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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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고?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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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석 서원대 법대교수
   
저녁 뉴스를 보다 보니, 요즘 잘 나가는 주부들은 대부분 자녀를 한명만 두고 있나 보다. 세태가 이러할 진대 세상물정도 모르고,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아 주면서 두 딸아이 잘 못 가르친다고 아내를 타박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있는 것들이 아이도 적게 낳으면서 편안함을 영위하고 있는 현실에 은근히 부화가 올라 “있는 것들이 저 꼴이니 우리나라 인구가 줄고 있지”라고 괜히 고함을 질렀다.

말이 나왔으니, 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남의 나라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위기상황이다. 이미 노인 비율이 선진국 수준이상으로 급상승하고 있는 반면에, 출산율은 세계최저 수준에 있으니 우리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이런 위기상황을 인식해서인지 최근에는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 최우선의 과제로 선정하면서 각 부처의 응급조치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무수히 발표된 정책들 중에서 근본적인 해법이나 실효성있는 대안은 거의 없어 보인다. 기껏해야 저출산 대책으로 2010년까지 19조3000억원을 투입할 것이며, 이 중 대부분을 보육에 지원함으로써 보육의 양과 질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정부는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이 보육을 가정에서 전적으로 담당했기 때문이고, 보육 시설과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나 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보육정책이 현실적으로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먼저 앞선다. 무엇보다 보육을 시장논리에서 접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보육을 공공서비스 정책의 일환으로 보고, 서비스 산업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영리화·시장화로 가려하고 있는데, 아마도 결론은 보육료 자율화 논의를 거쳐, 보육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이처럼 공립보육시설 등의 공공인프라 확충 없이 보육시설의 영리화부터 추진하면서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은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 시키고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의 지출을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옳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거창한 보육정책이 실제 지역주민들에게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은 여성가족부의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정책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는 2005년, 전국적으로 400여개의 국공립보육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지원시설은 채 200곳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성가족부가 국공립보육시설 건축비의 50%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나머지 재원을 마련하기 힘든 지자체들이 신청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같이 우둔한 사람의 상식으로는 예산자립도가 낮은 자치체일 수록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로 부유한 자치체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괴이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보육정책의 혼란이 야기되는 것은 무엇보다 정부가 저출산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육 때문이라고 보고, 보육지원에 집중하는 단기적 처방에 매달리는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보육문제는 저출산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일 뿐이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여성들이 갖고 있는 사회구조에 대한 위기의식이며, 빈곤의 대물림을 거부하려는 절박한 몸부림의 필연적 산물이라는데 있다.

사실 여성들의 저출산은 IMF 외환위기 이후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없이 대량 실업으로 몰린 노동자 계급과 중산층 붕괴현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여성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삶에 대해 위기의식으로 가득 차 있고, 양극화가 고착된 사회에서 자신의 아이들도 또 다시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여기에다 대고 여성들에게 출산이 마치 애국하는 일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 정부의 호소는 소음에 불과하다. 결국 여성들의 저출산 의지를 바꾸라고 호소하기 이전에 교육, 보건, 보육 및 남녀평등 정책을 대폭 개선해서, 국가 구성원 모두에게 사회안전망과 공적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 단기적인 보육정책보다 우선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오히려 사회안전망의 구축이 없는 상태에서 보육에 대한 엄청난 공적 투자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고, 오히려 자녀 출산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만 그 혜택이 집중되는 결과로 나타나 경제적인 양극화는 물론 출산에서의 양극화 현상으로 발전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고? 오늘의 엄마들에겐 여전히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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