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천사가 되어 날아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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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천사가 되어 날아가시라
  • 충청리뷰
  • 승인 2020.12.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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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잃은 신발들의 침묵을 듣다

 

그것은 신발이었다. 가죽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만져보니 매우 견고한 놋쇠였다. 남자의 신발도 있었고, 여자의 신발도 있었고, 어린 아이 신발도 있었다. 크기와 모양도 각양각색이었다. 가지런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강 쪽을 향해 코를 내밀고 있었다.

‘다뉴브 강의 신발들’이라고 불리는 조형물 앞에서였다.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에서 강가를 따라 국회의사당 쪽으로 걷다 보면 어지럽게 놓인 신발 조형물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다뉴브 강의 신발들’이라고 불리는 추모의 공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궁지에 몰리던 나치는 이곳에서 마치 인종 청소를 하듯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신발을 벗게 한 다음 강가에 일렬로 세워놓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쓰러지면 강물에 밀어 넣고, 또 쓰러지면 밀어 넣고…….

그래서 2005년, 이들을 추모함과 동시에 미래 세대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역사의 현장이었던 이곳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신발 조형물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다뉴브 강의 신발들’. 장미꽃이 놓여 있었고, 동전이 들어 있었고, 쪽지가 접혀 있었다. 초콜릿이 담겨 있는 어린 아이 신발도 있었다. 두려움에 차마 신발을 벗지 못하는 아이들은 총알도 아낄 겸 신발 끈으로 부모와 함께 묶었다고 한다. 어땠을까? 부모의 주검에 묶여 물속을 떠내려가던 아이들의 심정은……. 마지막으로 불러본 엄마 아빠의 이름은 무슨 빛깔이었을까?

다뉴브 강의 신발들
다뉴브 강의 신발들

 

인종이 다르다는 것은 핑계일 뿐, 역사는 늘 힘없는 자들을 구실로 삼는다. 그래서 인류사는 늘 비극의 퇴적층, 그 어디쯤에 있다. 신발을 벗는 사람도 총을 겨누는 사람도 꽃을 놓는 사람도 다름 아닌 우리들, 바로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든지 저 신발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당사자가 될 수도 있고, 이렇듯 장미꽃을 놓는 추모객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쩜 장미꽃을 놓는 이 순간의 우리도 은연중 어느 한쪽에 서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항상 경계하고 경계하라는 뜻에서 이런 조형물을 만든 게 아니던가!

장미와 신발
장미와 신발
추모 버스킹 캡처
추모 버스킹 캡처

 

이곳에서 '비긴어게인2'(박정현 외)의 추모 버스킹이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1년가량 앞서 여기를 다녀갔다. 역시 장소가 장소인지라 멤버들은 경건했고, 선곡도 신중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울컥하게 했던 것은 박정현이 부른 Sarah McLachlan의 ‘Angel’이란 노래였다. 내가 유럽 여행의 여정에 굳이 ‘다뉴브 강의 신발들’을 넣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그 노래를 현장에서 다시 들었다. ……In the arms of the angel. Fry away from here. -천사의 품에 안겨 이곳에서 멀리 날아가세요.

우리들의 신발
-다뉴브 강의 신발들

저것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아니다
뒤꿈치를 깎아내면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다
저 신발의 기억력은 아주 신통치가 않다
주인의 발가락이 다섯 개였다는 것만을 기억한다
또한 고집불통이다 코의 방향을 바꿀 줄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도를 만들어냈지만
강물이 영원한 안식을 주리라는 믿음은 착각이다
피비린내 지우려고 천년만년 흐를 뿐이다
지금쯤 부대에 도착했을 당신, 문득 소스라칠지도 모르겠다
소총 옆에 벗어 놓은 왠지 낯설지 않은 신발을 보고
멀리서 지금,
엽서 속 당신의 딸이 장미를 심고 있다.

/장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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