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역할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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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역할극
  • 권영석 기자
  • 승인 2021.06.2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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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멀티 페르소나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대중문화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페르소나의 본래 어원은 인간의 이중성이지만, 최근의 페르소나는 타의에 의해 형성된 공적인 자아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이를 부캐라고 말한다. 살면서 부캐는 필요하다. 자기 생긴 대로 살고자 한다면 종국에는 자연인으로 회귀하는 일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나도 중저음의 훈육자라는 부캐가 생겼다.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갔더니 선생님이 부모의 역할극에 대해 설명했다. 엄마는 고음으로 소리를 내고, 아빠는 저음으로 소리를 내며 어릴 때부터 훈육을 하라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고음으로 아이를 대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가르침 이후에는 역할을 바꿨다. 갓난아이에게 무슨 훈육이 필요할까 생각도 들지만 일단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다.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역할들이 주어진다. 수긍하고 노력하다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리는 것 같다. 그래서 사회가 불확실해지는 요즘 같은 때 부캐가 유행하나 생각된다. 그런 가운데 최근 취재를 하며 서울의 한 지인에게 청주 시민단체에 대한 한탄을 들었다. 이 역시 결론은 역할극의 부재였다.

지인은 시민단체 모 인사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청주지역의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연이 닿은 청주 사람들과 공동대응을 하자며 내용을 공유했다. 그리고 지난달 모여 세부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일정을 논의하기로 약속했다. 처음엔 모 인사가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내용을 전해 듣고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주변에 전달했다. 청주 사람들은 모 인사의 영향력을 떨쳐낼 수 없었고 지인은 그가 모임에 참여하는 대신에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모임 첫날에 지인과 모 인사는 의견 충돌을 빚었고 모임은 파토 났다.

사회에서 각자가 맡은 책무에 따라 역할이 있다. 지인은 지자체를 견제하는 역할이라면 더 공부해서라도 논리를 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대립각을 세우고 장군 멍군 하다보면 제 3자가 중재안을 던질 수도 있고, 그 사이에 격차가 좁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청주사람들은 너무 점잖다. 지인은 전국적인 땅 투기 의혹이 일었을 때 등기 때본 사람이 몇이나 있나?”성명서 낸 것 외에는 뭐 한 것 있나?”고 되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취재 건도 마찬가지다. 모 인사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 사안을 알아보고, ‘해결 안 된다는 선을 그어 놓고 출발했다. 하지만 사건의 심각성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면에 다른 위법한 문제도 많았다. 결국 이후 경찰조사 등으로 확대됐다. 그 과정에서 일부 책임자는 보직에서 해임됐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최근 일어나는 이슈들에 대해서도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늦장 대응한 것들이 많다. LH발 부동산 투기의혹, 오창 여중생 사망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투기 건의 경우 전주, 용인 등은 시민단체와 언론이 연대해 의혹에 대해 등기를 떼가며 문제를 지적하던데, 우리지역은 언론시민단체 모두 그런 모습이 부족했다. 몇 년 전만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각자에 대한 역할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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