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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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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추억
  • 한덕현
  • 승인 2020.10.2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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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요즘은 70대도 청춘이라고 한다. 경로당에는 기웃거리지도 못하고 시골같은 경우는 이장이라도 맡아 지역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 그나마 주변으로부터 눈치받지 않는다. 정상적이었다면 올해 78세인 이건희는 한창 활동을 해야할 나이인데도 너무 일찍 갔다. 그에 관한 모든 공과를 떠나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인물을 잃었다.

그의 죽음을 기술한 많은 기사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유년시절을 비롯한 성장 과정의 얘기들이다. 나로선 그동안 뉴스 등을 통해 이건희를 대할 때마다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참 ‘독특한 이미지’의 근원을 어느정도 유추해낼 수 있는 것같아 색다른 관심을 갖게 됐다. 평소 그의 우수에 찬 듯한 눈빛, 어느 땐 불안불안할 정도로 어눌한 말투 속에서도 툭 튀어나오는 특유의 수사(修辭), 형제와 상속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불거진 저주에 가까운 독설 등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나름 가늠해 본 것이다.

우선 이건희가 대체로 부유한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자라면서 모진 세월을 거쳤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어려서는 어머니 품을 떠나 정서적 갈증에 시달리던 외톨이였고, 청년 시절엔 요즘 말로 ‘혼족 영화’로 외로움을 달랜 고독한 청년이었다. 일본 유학 3년동안 영화만 300편 이상을 봤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선대인 이병철 회장 부부의 너무 바쁜 사업활동으로 고향 대구를 떠나 경남 의령에 있는 친가에 맡겨져 3살 때까지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자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마산 대구 부산 등으로 다섯 번이나 전학을 다녔고,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 일본이라는 선진국을 선망하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현해탄을 건너 외로운 유학 생활을 하게 된다. 어린시절에 이 정도 여정이라면 보통 사람들의 성격은 십중팔구 내성적이자 집요함을 띠게 된다. 그가 2005년 애지중지 하던 막내딸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은 것도 멘탈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실제로 이건희의 리더십은 막후를 중시하는 은둔형으로,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의제를 툭 툭 던지는 ‘화두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가전과 반도체, 휴대폰을 세계의 브랜드로 키운 저력은 다름아닌 한번 관심을 가지면 뿌리를 뽑고야 마는 이같은 집요함의 소산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말하는데 있어서도 이른바 입안으로 감아서 내뱉는 식의 언변이나, 유별나게 반려견에 집착했던 것 등도 이런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그 스스로도 생전에 “혼자 생활하다 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고 사람과 동물 간에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회고했다.

2012년 부친의 재산상속을 놓고 맏형 이맹희, 누나 이숙희와 벌인 법정 다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때 이건희는 자신의 형에 대해 “우리 집에서는 퇴출당한 양반이에요.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이맹희씨가 감히 나보고 건희,건희 할 상대가 아니에요. 날 쳐다볼 때 똑바로 내 얼굴을 못보던 양반이라고.....” 라며 악담을 퍼부었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형제지간인데 “참 독하다”고 했다.

이건희가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투병중에 국민들에게 보여진 생전의 근황은 딱 두 번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모두 안좋은 모습으로 나타나 고인이 된 지금도 그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데 일조한다. 2016년 7월 뉴스타파가 공개한 동영상과 2017년 한 종편방송이 보도한 병상의 누워있는 장면들이다. 특히 자택인 고급빌라의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내실로 들어온 젊은여성을 초점없는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건희 모습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성매매 의혹까지 제기되며 당시 ‘시츄에이션’의 진위를 놓고 숱한 억측들이 제기됐지만 사안 자체가 슬그머니 유야무야됐다. 하지만 이 일은 ‘거동조차 어려운 와병중에 젊은여성이라~~?’는 구도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뉴시스
이건희 명예회장 /뉴시스

 

이건희의 죽음으로 자녀들이 내야할 상속세가 11조원이라고 한다. 대략 8조원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전체의 상속·증여세 1년 세입예산보다도 많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건희의 주식평가액은 18조에 달하며 지난 삼성특검에서 밝혀진 그의 차명계좌는 무려 1199개나 된다. 그런데도 재산을 놓고 형제들과 한국판 세기의 싸움을 벌였고 2012년 최고조에 달했던 법적분쟁은 세간에 ‘형제들의 난(亂)’으로 치부되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비교되기도 했다.

맹희, 창희, 건희 3형제의 다툼이 마치 소설과 흡사하다고 해서 이런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변변치 못한 신분에서 입신양명한 카라마조프가의 탐욕스러운 가장과 그런 아버지를 증오하다 끝내 살해 공모에까지 가담하는 장남과 차남, 이 와중에서도 가장 정상적인 생각으로 가정을 지키려고 애썼던 셋째 막내. 소설의 이같은 내용들을 떠올리게 되면 삼성이 오버랩된다. 3남인 이건희 역시 두 형을 제치고 냉정한 승부사인 아버지 이병철에 의해 가문을 이어갈 적자로 간택됐다.

하지만 각자도생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도 종국엔 이 한 가지를 서로 깨우치며 가족관계나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아무도 누구를 심판할 수 없다. 내가 오늘을 정직하게 살았다면 그 사람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삼성의 형제들도 이건희의 죽음으로 시나브로 국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됐다.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는 고인이 된지 이미 오래다. 그들이 정직하게 살았는지 아닌지는 후세가 평가하겠지만 끝내 삼성 형제들은 서로 심판만 벼르다가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선친 이병철은 이 글을 좋아해 붓글씨 등 스스로 170여점의 작품을 남기기까지 했다. 이건희 역시 이를 자신의 집무실에 걸어 놓고 찾아오는 손님들과도 종종 그 의미를 나누었고 한다. 가족장으로 치러진 그의 조촐한 마지막 모습은 공수래공수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그가 진정 그러한 삶을 살고자 했다면 그 엄청난 유산을 자식들에게 남겨 국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기는 세금논쟁을 일으킬게 아니라 차라리 ‘이건희 재단’이라도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맡기고 빈손으로 돌아갔어야지 하는 미련한(?) 생각이다. 그랬다면 후세에 두고두고 존경과 추앙을 받을 것이고 그의 사후평가에 늘 사족처럼 달리게 될 여러 부정적인 꼬리표도 사라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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