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1-26 14:21 (화)
재앙은 미묘하게 찾아온다
상태바
재앙은 미묘하게 찾아온다
  • 충청리뷰
  • 승인 2020.12.23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앙 만난 사람들에게 최악 피할 수 있게 도와줘야

 

“대개 재앙은 그렇게 찾아와요. 그냥 그곳에 살았을 뿐이고, 우연히 그 공간 안에 있었을 뿐인데 난데없이 눈앞에 나타나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거죠. 아저씬 그저 발밑에 도사리고 있던 재앙을 만난 거예요. 피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는 재앙이요. 최악은 아닌거죠.”

이 대사는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안성호 작가의 <재앙은 미묘하게>라는 만화의 마지막 즈음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만화의 이야기는 주인공 하송신이 조용한 작업실을 찾아 어느 산자락의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하송신은 몰지각한 윗집의 층간소음으로 작업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게 되고, 하송신과 윗집의 층간소음 전쟁은 곧 아파트 전체로 확대되어 사건은 막대한 돈 문제가 얽힌 집단 배상 문제로 비화하게 된다.

그러니 위의 대사는 작가가 이 만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하송신과 경비 아저씨에게 던지는 위로의 말인 셈이다. 주인공이나 경비 아저씨가 고른 아파트가 하필 그런 아파트인 건 그 사람들 탓이 아니라, 그저 불가항력인 우연의 힘 탓이다. 그 이유를 알래야 알 수 없기에 재앙은 언제나 ‘미묘하게’ 찾아오는 것이다.

재난의 영향 불공평
2020년 내내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재난과 함께 했다. 이 생물학적 재난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어떤 사람들은 실직한 반면, 다른 기업은 번창했고, 누군가는 삶을 위협 받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약간의 불편함 정도만 감수하며 살았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재난은 똑같이 오지만 그 영향은 불공평하게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보다는 안성호 작가가 표현한 ‘재앙은 미묘하게’라는 간결한 표현이 마음에 든다. 코로나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이 재난은 정말 ‘우연히 그 공간에 있었는데 난데없이 눈앞에’ 나타난 것과 같았다. 비대면 수업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 대학가의 자영업자들이나, 거리두기로 영업을 할 수 없게 된 노래방 업주들이 “왜 하필이면 우리야?”라고 소리쳐도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다.

사실 비단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살면서 재앙을 마주치곤 한다. 대개는 자신의 의사와 어떤 관련도 없는 불의의 사고이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자신의 인생에 뜬금없이 나타난 악인, 어처구니 없는 실수 등에 의해서도 재앙은 충분히 촉발되고 여기에는 선악을 가리는 눈 따위는 없다. 세계의 이런 무심함과 무자비함은 그래서 고래로부터 많은 사상가들의 고민거리가 되어준 듯하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천하의 악인 도척은 천수를 누렸지만, 누구보다 선했던 백이와 숙제가 굶어 죽은 것을 보며 하늘의 도리가 옳은지를 물었다. 구약성서의 욥기는 선인인 욥이 야훼와 사탄의 내기로 인해 정말 뜬금없이 고통받는 이야기를 다룬다. 선한 사람이 이유 없이 재앙을 마주하는 것을 둘러싼 의문과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인도 종교에서는 시간축을 전생과 내생으로 확장시켜서 현생의 불행이 윤회의 고리에 이어져 있는 과보라는 해석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

힘든 사람 손잡아 주는 사회
이렇게 도통 이유를 알 수 없는 ‘미묘한 재앙’에 관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답은 노자의 것이다. 도덕경에서 그는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본다고 논했다. 애당초 자연에는 인간의 분별이 없으니 그런 질문을 묻는 것 자체가 우문인 것이다. 자연에 인간의 의지와 도덕을 비롯한 여러 인간성을 투사하는 습성을 버린 현대의 과학주의 전통에서는 노자의 천지불인이 작금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차별적 고통과 미묘한 재앙에 대한 근원적이고 유일한 답일 것이다.

2017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수해 현장. / 육성준 기자 eyeman2523@naver.com
2017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암리 수해 현장. / 육성준 기자 eyeman2523@naver.com

 

그러나 당장 재앙을 마주친 사람들에게 이런 물음은 어찌 보면 다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으니 최악은 아니다”는 등장인물의 논평은 그 재앙이 삶을 집어삼켜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속 편한 소리일 따름이고, 실제 작중 결말은 위의 대사와 달리 최악을 향해 치달아간다. <재앙은 미묘하게>에서 미묘함을 논할 수 있는 이들은 삶의 기반이 탄탄한 이들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저 당장 밀어닥치는 재앙을 틀어막는 데도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기에 어질지 못한 천지의 작용으로 재앙을 미묘하게 겪은 이들을 서로 돌보는 것은 인간의 몫이자 사회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애초 인간의 역사, 문명의 역사라는 것이 그 자연의 미묘함을 최대한 더 이해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고, 그 미묘함의 폭정에 맞서기 위한 분투였다. 물론 누구에게나 확률적으로 찾아올 수 있는 재앙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오만을 부려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야 만화 <재앙은 미묘하게>에 나타나는 파국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

나는 우리 사회가 그냥 그곳에 살았고,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미묘한 재앙을 마주한 모든 사람에게 ‘그저 어쩔 수 없었어’라고 무심히 말해주기보다는 재앙을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도록, 최악은 피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하늘과 땅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학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