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법정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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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정을 나서며
  • 충청리뷰
  • 승인 2021.04.2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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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성 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박재성 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지난 달 한 아이의 소년보호사건을 변호하였다. 국선보조인으로 선정된 직후 해당 기록을 복사한 뒤 예전 같으면 보호소년을 접견하기 위해 대전에 있는 대산학교로 가야 했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된 시점부터는 전화로만 접견이 가능하다. 보호소년에게 먼저 나에 대한 소개를 한 뒤 기록에 기재된 '범죄사실'을 말해주고 사실인지 물어본 뒤 모두 사실이라면 그 동기와 참작사유를, 일부라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어떤 내용이 다른지 등을 물어보았다.

그 아이는 초범이었다. 초등학교까지는 아무런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잘 했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원만했는데, 중학교에 진학한 뒤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다가 무단외박과 우범 환경에 노출되면서 급기야 그 아이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이 아이는 범행가담에 주도적이거나 적극적이지 않았고, 단지 다른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망을 보는 정도에 그쳤다. 본인도 그 행위를 하면서 두려웠기에 도중에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했고 그와 같이 말한 것을 다른 아이의 진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접견과정에서는 주로 그 범행의 동기뿐만 아니라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게 된 과정을 물었다.

그리고 '○○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등을 물어본 뒤, 나의 청소년기를 돌아보며 "○○가 한 행위를 만약 만 19세 이상의 성인이 되어서 똑같이 한다면 그때는 피고인의 신분으로 일반 형사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보호처분이 아닌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어.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어. 나도 그랬고 지금도 가끔 그래. 하지만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해. 이번 일이 ○○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나는 잘 모르겠어. 아까 꿈이 자동차 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선택과 책임은 ○○의 몫이야"라고 짧은 조언을 해주었다.

그 아이가 나를 '라떼꼰대'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라면서.
내 경험상 보호소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 아이들의 가정환경에 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보호소년의 뒤에는 대부분 문제의 부모가 존재한다. 보호소년들은 자신들의 부모에 관해서 '자녀의 비행에 대해 욕설과 폭력으로 해결하는 부모, 맞벌이를 하느라 자녀와 대화할 시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는 부모, 알콜중독증이 있는 아버지, 잦은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 등으로 표현하였고, 더불어 부모에 대한 불만도 얘기 하였다.

돌아가야 할 가정에서 아무런 위안과 보호를 받지 못했던 그 아이들이 쏟아낸 불만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나의 고민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요청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물론 접견내용을 토대로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해보면 보호소년의 잘못이 분명히 있었지만, 부모님의 자녀에 대한 냉담한 반응과 무관심을 종종 접하게 된다. 남의 일처럼 말할 땐 나조차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 아이의 부모님은 달랐다. 그 아이의 어머니께 전화를 했는데 부모님이 직접 사무실로 오시겠다고 하셔서 다음 날 두 분과 면담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가정환경과 학교생활, 교우관계에 관한 정보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확고한 지지의사를 확인하여 안도가 되었다. 그리고 건네주신 합의서는 잘 받아 양형자료로 법원에 제출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열린 심리기일에 그 아이의 부모님은 함께 출석하여 자녀의 잘못임에도 본인들의 잘못으로 돌리며 한 번만 선처해주면 다시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훈육하겠다는 호소를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아이의 이번 잘못은 한순간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탈이었고, 본인도 이 꼬인 매듭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기에 앞으로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으므로 부모님의 애정과 훈육의지를 믿어달라고 변호하였다.

판사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그 아이에게 차분하면서도 따끔하게 훈계를 하시고 초범이기에 이번만 부모님께 아이를 돌려보낸다며 1호 처분을 내려주셨다. 부디 그 아이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성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박재성 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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