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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황금빛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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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황금빛 유혹
  • 충청리뷰
  • 승인 2020.10.2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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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파탈, 그 몽환의 늪에 빠지다

 

방금 절정에서 돌아온 듯 나른한 눈빛과 채 다물지 않은 입술, 쾌락의 열기가 아직은 남아 있는 듯 발그스름한 젖꼭지와 미세하게 할딱거리는 배꼽. 그리고 배경인지 의상인지 모를 황금빛 장식에 둘러싸인 저 여인. 저 여인을 도대체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나는 그저 속수무책, 순간적으로 숨이 가빠오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침내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앞에 선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궁전에서였다.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 사보이 왕가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으로 흔히 황금의 화가라 일컬어지는 클림트의 회화 컬렉션이 유명한 곳이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화가로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성녀와 유녀를 구별하는 이분법을 지양하고 총체적인 예술을 추구했다고 한다.

특히 1901년 이후 황금시기로 불리던 때의 금박을 이용한 화려한 색채 표현은 정말로 매혹적이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도 그 황금빛 유혹에 홀린 듯 취한 듯 자주 걸음을 멈춰야 했다. 「키스」,「유디트」,「아델라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등의 그림 앞에서 더더욱 그랬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여타의 관람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나의 발걸음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한 것은 역시 황금시기 초기의 작품인 「유디트」였다.

클림트의 유디트
클림트의 유디트

 

유디트는 구약성서의 외경「유딧기」에 등장하는 과부(寡婦)의 이름이다. 아시리아 군의 공격 때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 하룻밤을 같이 한 다음 그의 머리를 잘라 왔다는 여인이다. 우리나라의 논개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클림트의 「유디트」에서는 논개와 같은 그런 비장함이나 숭고함이 보이지 않는다. 가슴과 배꼽을 그대로 드러낸 채 기하학적인 황금 문양에 둘러싸인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관능적이고 유혹적이다. 더욱 놀랄 만한 것은 그림의 오른쪽 하단부에 있다. 이 몽환적인 여인이 들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방금 잘라온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인 것이다. 그런데도 표정은 살인 행위의 공포보다는 승리감에 도취된 황홀경이다. 한마디로 팜 파탈(femme fatale)이다.
저 승리감,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벨베데레 궁전(하궁)
벨베데레 궁전(하궁)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너는 내게 죽었다

-클림트의 「유디트

내가 이렇듯 적진에 숨어든 것은
치마 속 녹슨 칼을 벼리고
은밀한 야삼경 너의 침상을 두드린 것은
네가 적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홀로페르네스,
네가 사내였기 때문이다
왕성하고 무자비한 정복욕에 이글거리는
뜨거운 불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번만큼은 기필코
내 너의 불꽃을 잠재우고 말리니
너는 어서 창을 들어라
부족과 종교는 그 무엇, 훌훌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치열하게
치열하게 한바탕 붙어보자
네가 마상창 곧추세워 한복판을 짓쳐오면
나는 반월검 구부려 배수진을 치고
네가 금빛 박차를 가하면
나는 매화문 포위망을 더욱 조이고
일합 이합, 진퇴를 거듭해 보자
아뜩한 운우(雲雨), 천지간에 흩뿌려 보자
절륜하구나, 매 초식 거듭할수록
젖꼭지는 햇귀처럼 탱탱 부풀어 오르고
입술은 조개처럼 할할 단내를 풍기는데
아아, 마침내 온몸을 휘감아오는
황금빛 황홀이여!
홀로페르네스, 너는 이제 내게 죽었다

*Judith(유디트/유딧) : 규범 표기 미확정

/장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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