦은 시간에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되겠나. 이곳에서 훈련중이던 군인들이 사망했다는 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더라. 매년 삼도봉에서 화합을 다진다는데 이런 일을 경험하고나니까 원망스럽기가 그지 없더라. 도중에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면 영락없이 낙오해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다. 올해는 3개 시군이 많은 돈 들여 겉치레 행사하는데만 신경쓰지 말고 그 돈으로 이정표라도 세웠으면 한다”고 흥분했다.

일각에선 택시 영업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이정표가 훼손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무주군측은 이를 부인했다.

이에 대해 영동군과 무주군 관계자는 서로 관할부터 따지며 책임을 전가했다. 문제의 석기봉도 산 정상을 기점으로 영동군과 무주군으로 각각 주소 관할지가 나뉜다. 영동군 관계자는 “내려 가는 쪽이 무주군이기 때문에 그 쪽에서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고, 무주군측은 “현재 영동군에서 입장료를 받기 때문에 당연히 영동군에서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영동군은 물한리 계곡의 등산로 입구에서 입장료 500원과 주차료 2000원을 각각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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