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은영 진천교회 목사
“부모 보살핌 못받는 아이들 언제나 성폭행에 노출”
상태바
인터뷰/ 고은영 진천교회 목사
“부모 보살핌 못받는 아이들 언제나 성폭행에 노출”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5.06.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98년부터 교회안에서 ‘진천지역아동센터 한나공부방’을 운영해온 고은영 진천교회 목사는 방과후에 돌봐줄 부모가 없는 빈곤가정 어린이들을 보살펴 왔다. 교사 2명과 함께 학습지도를 비롯해 밥 먹이기, 생활상담, 방학 때 야외활동 같이 하기 등 인근에서 몰려오는 50명의 아이들에게 부모나 다름없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연쇄살인범한테 아까운 목숨을 뺏긴 은희도 이 공부방에서 6년 동안이나 얼굴을 맞대고 지냈다.

그래서 고 목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잘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할 말이 없다.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는가. 은희는 엄마가 3살 때 가출하고 아버지가 직업도 없이 떠돌아다녀 주로 할아버지, 동생과 함께 살았다. 우리 공부방에 오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였고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가정의 여자 아이들은 언제든 성폭력에 노출돼 있어 항상 주의깊게 살펴 보았다. 토·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방과후~저녁 6시까지 공부방에서 선생님과 즐겁게 생활해온 은희는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이다. 어린 동생들을 업어주기도 하고 잘 데리고 놀았다. 지금도 은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은희가 어느 날 밤 갑자기 없어진 뒤 진천 백곡저수지 인근의 야산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까지 불길한 예감에 마음을 졸인 그는 처음부터 연쇄살인범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털어놓았다. “연쇄살인범하고 은희 아빠가 사건이 있던 당일 교회로 은희를 찾으러 왔다. 그래서 이상한 예감이 들어 은희의 행방을 추적하니 집에 간 것으로 확인이 돼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그 날 밤 10시경 범인이 은희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백곡저수지 근처에서 성폭행한 뒤 죽인 것이다. 집으로 간 뒤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우리가 손쓸 수 없다는 것이 정말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평소에도 공부방에서는 아이들이 무사히 아무 일 없이 자고 다음 날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체 발굴 현장에서 은희의 시신이 들 것에 실려 나오는 것을 보고 교회 관계자와 공부방 교사들이 울자 언론에는 ‘오열하는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됐으나, 은희는 결손가정의 아이로 외롭게 저 세상으로 갔다며 울먹였다. 자신을 위해 울어 줄 가족 한 명 없는 은희가 불쌍해 견딜 수 없다는 고 목사는 그 끝에 시골의 빈곤가정 어린이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여자 아이는 성폭행에, 남자 아이들은 아동학대에 아무런 울타리없이 방치돼 있다는 것이다.

“쉼터와 전문상담사 배치 시급”
그는 “아동학대와 성학대, 성폭력 사건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런 아이들을 상담할 수 있는 전문상담가가 없다. 그래서 1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전문가가 와서 아이들을 상담해주고, 이런 사건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 또 가정에 문제가 생겨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쉼터도 있어야 하고, 아이들을 상담한 뒤 요보호 아동으로 분류되면 부모가 원치 않아도 강제적으로 지역아동센터에 맡기도록 하는 강제규정도 필요하다”며 “공부방에서는 오죽하면 여자 아이들에게 예쁘지 꾸미지 말라고 한다. 그 만큼 성폭력 사건이 많다는 것이다”며 한숨지었다.

학기 초마다 담임 교사들이 오히려 공부방을 찾아와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듣고 갈 정도로 신뢰를 얻고 있는 한나공부방에서는 근거리에 있는 아이들은 직접 보호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에게는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아이들의 집을 방문해 집안청소, 반찬서비스 등 필요한 일을 해주기도 해 이 곳을 이용하는 아이들은 공부방 문을 닫는 토요일을 가장 싫어한다.

올해부터 교사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월 200만원의 보조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형편이 약간 나아졌지만 이 곳에서도 경제적인 쪼들림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고 집으로 데려다줄 차량도 없어 고 목사 개인 차를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천교회에서는 공부방 외에도 진천형제의 집, 충북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교회는 외국인노동자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매달려온 것으로 유명하다. 고은영 목사는 부군인 이창언 목사와 함께 지난 91년 진천교회를 설립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을 해결하는 일에 오늘도 앞장서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