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된 아이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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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된 아이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5.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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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에 빈곤가정의 아이들 방치된 현실 개선하자” 중론
추모비 건립에 이어 서울에서 촛불집회 계획중
‘은희야 미안해’ ‘밝은 세상에서 꿈을 펼치렴’. 지난 16일 진천군 진천읍 진천교회에서는 故 최은희양 영결예배가 있었다. 교회 제단 위에는 은희에게 바치는 흰 국화가 수북히 쌓여 있고, 친구들이 은희에게 건네는 마지막 글귀가 아프게 다가왔다. 은희는 청주시 봉명동 호프집 여주인 등 3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김 모씨(39)에 의해 성폭행 당하고 처참하게 죽어간 13세짜리 초등학교 어린이다. 이 자리에는 은희가 다녔던 학교 친구들과 교사, 학부모, 교회 및 공부방 친구들 150여명이 참석해 은희의 영혼을 위로했다. 참석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범인에게 무참히 살해되어 꿈 한 번 펼치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 은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 진천교회에서는 6월 16일 고 최은희양 영결예배를 열고 불쌍한 영혼을 위로했다.

벌써 잊혀진 사건
은희는 지난 5일 밤 10시경 진천 백곡저수지 근처에서 범인 김씨에게 성폭행 당하고 목졸려 숨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씨가 범행을 자백한 것이 지난 14일이어서 이 날 장례예배가 치러졌다. 은희는 진천교회에서 운영하는 진천지역아동센터 ‘한나공부방’에서 줄곧 보살핌을 받아 왔다. 은희는 그동안 살인범 김씨를 ‘삼촌’이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은희 아버지 최 모(31)씨와는 고향 선후배 사이이며 둘은 괴산군 서부리 출신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사건 전에도 가끔씩 김씨가 은희네 집에 들르곤 했다는 것. 공부방 교사들은 김씨가 은희네 집에서 자고 간 지난 5월에도 은희 몸에 이상한 흔적이 있어 성추행 내지 성폭행을 의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가 은희를 죽이고 경찰에 잡히기 전까지 5일 동안 은희 아버지가 김씨와 숙식을 함께 하며 진천에서 괴산 등지로 다닌 행적과 딸의 장례예배 때도 나타나지 않고 교회측에 유골도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것에 대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범인과 모종의 뭐가 있는 게 아니냐’ 면서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두 사람은 고향 선후배 사이지만 최씨는 김씨에게 억압당하고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최씨는 김씨가 다녀간 뒤 은희가 없어져 ‘형이 무슨 일을 저질렀구나’하고 직감했지만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혹시 김씨가 자신의 딸에 대해 말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5일 동안 같이 다녔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도 최씨를 범인은닉죄로 입건하지 못했다”며 “세 명의 여자들을 죽이고 난 뒤 파묻고 비가 온다고 한밤중에 나가서 꾹꾹 눌러 주는 등 범인의 행동은 매우 엽기적인 데가 있다. 이런 사건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경기 연천군 총기 난사사건,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사망사고, 김천호 충북도교육감 돌연사 등 최근 안타까운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져 은희양 사건이 벌써 잊혀지고 있지만 고은영 목사는 “은희가 단순히 연쇄살인범에 의해 희생된 아이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기회에 빈곤가정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고, 앞으로 어떤 대안들이 마련돼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북지역의 여성계와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에서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으로 여론화시키는 작업을 진행중에 있다.

과제는 지역아동센터 기능강화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20일 ‘빈곤아동에 대한 범죄 피해 예방과 보호를 위한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 사건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방치된 빈곤 아동이 성폭력과 살해의 위협 앞에 얼마나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피해 여아는 18세의 나이로 아이를 출산함으로서 자녀양육과 사회적응 능력이 없어 10여년 동안 자녀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아버지, 어린 자녀를 버리고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병들고 늙은 할아버지, 어린 동생과 살아가면서 영양·정서·지능 등 모든 요소가 결핍된 상태에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어 “이 어린이는 진천지역아동센터와 자활후견기관의 도움으로 급식, 방과후 보호를 받으며 최소한의 혜택을 받았으나 집으로 돌려보내진 상태에서 가해진 위협은 보호되기 어려웠다는 점 또한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긴급 피신과 보호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아동센터가 위협에 놓인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는 너무 많은 한계가 있고, 1~2명의 교사가 50여명의 아이들에 대한 학습지도와 급식을 하면서 개인의 가족상황을 파악하거나 성폭력 위협을 인지할 수 있는 전문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부는 각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하는 방과후 정책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하고 조정하기 위해 ‘학령기 아동보호 및 교육지원에 대한 기본법’을 제정하고 충북도와 청주시는 이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여 지원예산을 편성할 것, 지역아동센터의 기능을 강화하고 성폭력 예방교육 및 가족에 대한 상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추가지원 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상담교사 파견과 성폭력피해 아동을 위한 쉼터 마련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실제 한나공부방에 다니는 한 여자 어린이는 3년간 친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왔고, 12세 아이는 동네 할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공부방에서는 동네 할아버지를 고발해 구속까지 시켰다는 것. 이 어린이도 공부방에 쉼터가 없어 다른 곳에서 운영하는 곳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진천교회에서는 지난 22일 ‘은희의 하늘정원 만들어주기’ 행사를 열고 은희의 유골과 소품을 교회 앞마당에 묻는 한편 추모비도 세웠다. 충북지역 여성계와 교회 및 공부방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날 행사는 은희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열렸다. 그리고 오는 29일경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에서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어서 빈곤가정의 아이에 대한 문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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