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생태론자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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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생태론자를 꿈꾸다
  • 충청리뷰
  • 승인 2019.12.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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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원 근 법무법인 ‘청주로’ 변호사
오 원 근 법무법인 ‘청주로’ 변호사

 

난 서울에서 검사로 근무하던 2009년 서울생태귀농학교에 다녔다. 두 달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야간 수업을 하고, 주말에는 농사현장으로 실습을 갔다. 낮에 일하고 밤에 학교에 가는 것이 고되었지만, 오래 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것이라 배우는 즐거움이 더 컸다. 이 귀농학교는 생태농의 가치를 철학적으로, 경험적으로 가르친다. 생태농은 가능한 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비닐까지 사용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생태농이라고 할 것이다.

언젠가 위 학교를 운영하는 전국귀농운동본부 회원의 날 행사가 있었는데, ‘탈석유농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유를 원료로 쓰는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석유제품인 비닐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인데, 생태귀농학교를 나온 사람들 중에도 석유 농기계나 비닐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당시 우리는 석유 농기계나 비닐을 쓰지 않는 농사를 ‘탈레반 농법’이라고 불렀다. 탈레반은 회교 율법을 공부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원리주의 무장세력이다.

난 요즘 생태의 관점에서 두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첫 번째가 승용차 사용 자제다. 먼 곳에 출장 가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전거로 출퇴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람을 가르고 내 몸을 움직여 나가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연신 미소를 짓는다.

두 번째는 일회용 휴지 사용 자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손수건을 갖고 다니며 휴지 사용을 꺼려했지만, 이제는 코를 풀거나 책상의 오물을 닦는 데도 휴지를 쓰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코는 화장실에 가 수돗물로 풀고, 책상 오물은 따로 걸레를 두고 닦는다. 이렇게 노력하는 내게 누군가 식당에서 식사 후 냅킨을 건네주는 ‘호의’를 베풀어주면, 난 아주 고역이다.

종이컵도 집이나 사무실 등에서 개인적으로 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식당에서 종이컵에 물을 주거나 커피 등을 타오면 할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아예 컵을 들고 다니며 종이컵 대신 쓰는 것을 생각해 보고 있다. 나아가 온통 일회용품 천지인 장례식장에 갈 때도 수저와 젓가락을 가지고 가는 생각도 하고 있다.

난 검사를 그만두고 법무법인에 들어가면서 산악회를 만들어 매달 한 번씩 산행을 하고 있다. 처음 산행할 때, 회원들이 종이컵,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산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쓰레기가 한 보따리씩 나오곤 했다. 난 그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어, 등산 컵과 수저집을 사 돌렸다. 우리 산악회에서는 일회용품이 거의 사라졌다.

사람들이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다. 빨래나 설거지 같은 뒤처리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편리함의 대가로 소중한 가치를 잃는다. 일회용품을 사용하다보면 소비가 천박하고 획일화된다. 일회용 용기 안에 든 음식을 플라스틱으로 된 수저로 떠먹는 상황에서 식사의 품위는 조금도 찾을 수 없다. 획일화된 일회용 기저귀, 컵 등을 사용하니 소비의 개성은 거의 없다.

일회용품 사용이 일상화되다보면 사물에 대한 존중과 애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릴 것이므로. 이렇게 가벼워진 가치관은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대방을 고귀한 인격자로 대하기보다는 그저 일회적인 만남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있다. 일회용품의 대량 사용은 자연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성마저도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탈레반 생태론자를 꿈꾸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 더, 우리 집은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없다. 음식물 찌꺼기(난 쓰레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전부를 텃밭으로 가져가 퇴비로 만든다. 퇴비장 옆에는 오줌과 똥을 퇴비로 만드는 생태뒷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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