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본격적 논의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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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본격적 논의 시작할 때
  • 충청리뷰
  • 승인 2020.11.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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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국가가 자산심사 없이 노동 여부나 의향을 문제 삼지 않고, 일시적이 아닌 정기적으로 현물이나 서비스가 아닌 현금을 개인별로 지급한다.” 이것이 기본소득이라는 말에 대한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공식 정의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런 세상이 온다면 좋을 것 같기는 해도, 실현 불가능한 꿈속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 1위를 차지하는 후보의 핵심 공약이 기본소득이고, 보수를 대표하는 제1야당의 핵심 정책이 기본소득이다. 조만간 대한민국 정치의 진영과 지형을 가르는 기준이 기본소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평범한 시민들도 기본소득 논의에 참여할 준비를 해 두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기본소득 논의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본소득에 대한 현대적 논의를 주도하기 시작한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가 출범한 것은 1986년의 일이고, 이것이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로 확대된 것은 2004년이다. ‘기본소득 한국 네트워크(BIKN)’가 설립된 해는 2009년이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2016년에는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의 제16차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기도 하였다.

기본소득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의 로봇 밀도는 한참 전부터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과 AI의 발달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직업 자체를 줄여 버리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은 이러한 현상을 극단까지 몰고 가는 형국이다.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경우 벼랑 끝에 처한 서민들은 인간다운 생활은커녕 연명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서민들의 구매력 저하는 불황을 넘어 공황을 초래하여 시장경제를 마비시킬 우려도 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비상한 대책에 눈이 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첩첩산중이다. 당장 그 막대한 재원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매달 한 사람당 10만 원씩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경우 연간 60조 원이 필요하다. 결국 증세가 필요할 텐데 가뜩이나 팍팍한 형편에 처해 있는 국민이 선뜻 동의할지 미지수다. 고용과 임금노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사회복지 시스템에도 많은 변화가 불가피할 텐데 그 방대한 작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은 예측조차 힘든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를 불러올 것이고,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기본소득 도입이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더욱 고착화하고, 주택가격과 물가를 올리는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기본소득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시간은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준비 없는 전격 실행은 감당하기 힘든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더욱더 적극적이고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나 정치인 또는 관료들에 의한 논의도 필요하지만, 평범한 시민들 사이의 논의가 더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거나 기록하기 위해 헌법개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않다. 실패가 치열한 논의의 결과라면 말이다. 유례없는 위기와 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집단지성의 고민은 그 결과와 무관하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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