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적 관광은 국내여행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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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적 관광은 국내여행부터
  • 충청리뷰
  • 승인 2021.06.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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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격조있는 패키지여행 없어, 인프라 구축 시간도 놓쳐

 

기자를 20년 했다. 그중 대부분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그리고 여행감독이 되었다. 여행감독은 여행을 기획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널리즘 동네에서 투어리즘 동네로 넘어올 때 코로나19가 터졌다. 해외 프리미엄 여행을 함께할 여행자 그룹을 구성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아 일단 국내 여행에 주목했다. 지난해 말 ‘집합 금지’가 내려진 이후로는 전국을 답사하며 프리미엄 한국 여행을 기획했다.

그러다 김부겸 총리의 해외여행 재개 담화를 보았다. 내용은 이렇다. “코로나19로 국가 간 이동이 오랫동안 제한되면서 항공·여행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해외여행 재개를 희망하는 국민들은 많아지고 있다. 접종을 마치고 출입국 과정 진단검사에서 음성이 확인되면 별도 격리 없이 여행이 가능하게 된다. 해외여행은 많은 국민들께서 기대하시는 일상 회복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귀를 의심했다. 코로나19로 국내 여행 관계자들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인데 해외여행의 물꼬부터 트겠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아웃바운드(내국인의 국외여행) 활성화를 발표할 것이면,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활성화 내용도 넣어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기본일 텐데 그런 기본적인 고려가 없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인트라바운드(내국인 여행)는 제주로 편중되어 부익부 빈익빈이 되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인데, 역시나 고려가 없었다.

코로나 방역 우수 국가라는 점을 활용하고 홍보할 겸 외국인의 한국 여행 활성화를 앞단에 두고(백신 적용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면 코로나 확산 위험은 거의 없으니), 뒷단에서 트래블 버블을 활용한 해외여행 활성화 정책을 함께 얘기했다면 수긍할 수 있었을텐데, 여행 고픈 국민들의 여망을 업고 인기에 영합한 정책만 늘어놓았다. 우리 사회는 소비력 기준으로 4만불 시대가 되었는데 우리 총리의 인식은 아직 2만불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총론의 방향성이 잘못되었는데 디테일도 없었다. 당장 해외 교포들의 모국 방문도 이중삼중의 잠금장치로 막혀있는 상황이다. 교포 중에는 코로나19 방역이 잘 된 고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그런데 고국 방문 사유가 제한되어 있고 그들에게 2주 자가격리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일단 그들부터 풀어줘서 고국 방문과 국내 여행을 유도했다면 유효했을 것이다.

국내여행 활성화 기대했건만
여행감독을 자처하고 국내여행 패키지를 두루 살펴보니 안타까웠다. 상당히 저발전 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국내 여행상품은 단품 판매 위주거나 안내산악회의 덤핑 상품뿐이었다. 패키지 강국다운 성취를 국내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우리가 해외에 가서 누릴 수 있는 가성비 좋은(혹은 격조 있는) 패키지여행이 국내에는 없었다.

이를 풀어서 얘기하면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이용할만한 패키지여행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은 판문점 하회마을 제주도 정도로 동선이 제한된다. 한국관광은 아직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여행업계 종사자들이 모두 이 문제의식에 동의하고 있다. 다만 고칠 시도를 하지 못했을 뿐.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히자 관광 업계에서는 국내여행 활성화를 기대했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니 좋은 국내여행 상품이 나오면 각광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여행사가 없었다. 국내여행 패키지는 여행사의 역할이 작아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저하고 있었는데 정부의 활성화 정책이 발표되니 이제 여행사들의 눈은 다시 해외로 돌아갈 것이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관광산업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해외여행이 활성화 되었고 일본은 국내여행이 활성화 되었는데 일본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일본은 인트라바운드 여행 활성화를 위해 구축해 둔 관광 인프라가 해외 여행객들에게도 활용되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인의 일본 관광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한국에 오던 중국 관광객들도 일본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7월부터 해외여행 빗장 푼다고?
코로나19로 관광 업계가 두루 힘든데 정부가 여행사들을 지원해서 매력적인 국내여행 상품을 개발하게 했다면, 한국 관광은 더 높은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주도 갈 돈으로 동남아 간다’는 시대에서 코로나로 외국을 못가니 ‘동남아 갈 돈으로 국내여행을 한다’는 말이 나오도록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프랑스처럼 격조 있는 국내여행 패키지를 가진 나라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

국내 관광산업에서 가장 저발전된 숙박을 업그레이드 했다면 일본 관광과의 격차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걱정된다. 앞으로 일본과의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한류 관광객에 의존하고 있지만 관광산업이 후진적이면 중국 관광객 중 고급 휴양객은 대부분 일본에 몰리고 우리에게는 저가 패키지 관광객들만 올 수 있다.

 

교포 찬스를 살리지 못한 부분도 못내 아쉽다. 코로나19 방역이 좋은 고국을 도피처로 찾아온 교포들이 이용할만한 국내여행 패키지를 개발했다면 이후 이 상품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바운드 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면서 국내여행 특히 프리미엄 국내여행 패키지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다들 말했는데, 립서비스만 하고 끝나는 분위기다. 누가 앞장서 주길 기다리면서 간만 보다가 해외여행이 풀린다고 하니 다시 돈이 되는 해외로 모두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국내 여행지 답사를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국내 여행 관련 정보는 SNS를 많이 쓰는 20대 취향에 맞게 편제되었거나 아니면 가족단위 체험 여행객 정보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맛집 정보 위주로 여행 정보가 수렴되어 있었다. 격조 있는 국내 여행을 하려는 중장년 여행자를 위한 여행 정보 큐레이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명품 한국 기행’과 ‘명품 한국 스테이’를 구성하기로 하고 이에 맞는 여행지를 답사했다.

국내여행의 골든타임이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7월부터 빗장을 푼다는 총리 담화는 국내여행 활성화의 전제를 흔들었다. 나중에 코로나19를 다 극복하고 나서 가장 힘이 빠진 순간을 꼽으라면 이 때를 꼽을 것 같다. 안타깝다.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국내여행 인프라를 구축할 시간을 놓쳤다.

/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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