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개성시대, 여기가 북인가? "남쪽 손님 하루가 다르게 옵니다"
상태바
다가오는 ‘개성시대, 여기가 북인가? "남쪽 손님 하루가 다르게 옵니다"
  • 변근원 기자
  • 승인 2005.08.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성공단 벌써 5천명 남북 근로자의 공동일터로
비무장지대서 불과 1Km, 2천만평 개발 총2천여기업 생산활동 목표

지난 1998년 10월 1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故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이른바 <1001마리 소떼 방북사건>, 그로부터 7년이 채 안된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남북문제는 상상의 벽을 넘어 이젠 놀라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1백만명을 넘어선 금강산관광에 이어 새롭게 펼쳐지는 <개성시대>는 새로운 공존의 패러다임을 낳고 있다.
한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1일 개성공단에서는 세계 3대 시계메이커로 성장한 로만손의 개성협동화공장 준공식이 이었다.

서울에서 70여㎞ 밖, 버스로 1시간 좀 넘게 걸려 도착한 개성공단은 “여기가 북인갚를 의심케 했다. 그리고 차창 밖으로 펼쳐진 500년 고려왕도 송도(개성의 옛지명). 아침일찍 청주를 떠나 점심은 개성서, 저녁은 서울서… 시간여행에 빠져든 기분이었다.

남북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개성공단과 개성시의 모습을 적어본다. <편집자 글>

이날 오전 군사분계선을 넘어 찾아간 개성공단은 마치 개벽의 현장 그 것 이었다. 비무장지대서 불과 1㎞ 남짓한 거리, 북측 통관을 마치고 나오자 눈앞에 펼쳐진 개성공단 현장은 새로운 남북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길을 따라 시범단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광활한 대지가 공단조성을 위해 파 헤쳐져 지고 있었다. 바위언덕엔 암석파괴 장비가 10여대 가량 붙어 시간싸움을 하고 있고 파헤쳐진 흙더미 사이로는 배수시설인지, 콘크리트 구조물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그 공단조성지역을 가로질러 가자 바로 눈앞으로 개성시내가 들어왔다. 공단과의 거리는 수㎞에 불과 할 정도.

시범단지 로만손 등 이미 6개업체 가동중
우선 시범단지로 조성된 2만8000여 평엔 입주 15업체 중 로만손등 이미 6개 업체가 준공 가동 중이고 9개 업체는 연내 가동을 서두르고 있다. 시범단지는 여기가 <북측 >이라는 것 외에 남측 공단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아스팔트로 잘 닦여진 주변도로, 다양한 공장 건축물, 빈 공간을 가득 메운 무쏘 테라칸 등 국산 자동차, 현장을 씽씽 오가는 각종 공사작업 차량들, 그리고 쉬는 시간 족구 등을 하느라고 왁자지껄한 근로자들의 모습. 편의점 훼미리마트가 문을 열었고 우리은행도 영업 중이다. 근로자들은 “노래방도 있다”며 있을 건 다 있다고 말한다.

처음엔 북쪽 사람들의 호칭을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대부분 공장에서는 < 000씨>라고 부른단다. “이젠 남측 사람들이 어색하다고 안 느껴집니다”. 로만손의 북측 근로자 홍정애씨의 말이다. 빠르게 남북이 다가가는 개성공단의 현장이다.

현재 시범단지내의 북측 근로자는 모두 4000여명. 로만손이 520명으로 가장 많고 신원 삼덕통상 리빙아트 문창기업 등 공장근로자와 현대아산과 한국토지공사 소속 근로자들이다. 여기에 남측근로자 평균 700여명 등을 포함하면 개성공단은 벌써 5000명에 가까운 <남북공동일터>가 된 셈이다.

현재 시범단지 옆으로는 100만평에 이르는 1단계 본 공단 기반조성공사가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이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처음엔 개성공단에 확신을 갖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입주업체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며 “지난번 본 단지 1차분 5만평 분양 투자설명회에 무려 700명이 몰렸다”고 말했다.

담담하게 바라보는 개성시민들
공단에서 개성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좁지만 비교적 말끔히 포장돼있다. 연초까지만 해도 연결도로가 포장이 안돼 시내관광 길이 열리지 못했었다. 대형버스 통행에 대비해 좁은 다리를 콘크리트로 확장하는 모습도 눈에 띤다.
이날 로만손 개성공단 협동화공장 준공식에는 남측에서 400여명의 인사가 버스 11대에 분승, 참석했다. 이 때문에 적잖은 버스가 줄지어 개성시내로 이동 했으나 이를 바라보는 개성시민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간혹 어린아이들이 손을 흔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호기심어린 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날 오전에는 많은 비가 내린 터라 군인은 물론 많은 주민들이 농로나 하천에서 밀려 내린 흙더미를 파내고 터진 둑과 물길을 손질하는 모습이 많았다. 특히 곳곳의 실개천은 비온 끝이라 아주 깨끗해 보였다. 빗물에 씻긴 풀 섶이 모래에 뒤덮여 있는 모습은 우리네 50~60년대 실개천 바로 그 모습 이었다. 시내 하천은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가 됐고 일부아이는 아예 벌거벗은 채 물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개성거리는 오가는 사람이 많고 비교적 깨끗했으나 운행차량이 거의 없어 차도는 텅 비었다. 노령의 버드나무 가로수 길에 길가 상점은 발길이 뜸해 썰렁해 보였다. 심각한 물자난을 반영하듯 지난 1991년 완공 됐다는 개성~평양 고속도로도 오가는 차량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날 오찬장 이었던 <자남산려관>은 남북경협실무회담이 많이 열린 곳이다. 이곳에서는 개성음식만의 독특한 맛을 볼 수 이었다. 개성약밥 보쌈김치 단고기 등 그 맛들이 한결같이 담백했다. 개고기인 단고기는 아무 양념없이 살이 흐물흐물 할 정도로 푹 삶아 냈다.
<자남산려관> 주변에는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있다.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이성계 무리에 철퇴로 피살당한 선죽교와 그의 집터가 자리한다. 선죽교는 이곳이 선죽교라고 해서 알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제대로 안돼 초라했다.

옛 고려 성균관 자리는 <고려민속박물관>으로 활용됐다. 그 입구엔 고려 왕조를 일으킨 왕건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양 옆으로 그 세를 과시하고 있으나 일반의 발길은 뜸한 편이었다.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송도라고 했던 개성. 475년 고려의 수도로, 조선시대엔 경제 중심지로... 그러나 지금의 개성은 옛 모습찾기 힘들다.

처음 남북경협지구문제가 얘기됐을 당시 북측과 현대 모두는 신의주 등 적어도 평양 이북 쪽을 생각했단다. 체제유지나 군사적 측면에서나 가까운 남쪽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 정주영회장과 김정일 위원장의 만남은 파격으로 변했다. 정회장이 신의주단지를 얘기하자 김위원장이 “뭐 그럴 것 있느냐”며 “기왕에 하려면 가까운 개성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현대아산 관계자의 말이다. <개성시대> 남북경협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 개성공단은 남측을 오가는 차량들로 꼬리를 문다. 서울~개성공업지구를 오가는 시외직행버스도 다닌다. 개성공단으로 근로자들이 출퇴근하는 것이다. 퇴근시간은 서울과의 거리을 생각해서 오후 3시30분.

“남측 손님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백두산 들쭉술을 제일 많이 사갑니다. 7달러면 비쌉니까?” <자남산려관> 특산물판매원의 능숙한 장사 솜씨다. 개성공업지구 사업추진계획을 보면 2012년까지 총 800만평의 공단을 조성하고 관광구역 200만평 생활구역 600만평 구시가지 400만평 등 총 1200만평을 신도시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곳의 공장 수만 2000여개에 달하고 연간 관광객도 연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엄청난 변화가 다가오는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