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스님은 죄가 없다
상태바
혜민 스님은 죄가 없다
  • 한덕현
  • 승인 2020.11.18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우선 과정을 정리해 보자. 지난 7일 혜민 스님은 tvN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서울 도심인 종로구 삼청동의 2층 자택을 공개했다. 밖으로는 남산 서울타워가 보이고 집안의 가전제품과 전자기기 등 집기는 여느 중산층의 경우처럼 고급스러웠다. 이날 그가 유튜브 활동에 몰두하는 모습과 공유 오피스라는 곳에 출근하는 일상도 방영됐다.

방송이 나가자 혜민 스님의 일상이 평소 본인의 말과는 거리가 멀고 ‘무소유'를 강조해온 그간의 행보와 모순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언론에서는 풀(full)소유, 유(有)소유 등의 단어를 동원하며 논란을 부추겼다. 각종 저술과 강연으로 국민스타가 된 그는 누구보다도 무소유의 삶을 강조해 왔다. 한 유튜버는 “돈 밝히기로 유명하다”는 영상을 실어 혜민을 비난했다. 방송에 나온 혜민 스님의 자택 갈무리 장면을 공유한 뒤 “그는 단지 사업자, 배우일 뿐이다. 진정으로 참선한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게시글도 올랐다.

급기야 푸른 눈의 수행자로 잘 알려진 현각 스님이 이를 공유하며 자신의 SNS에 “속지 마. (혜민은)연예인일 뿐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 전혀 모르는 도둑놈일 뿐”이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이라고 비판해 파문이 커졌다. 현각은 2016년 한국 불교에 염증을 느껴 불교계의 문제들을 폭로한 뒤 외국으로 떠나 활동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커지자 혜민 스님은 돌연 활동 중단을 표명하는 장문의 글을 올린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부족했던 저의 모습을 돌아보고 수행자의 본질인 마음 공부를 다시 깊이 하겠다....중략....대한민국 모두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든 시기에 저의 부족함으로 실망을 드려 거듭 참회한다”.

하지만 문제가 된 자택(건물주) 논란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누리꾼들은 활동중단이 아니라 이 참에 진정한 무소유를 선언하라고 재촉한다. 혜민 스님은 2015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건물을 8억원에 샀다가 2018년 자신이 대표자로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고담선원 단체에 9억원을 받고 판 의혹도 받는다.

그런데 현각 스님은 혜민 스님 입장이 나온 후인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우님 혜민과 통화했으며 70분 동안 사랑, 상호 존중, 감사의 마음을 나눴다...중략...내가 조계종에 속하든 그렇지 않든 혜민 스님은 내 영원한 진리의 형제일 것이고 그의 순수한 마음을 존중한다”고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아예 “혜민스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까지 추켜세웠다.

참 혼란스럽다. 오랫동안 이 나라 최고의 참수행자로 추앙받던 스님이 졸지에 부처님을 팔아먹는 도둑놈이나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기생충으로 추락하는 과정도 그렇고, 이런 형편없는 땡중이 다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돌변하는 반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간혹 종교가 사회통념과는 너무나 괴리되는 행태로 세인들을 놀라게 하지만 이번 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실감을 국민들에게 안기고 있다.

이른바 혜민 파장을 지켜보면서 언뜻 떠오르는 것은 대중사회의 우상화 문제다. 상호관계의 큰 틀로 묶여져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논리와 상식, 규율로써 움직여야할 대중사회가 오히려 특정인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으로 허우적거리는 문화적 미개(未開)와 모순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에서 자국 우선주의를 가장한 희대의 야바위꾼을 우상으로 만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때 시류의 사람을 차기 지도자감으로 떠받드는 것 등이 모두 그렇다.

말 한마디 잘했다고, 혹은 행동 한번 시원하게 했다고 해서 단박에 국가 지도자 반열에 올려지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박근혜와 안철수의 실패는 반면교사가 된다. 남한테 지기싫은 승부욕이 강한 미국의 장사꾼은 지금 선거불복으로 민주주의 파괴자가 되어 있고, 검찰수사에서 최고의 능력을 인정받아 칼잡이라고 불리는 이는 지금 자기를 신임한 대통령과 정부를 상대로 마치 검객이나 즐길 법한 극한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혜민스님. /뉴시스
혜민스님. /뉴시스

 

그가 입에 올린 “검찰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말이 국민들에게 진정 믿음을 주려면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동에서 이에 관한 일말의 기운이라도 보였어야 한다. 조국 한 명을 잡기 위해 무려 70여회의 압수수색으로 전가족을 일망타진하는 독기는 될성부른 지도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그의 능력보다는 자질과 인간됨을 저울질하고 있다. 똑같은 일에도 거기엔 정도가 있게 마련이다.

혜민 스님의 구설도 본인보다는 그를 향해 대책없이 환호하던 뭇 사람들에게 책임이 크다. 그도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에 불과한데 어느덧 대중의 우상이 됐고 지금의 파문은 단지 그 우상이라는 것의 허상적 실체를 드러낸 데 대한 반작용일 뿐이다. 그를 꾸짖었다가 다시 덕담으로 돌아선 현각 스님이 한 말, “영적인 삶은 여정을 떠난 비행기와 같다. 끊임없이 항로를 수정하고 조정해야 하며 난기류를 만날 수 있다. 나 또한 비행계획에서 여러 차례 벗어난 적이 있었고 인간이기에 때로는 그럴지 모른다”는 바로 이런 뜻을 에둘러 얘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개인적으로는 불교와 참 수행을 생각할 때마다 청주 보살사에 기거하시다가 지난 6월 입적한 종산 스님을 떠올린다. 보살사는 2001년 2월 9일 전두환이 수행원들을 대거 이끌고 방문해 화제가 됐던 사찰이다. 전두환은 백담사 유배중에 보살사로 거처를 옮겨줄 것을 바랐지만 무산되자 대신 종산스님 뵙기를 간절히 원해 성사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종산 스님이 2004년 3월 무기명투표로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에 선출된 것을 계기로 인터뷰에 나서게 됐다. 종정 추대권과 총무원장 추인권을 갖고 있는 조계종 최고 의결기관인 원로회의 의장이 시골 촌구석의 말사 주지라는 사실이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면담 요청은 몇 차례 거부된 후에야 성사됐고 막상 직접 대하게 되자 두 시간 동안 자세 한번 흐트리지 못하고 그야말로 고통(?)의 인터뷰를 해야만 했다. 가부좌의 꼿꼿함을 한치도 고쳐잡지 않는 스님의 아우라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전해들었는데 종산 스님은 평생 1년이면 거의 6개월을 한 사람이 겨우 거처할 수 있는 근처 토굴로 들어가 면벽 수행하는 참선의 최고 스님이었다. 말수가 극히 적었지만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칠 수가 없었고 그 때 들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가족이 부처님이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배워야 할 부처님이자 스승이다”는 말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전두환이 종산스님에게 의지하려 했던 것은 이같은 내려놓음의 가르침이고 실제로 스님은 전두환을 만날 때마다 비움과 자비, 사랑, 진리를 일깨웠다고 한다.

무소유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다. SNS를 통해 신변잡기를 무슨 자랑이라도 하듯 공개하고 강연에서 입바른 소리를 한다고 해서 존경심이 생기는 게 아니다. 혜민 스님에게 죄가 있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소중한 믿음에 오히려 천박한 일상으로 생채기를 낸 것이다. 활동중단이 아니라 당장 토굴속으로 들어가 진정한 무소유의 참수행자로 거듭나길 바란다. 가수 유승준은 언행불일치로 20년 가까이나 국제 미아가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