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인사사건은 은폐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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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인사사건은 은폐가 기본”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5.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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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출신 홍기영씨가 바라 보는 28사단 총기난사사건

축소하고 숨기고 왜곡하고...
8명의 젊은이를 순식간에 앗아간 육군 28사단 총기난사 사건은 여전히 국민들에게 많은 의문으로 남는다. 군 자체의 조사 결과가 여러번 바뀐데다 사건 당시와 사후 조치등 그 진행과정이 일반인의 상식을 많이 벗어나기 때문이다.

   
▲ 홍기영씨.
결국 국방장관이 사임을 표하고, 꼭 20년전인 85년에도 같은 부대에서 8명이 희생되는 총기사건이 있었지만 은폐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군 인사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 때 천주교 인권위원회 산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했던 홍기영씨(40)는 “충분히 예상된 진행상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현재 청원군 오창면 다살림영농조합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홍씨는 “사건 자체도 그렇지만 사후 조사와 발표를 지켜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금방 들통날 일인데도 사실을 숨기면서 계속 말을 바꾸는 과정이 그러했다. 조사가 미흡한 점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 군대에선 숨기려 한다. 군대 하면 철저한 집단이라고 우선 생각할텐데 사실은 이렇게 엉성하고 모순 투성이다. 그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홍씨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의문사위원회) 상임활동가로 일한 것은 2001, 2002년 약 2년간이다. 군의문사위원회는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의 한 획을 그은 고 김훈중위 사망사건이 계기가 됐다.

“너희들, 운동권 때문에...” 죽도록 맞아
가톨릭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던 홍씨는 소위 운동권 출신이다. 그 역시 군사정권의 녹화사업에 의해 강제입대후 전방인 강원도 고성에서 85년부터 87년까지 군생활을 했다. 당시의 기억에 대해 홍씨는 “아무리 잊고 싶어도 내가 살아 있는 한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3년간 엄청나게 맞았다. 당시 무슨 조사명목으로 군정보기관에서 요원이라도 나오면 그날은 말 그대로 죽는 날이었다. 일종의 벼랑에 걸쳐 설치한 화장실에 하루종일 세워 놓고 가혹행위를 해댔다. 밑에선 멧돼지가 인분을 받아 먹고 있었는데 여기서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툭하면 비상이 걸렸는데 그 때도 너희들 때문이라며 윗사람에게 숱하게 맞았다. 한희철(서울대) 등 여러 운동권 출신이 이 즈음에 군대에서 죽어 나갔다.”

   
▲ 충북대에 마련된 희생자들의 분향소. 충북대에 재학중이던 故 조정웅, 박의원상병은 학교생활도 건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씨는 군제대 후 벤처기업에 입사, 많은 돈도 벌고 집도 샀지만 어느날 ‘이게 아니다’ 싶어 군의문사위원회에 자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욕은 좋았지만 사생활을 완전히 포기할 정도로 힘든 생활이었다. 2002년 그가 경기 안양의 모 예비군부대에서 당한 일은 당시 언론의 주요 뉴스가 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부대의 체육대회에서 구타사건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나가 녹취 등을 하는데 갑자기 이곳 부대장이 총을 겨누며 “다 놓고 나가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무려 36시간이나 감금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사건을 계기로 군에선 자체 내규를 제정, 민간인의 부대 방문에 아예 재갈을 물렸다. 부대를 방문하더라도 녹음기나 촬영기가 금지되고 유가족 중에서도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군수사는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
홍씨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총기 난사사건을 이렇게 진단한다. “군 부대에서 인사사고는 치명적이다. 특히 비전시 상황에선 인사사고는 끝이라는 말로 통한다. 그나마 자살이나 단순 사고사 같은 경우는 적당히 봉합되지만 타살 혹은 이번처럼 집단 참사가 빚어지면 그 지휘관은 무조건 중징계 내지 옷을 벗는다고 봐야 한다. 부대의 지휘관 입장에선 승진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건이 터지면 일단 덮기에 급급하다. 이번에도 초기 발표가 헤맸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홍씨는 군부대 인사사고에 대한 자체 조사는 구조적 모순 때문에 한계라는 비판도 가했다. 군헌병 수사지휘권이 해당 부대의 지휘관 즉 사단장에 있는데다 군검찰의 인사권마저 역시 지휘관이 쥐고 있어 원천적으로 소신있는 조사나 수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종종 언론에서도 다뤄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홍씨는 또 이번 28사단 사건에서 동료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난사한 병사를 컴퓨터게임 매니아 등 일종의 인격 미수행자로 부각시킨 것에 예리한 분석을 내렸다. “군대에서 인사사고가 나면 일단 특정 병사의 일탈로 몰아 간다. 예를 들어 정신 이상자의 소행쯤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다. 군 내부의 구조적 문제점이나 군기와 지휘체계의 이상이 부각될 경우 역시 지휘관의 문책이 따르기 때문에 이렇게 특정 병사의 군생활 부적응으로 사건을 조작한다. 이번 28사단 총기사건에 대한 조사도 처음엔 이런 전례를 답습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군당국의 발표가 매일 바뀌었다고 본다. 사건 당일 병사들이 청소년 축구를 봤냐 안 봤냐 하는 것도 그렇다. 만약 최전방의 병사가 규정을 어기고 심야시간에 축구를 봤다면 이는 당장 지휘관에 불똥이 떨어질 중대사안이다. 일반인들에겐 TV를 보고 안 보고가 무슨 문제가 되겠냐만 우리나라 특수집단인 군대는 똑같은 사안인데도 이런 한계가 있다.”

군대문화 근본적 변화절실
홍씨는 군위문사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일단 사고가 나면 정상적인 병사들에게도 무한한 압박이 가해짐을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사실이 아닌 진술 내용을 맞추기 위해 병사들에게 끊임없이 똑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각본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 때문에 이번 사건의 진상도 좀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완벽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전히 잔존하는 군대내 폭력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런 해석을 내렸다. “군에선 능률만을 위하다 보니까 폭력이 묵인되고 있다. 사실 모든 일을 일사분란하게 처리하는 데 강압이나 폭력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적어도 외형상으론 그렇게 비춰진다. 그러나 이는 구시대적 발상이고 더 이상 안 통한다. 우리군대도 이젠 조직의 합리적 원칙과 논리 즉 메뉴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예를 들어 부대를 평가할 때 꼭 훈련에서 1등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병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인적 구성의 시스템화 즉 마인드의 결합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를 간과하면 이번과 같은 사건은 또 얼마든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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