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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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착각인가
  • 한덕현
  • 승인 2021.01.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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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정치할 생각을 염두에 두고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윤석열은)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못을 박았다. 같은 날 모 조간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선 얼마전 퇴임한 노영민 전 비서실장이 “나는 윤석열 대망론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면서 그 이유는 나중에 말하자고 답변해 궁금증을 낳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넘나들며 강력한 차기대권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윤석열에 대해 공교롭게도 지난 2년간 누구보다도 서로 복심을 털어놓았을 두 사람이 동시에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인 것이 이채롭다. 해석하기에 따라선 여러 억측을 낳을 수 있지만 기자의 시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대통령의 말과 “그 이유는 나중에 말하자”는 노 전 실장의 언급이 특히 귀를 자극한다.

당장은 윤석열이 대통령 될 자질이 없는 건지, 혹은 대통령이 되기엔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있는지부터가 궁금하다. 아니면 윤석열 본인은 정치할 뜻이 추호도 없는데 괜히 언론이 떠들었나? 하는 자책도 든다. 하지만 근자에도 보수 언론들은 윤석열이 운전기사와 함께 순대국 먹은 장면을 되살려 서민풍모를 강조하고, 그의 조부와 부친의 고향인 충남 논산으로 취재인력을 파견해 족보까지 들추며 가문을 홍보하는 등 윤석열 띄우기에 본격 나선 느낌이다. 이처럼 윤석열의 대망론에 온갖 정성을 들이는 언론과 지지자들 입장에선 문 대통령과 노 전 실장의 말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정도로 들렸을 것이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한 언론매체가 국회출입기자를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에 적합한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전체 출입기자 중 197명이 설문에 응했는데 결과는 문재인 24.9%(49명), 박근혜 17.8%(35명), 손학규 15.7%(31명), 안철수 10.2%(20명) 순으로 나왔다. 당시 여론조사만 했다 하면 늘 1, 2위를 다투던 박근혜 안철수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고도 남을 일이다. 더군다나 안철수는 주력 후보들 중에서도 맨 뒤로 밀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 당선은 박근혜가 차지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그 이전인 17대 대선을 앞두고서도 있었다. 역시 모 언론사가 국회출입기자 100명을 상대로 누가 대통령감으로 가장 적합하냐고 물었더니 손학규(21%)가 1위로 나왔고 그 뒤로 이명박(18%) 박근혜(6%) 순이었다. 한데 대통령은 이명박이 거머쥐었다. 이렇듯 대통령 감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해서 꼭 당선까지 보장받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은 지금 감옥에 있다는 공통점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국민들로부터 오랫동안, 철저하게 검증받아야 뒷탈이 없다.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가 하고 있는 일이나 직업에 대한 단기간의 평가, 그리고 좋은 가문 혹은 부모의 후광으로 정치력을 인정받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지지자들의 그저 맹목적인 추종으로 리더십이 만들어지는 건 더 위험하다. 유권자들이 가장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특정인에 대한 우상화는 이로부터 출발한다.

당사자의 ‘실체’와는 무관하게 작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우상화는 결국 '허황된 신화'를 만들어 선거판을 주도하고 한 시대를 풍미하지만 결코 생명력이 길지 못하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망친 트럼프, 한국의 정의와 공정을 무너뜨린 이명박 박근혜가 좋은 예다.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차기 대통령 논란과 관련해 요즘 또 하나 우려스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도 저도 싫으니 제 3의 인물을 찾자는 게 그 것이다. 여권에선 그동안 나름(?) 적자로 꼽히던 이낙연이 이재명에게 지지도를 추월당한 후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갑자기 제3 후보 등판론이 꿈틀거린다. 이미 정세균 김두관 이광재 유시민 등이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은 부적절하다고 밝히는 바람에 이를 처음 입에 올린 이낙연의 입지는 당분간 더 위축되게 됐다.

야당의 고민은 더 크다. 정작 자기 식구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멀찌감치 뒷전으로 밀린채 당외 인물인 윤석열 만이 두각을 나타내자 당장 그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문제부터 헷갈리게 됐다. 이 와중에 불거진 문재인-노영민의 ‘윤석열 불가론’은 야당에게 또 다른 근심거리를 안기게 됐다. 앞으로도 검찰개혁을 놓고 ‘윤석열 공방’이 계속된다면 지지도를 끌어올리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현상이 빚어질 공산도 크다. 그는 검찰총장이 아닌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높이는 데는 여러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역대 대선에서 ‘제3의 후보'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는 흑역사를 반복해 왔다. 제풀에 꺾여 중도 포기하거나, 단일화의 부속물이 되거나, 막상 끝까지 완주하더라도 여지없이 낙선했다. 1992년 정주영과 박찬종, 1997년 이인제, 2002년 정몽준, 2007년 문국현과 고건, 2012년 안철수, 2017년 반기문이 그랬다. 한 순간엔 마치 금방이라도 당선될 것처럼 대세를 탔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다.

대통령은 하늘이 점지한다고 했다. 적어도 한 나라를 이끌겠다는 인물이라면 우선 치열한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에다 이를 인정받을 만한 그동안의 활동과 역할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목격했듯이 막상 방송토론회 한 번에 바닥을 드러내는 인물이 후보로 행세하는 걸 막으려면 이는 기본이다. 여기에다 정상적인 가정, 정상적인 교육, 정상적인 직업의식, 정상적인 사회관계, 정상적인 인성을 갖춰야 국민들이 후회하지 않는다.

자서전을 보면 희대의 부동산 투기꾼으로 상황마다 야비한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트럼프가 왜 미국을 망가뜨렸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 마찬가지로 성공한 CEO에다 토목공사의 신화를 이뤘다고 해서 통치까지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이명박) 한강 부지에서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야당의 부활을 이끄는 이벤트에 성공했다고 해서 나라까지 잘 다스리는 건 아니다.(박근혜) 그 내공의 부족함 때문에 결국 돈에 유혹을 당하고 최순실이라는 같잖은 여인네한테 국정을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나로서는 대통령의 말, “윤석열은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부분이 유독 등골이 서늘하게 들렸다면…글쎄다. 당사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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