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와 문명을 지배하는 공통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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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와 문명을 지배하는 공통 원리
  • 충청리뷰
  • 승인 2021.06.2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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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와 문명을 지배하는 공통 원리

 

인간이 문명을 이루게 된 것은 불과 1만년 남짓인데, 인간이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시점은 이보다 휠씬 이전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무한한 반복의 학습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인간이 과거에서부터 해왔던 수렵과 사냥 행위는 무수한 반복 과정에서 숙련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익숙한 수렵과 사냥기술을 가지게 됨으로써 사회적 집단을 이루며 지구 곳곳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그 후 인간은 주변을 개척하고 다른 생명체를 길들이거나 착취하는 과정을 통해 잉여 생산물을 만들었고, 또한 효과적으로 학습하고 소통하는 능력은 현대문명의 다양한 직업과 재능으로 발전시키면서 지금의 정교한 문명사회 체제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생명체의 시작은 접촉에서 비롯
유전자로 변화하는 생명체도 마찬가지이다. 지구의 45억년 나이에서 DNA 분자로 이루어진 유전자 덩어리를 가진 생명체가 출현한 것은 30억년 전이라고 한다. 수십억 년의 지루하고 단조로운 시간 속에서 생명체는 분자 단위에서 일어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상호작용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또 서로 협동할 수 있도록 선택하고 변형되는 과정을 거쳐왔다.

생식적 성공으로 집단을 이루게 된 생명체는 과거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상호작용을 통하여 분자간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간적 체계가 완성된 것이고, 새로운 환경이나 도전에 적응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진화적 경로도 가지게 된 것이다.

생명체의 시작은 접촉에서 비롯된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탄생한 수정란은 새로운 생명체를 위한 시공간을 부여한 한 개의 덩어리이다. 둥근 알 모양의 수정란은 자라고 변형되면서 최종적으로 복잡한 3차원적인 구조의 식물이나 동물 또는 사람으로 완성된다.

초기 수정란 발달에서는 부모세대가 물려준 유전자 작용으로 세포의 수가 많아지도록 활발한 세포분열이 일어나게 되는데, 세포의 수가 많아짐으로써 세포 간에는 서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된다. 제한된 공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세포는 계속적으로 분열을 하여 조직으로 발달하게 되지만, 불리한 위치를 차지한 세포는 점차적으로 사멸하게 된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여 분열을 계속할 수 있는 세포는 순전히 운이 좋았던 것일까? 생식에 성공한 세포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유전자 산물들이 주변 다른 세포들이 만들어내는 유전자 산물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은 것이다. 부모가 물려준 과거 유전자로는 생명체 내에서 일시적인 형태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세포는 반복되는 분열을 거치며 생명체에 필요로 하는 유전자들을 끊임없이 작동시키고, 때때로 다른 세포들과 협력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한 특별한 선택을 받은 세포의 특징은 필요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들이 서로 근거리에 있어서 효과적으로 함께 작동할 수 있게끔 변형되고 또 함께 다음 세대로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서로 가까이 있는 유전자군들은 서로 협력을 통하여 생명체에 이득이 되도록 진화된 결과물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났을 때
2014년 8월부터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6개월짜리 짧은 연구년을 가졌다. 그보다 먼저인 1997년 8월 그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였고, 2003년 8월까지 박사학위를 받은 후 새로운 직장을 얻어서 떠나게 될 때까지 만 6년을 살았던 곳에 11년 만에 다시 돌아간 것이다. 나를 기억하던 한 분이 이런 미국 깡촌 시골의 대학으로 왜 다시 돌아왔느냐? 라고 물었다.

뭔가 그럴싸한 답변을 해야겠기에, 내 대답은 “내 아들이 여기에서 태어났어. 그에게는 여기가 고향이잖아. 고향을 보여주고 싶어 돌아왔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4년 당시 중학교 2학년으로 한창 사춘기 나이였던 아들도 이런 시골에 왜 자기를 데리고 왔느냐 라는 원망을 아주 심하게 표출하곤 하였다.

아이오와주립대가 있는 도시 이름은 에임즈 (Ames)인데, ‘사랑하는 사람’ 또는 ‘진정한 친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1년 만에 다시 돌아간 에임즈의 모습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예전의 모습들이 남아 있어서, 이른 아침에 걸어서 학교를 갈 때면 그 길을 걸었던 과거 느낌이 너무나 생생한 기억으로 떠올라 현재의 나를 잊어버리고 과거에 존재했던 나로 착각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의 나 자신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또 에임즈라는 진정한 친구와 사랑을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15년 2월 연구년을 마치고 귀국하였을 때, 영국유전학회 회장을 지낸 엔리코 코엔 (Enrico Coen) 교수의 <세포에서 문명까지 (Cells to Civilizations)> 라는 번역서 신간을 선물 받았다. 서평을 써주기로 하고 받은 책이었는데 생물의 진화와 인간 문명의 진행 메커니즘이 같은 원리에 의해서 작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수 년이 지나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이 요구되는 현실에서 변화하는 힘과 원리가 무엇인지를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라고 불리우는 갑작스런 비상사태를 맞은 지금의 우리는 교육, 의료, 국가 정책, 비즈니스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위기에 처한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로 봐야한다. 단독으로 생존이란 불가능한 이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를 극복하려면 생물의 진화와 인류문화에 공통적인 원리인 서로 협력하고 돕는 존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을 고찰한 고전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 박사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종으로서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김관석 충북대 축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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