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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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깨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1.01.14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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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 서울세종본부장 때도 편견 깨
대학 재학 중 결혼 6년만에 졸업…1991년 9급 공무원으로 출발
사진/ 육성준 기자
사진/ 육성준 기자

 

2021 도전하는 사람들
조경순

조경순(56) 충북도 공보관은 도정 역사상 첫 여성 공보관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건만 여성 공보관은 없었다. 공보관실은 기관의 보도·홍보 등을 관장하는 부서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업무내용을 알리고 홍보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부서로 꼽힌다. 여성이라고 못할 건 없음에도 남성들의 독무대였다.

물론 충북도에서는 여성 행정부지사·경제부지사·기획관리실장·경제통상국장 등도 나오지 않았다. 현재 6급 이하에는 여성들이 많으나 고위직으로 갈수록 손에 꼽을 정도다. 앞으로는 여성들이 전분야에서 일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그런데 조 공보관에게는 여성 1호라는 사실외에 숨겨진 얘깃거리가 많다. 옛날 어르신들은 “내 인생을 글로 쓰면 책이 몇 권”이라고 했다. 책이 몇 권까지는 아니지만 그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할 얘기가 많다고 한다. 충주가 고향인 그는 1984년 충북대 인문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다 1986년에 결혼을 하고 1987년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 과정에서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고 6년만인 1990년 대학을 졸업했다.

조 공보관은 “대학 재학 중 얼떨결에 결혼을 했다. 남편과는 나이 차이가 좀 난다. 남편이 결혼을 서두르는 바람에 갑자기 하게 됐다. 결혼 후 시댁에 들어가 시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살았다. 그 때부터 집안 일 하고 아이를 키우는데 힘들었다. 결혼 전에는 막내 딸로 곱게 자랐으나 결혼을 하니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후에 대학은 졸업했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 책을 많이 읽었다. 도서관에 가서 여성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후 그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다. 1991년 9급 공무원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 그는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전문 직업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매일 새벽까지 공부했다. 당시 남자 40명 뽑으면 여자는 1/10인 4명 밖에 안 뽑던 시절이라 악착같이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그는 30여년간 시부모를 모셨다. 시부는 지난 2018년, 시모는 지난해 돌아가셨다. 시어른과 함께 살면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평생 며느리 노릇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 공보관도 긴 세월 집안 대소사와 시어른들의 밥을 챙겼다. 그는 “어머니 아버지 취향이 달라 날마다 밥 두 가지를 따로 했다. 진 밥과 된 밥을 각기 다른 솥에 해서 드렸다. 일화가 무척 많은데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느냐”며 웃었다.

그는 1991년 옛 청원군 가덕면사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면사무소에서 일하며 시아버지의 권유로 틈틈이 소양고사를 봤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이 덕분에 1997년 충북도로 전입했다. 충북도로 들어와서는 국제통상과, 감사관실, 문화예술과, 여성정책관실, 원예유통식품과 등지에서 일했다.
 

첫 여성 서울세종본부장

1990년대는 사회 전체적으로 성차별이 심했다. 2000년대 들어 성평등을 부르짖은 수많은 여성운동가들 덕분에 조금씩 개선된 것이다. 공직사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자한테는 직급을 붙여줘도 여자는 ‘~씨’라는 호칭으로 통용됐고, 여직원을 배치하면 부서장들이 항의하던 시절이 있었다. 또 여직원들 한테는 고유의 업무를 주지 않고 심부름이나 하라는 상사도 있었다. 지금 50대 이상의 여성 공직자들은 대부분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 조 공보관도 더러는 참고, 더러는 싸우면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는 “국제통상과에 근무할 때는 나만의 무기를 갖기 위해 일본어 공부에 도전했다. 남편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져 무척 고생할 때였는데 뭔가 열중하고 싶었다.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따 일본어 통역을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일본 담당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도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를 계속해 통역할 정도가 된다.

그는 지난 2019년 1월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해 서울세종본부장으로 나갔다. 이 곳의 역대 본부장들도 모두 남성이었다. 서울세종본부는 청와대·국회·정부부처·향우회 등지의 주요 기관과 충북도간 가교역할을 하는 곳이다. 전국의 광역지자체들이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 이런 조직을 운영한다. 업무 성격상 남자 일이라고 하겠지만 조 공보관은 편견을 깼다.

그는 지난해 말까지 만 2년 동안 본부장 역할을 했다. 청와대와 국회가 있는 서울, 정부부처가 포진해 있는 세종, 그리고 청주를 왔다 갔다 하며 열심히 뛴 덕분에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시종 지사의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이 지사는 칭찬 안하기로 유명하다.

충북도는 이번 인사 발표가 난 뒤 “조 공보관은 서울세종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미래해양과학관 예비타당성조사 통과, 방사광가속기 오창 유치, 자치연수원 제천 이전 행정안전부 재정투자심사 통과 등을 측면 지원했다. 2022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의 국제행사 승인과 역대 최대 규모인 정부예산 6조8202억원 확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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