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인사청탁 위해 공관 찾는 간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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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인사청탁 위해 공관 찾는 간부 공무원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6.08.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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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고 간 쇼핑백 열었더니 고급양주와 돈봉투
민선 4기 청탁 로비 구설수, “자 이제 출발!”
집안단속 소홀하면 안방정치, 주방정치 꿈틀

지난 7월 24일 남상우청주시장은 확대간부회의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앞으로 인사청탁을 하면 당사자를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이날 남 시장은 “인사청탁자에겐 불이익을 주겠다고 이미 밝혔음에도 불구, 직원 2명이 본인의 인사청탁을 위해 관사로 찾아 왔다. 앞으로 관사를 찾아 오거나 거절하기 곤란한 사람을 통해 청탁을 하면 인터넷에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남시장은 일요일인 전날 성당에 다녀 오는 길에 관사 앞에서 만난 모계장이 인사청탁하려는 낌새를 눈치채고 돌려 보냈는데, 얼마 후 또 다른 계장이 인사청탁차 초인종을 누르는 것에 실망한 나머지 이날 작심하고 강경발언으로 군기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남시장의 초심이 임기말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도 반반이다. 뭔가 변화된 모습이 기대된다는 평가와 함께 “임기초엔 다 그렇다”는 소위 통과의례론이 교차한다. 정작 흥미있는 것은 관가의 덤덤한 반응이다. 인사권자에 대한 간부 직원들의 청탁은 언제든지 그 개연성이 충분한 것으로, 그 쪽으로 재미를 본 사람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최근 또 다른 자치단체장도 아주 헷갈리는 일을 경험했다. 이 자치단체장은 퇴근 후 관사에서 부인과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다. 낮 시간에 부인이 모 간부 공무원 부인의 방문을 받고 아무 생각없이 받아 놓았던 쇼핑백이 문제였다. 나중에 뜯어 보니 쇼핑백엔 고급 양주세트와 100만원이 든 봉투가 있었던 것. 이 자치단체장은 곧바로 부인을 시켜 양주세트와 돈봉투를 당사자에게 되돌려줬다.

지난 5·31 지방선거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이 자치단체장은 “이런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처음엔 난감했다. 밖의 일만이 아니라 집안 단속이 더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집사람에게 앞으로는 사적인 방문을 절대 받지 말 것을 특별히 당부했지만 걱정은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담이라면서 “나 몰래 자기 부인을 시켜 돈봉투를 놓고 가는 행위도 괘씸하지만 고작 100만원이라는 발상에 더 기분이 나빴다. 그래 내가 100만원으로 밖에 안 보였다는 말인가. 결국 100만원으로 자리를 사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극히 일부에 국한된 그릇된 발상이겠지만 이거 큰 일 났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할말은 아니지만 막상 이 자리를 맡고 보니 전혀 능력없는 사람이 요직을 차지한 경우가 있더라. 그가 왜 그 자리에 앉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사청탁은 민선 이후 더 심해졌다는 주장도 많다. 일단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4년간은 무조건 그 체제로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줄설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절박감은 선거 때 상대후보를 지지했거나 도운 사람일수록 더 하다. 현 자치단체장에게 잘못 보일 경우 그나마 지금의 자리도 보전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1일자로 단행된 음성군 인사에서도 뒷말이 많았는데, 얘기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5·31 지방선거 때의 역학관계로 모아졌다. 선거 당시 어느 캠프에 섰는냐에 따라 발탁인사니, 보복인사니 하는 논란이 빚어진 것.

이에 대해 한 공무원은 “굳이 공무원 사회의 특수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로서야 인사권자에게 목을 맬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선거 때 간부의 신분에서 상대후보를 지지했다면 상황이 어떻겠는가. 윗분에게 기를 쓰고 선을 대려 할 것이고, 그러다보니 관사나 부인쪽 카드까지 나오는 것이다. 내가 확신하는데 처음엔 눈총도 받고 질타도 받겠지만 자꾸 찾아 가서 부딪치다 보면 분위기는 누그러진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게 인지상정 아닌가. 지금이야 임기 초이기 때문에 청탁하지 말라며 서슬퍼런 눈길을 보내지만, 두고 봐라 결국엔 다 그렇고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만약 이런 통념을 깨고 끝까지 초심을 유지한다면 그야말로 성공한 자치단체장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청탁 로비창구는 부인쪽이 최고?
“접근이 쉽고 효과적이다” 속설이 문제

정치인이나 자치단체장이 무슨 청탁이나 로비 구설수에 오르면 십중팔구 그 부인이 논란의 포스트로 등장한다. 5·31 지방선거 직전에 터진 한나라당 김덕룡 박성범의원의 뇌물사건에서도 그 주연은 부인들이었다. 김의원 부인은 공천 희망자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4억4000만원을, 박의원 부인 역시 공천을 빌미로 2억원과 명품 핸드백 등을 수수했다가 사법처리됐다. 공교롭게도 돈을 건넨 측도 상대의 부인 내지 관계된 여성이었다.

이러한 안방 정치의 압권은 역시 임창렬 전 경기도지사 부인 주혜란씨 사례. 청원군 현도에서 보건지소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99년 경기은행 퇴출을 막아주겠다며 은행측으로부터 4억원을 받았는가 하면, 2002년엔 아파트 사전건축허가를 빌미로 업자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가 남편과 함께 구속되는 수모를 당했다.

99년 DJ정권을 들었다 놨다한 옷로비사건도 법무부장관 부인을 비롯한 장관 부인들이 저지른 일탈이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의 2억원 굴비상자 사건은 업자가 뇌물을 안시장 여동생 집에 전달하면서 불거졌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그 결론이 하나같이 남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것. 특히 정치인들의 경우 정치적 급전직하로 인해 이미 잊혀진 사람이 됐다.때문에 이는 5·31 지방선거에서 새롭게 등장한 시장·군수들이 꼭 가슴에 명심해야 할 사항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충북에서도 안방 정치는 민선 지방자치 이후 줄곧 화제중에 화제였다. 민선 3기 때 모 자치단체장은 그 부인의 파격적인 행보로 임기 내내 각종 소문에 휘말리게 됐는데, 지금도 시중엔 그 부인의 인사청탁과 관련된 흉흉한 얘기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역대 충북도지사중엔 이른바 ‘주방정캄로 세인의 관심을 끈 사람이 있다. 간부 부인들이 도지사 관사의 주방일이나 허드렛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남편의 승진이나 요직 잔류를 보장받았다는 것인데, 그 사실관계의 일부가 드러나는 바람에 언론의 가십란을 타기도 했다.

이처럼 부인들이 청탁이나 로비의 창구가 되는 배경엔 인의장막에 둘러 싸인 남편에 비해 ‘접근이 쉽고 효과도 좋다’는 정치권의 뿌리깊은 통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이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도 함께 작용한다. 하지만 그 보다는 사회현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이라는 게 더 설득력을 준다. 똑같은 뇌물이나 성의표시에 대해 남성들은 복잡한 사회구조상의 뒷탈을 먼저 의식하는 반면 여성들은 선의(善意)적 해석을 앞세운다는 것.

최근엔 정치인들이 향후 예상되는 화(禍)를 피하기 위해 부인을 내세운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부인이 뇌물을 받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남편이 몰랐다고 발뺌하면 사법처리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한다는 것이다.

공직자의 집안단속, 민선 4기가 두달째를 지나면서 도내에서도 안방정치와 관련된 얘기들이 서서이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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