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까지 가해자 죄를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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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까지 가해자 죄를 묻겠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1.06.3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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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 '여행테라피' 대표, 2016년 청주시 B면 이장단 성폭력 고발
가해자들 아직도 이장으로 활동 ‘분개’ “여성친화도시 청주 맞나”
이소리 '여행테라피' 대표
이소리 '여행테라피' 대표

 

이소리 씨, 이 사람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그는 지난 2016년 9월 업무 중 몇 몇 남성들로부터 느닷없는 성희롱·성추행을 당했다. 그 이후 가해자 처벌을 위해 무진 애를 썼으나 아직까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5년 동안 한시도 이 사건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그가 얼굴을 공개하고 인터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다른 이름은 ‘피해자 모 씨’ 였다. 이 씨는 지금 여행사 ‘여행테라피’를 운영하고 있다.

이 대표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작가로 활동했다. 결혼한 후에는 1992년 남편과 함께 괌에서 여행업을 시작했다가 청주로 돌아와 2004년 다시 여행사를 열었다. 그러던 중 2016년 청주시 B면 마을 이장단과 주민자치위원장, 지역구 일부 의원, 농협조합장 등 42명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연수를 떠난다. B면 이장단협의회는 이 대표 부부가 운영하는 여행사에 해외연수를 의뢰했다.

이 대표를 포함 2명의 여성 가이드는 4박5일 동안 40명이 넘는 남성들을 인솔했다. 대부분 60~70대 였다. 그의 남편은 다른 일정이 있어 함께 가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성폭력사건이 발생했다. 모 씨는 버스안에서 여성 가이드에게 야동을 보여주고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고, 모 씨는 노래방에서 여직원의 엉덩이에 얼굴을 비볐는가 하면 끌어안기도 했다고 한다. 또 모 씨는 성매매 알선을 요구하고 성적 농담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민 모, 이 모, 한 모씨 등 3명이 성추행 및 성희롱을 했다고 지목했다. 이장단협의회장이 버스 안에서 한 차례 방송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수수방관 했다는 것.
 

“두 이장 모두 가해사실 있다”

연수가 끝난 뒤 이 대표는 한 모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길고 긴 재판 끝에 한 씨는 2018년 1월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사회봉사 160시간 선고를 받았다. 이 대표는 “한 모씨에 대한 형사사건을 마무리한 뒤 성희롱혐의로 민 모씨에 대해 민사소송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소시효 기간인 3년이 지났다는 말을 들었다. 담당 변호사가 이 시간을 놓친 것 같다. 너무 억울하다. 이 모씨도 성추행 가해자인데 피해자는 함께 간 다른 가이드였다. 그 가이드가 개인적 사정 때문에 고소하지 않았을 뿐이지 혐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후에 두 사람은 죄가 없다고 항변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이 대표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는 남편인 당시 여행사 대표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남편은 이장들에게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장단 대표는 오히려 ‘연수 참가자들이 똘똘뭉쳐 이 대표 측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맞섰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남편은 말 한마디 못하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이 대표는 “42명의 이장, 시의원, 농협조합장, 주민자치위원장 등 마을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사건 현장에 있었으나 여성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3명을 말리는 자가 없었다. 사건 후에도 진정성있게 사과하지 않았다. 남편의 죽음을 애도한 사람도 없었다”고 분개했다.

더 기막힌 것은 사건 관련자들이 아직도 B면 이장단에서 활동한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후 청주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이 항의하고 한바탕 난리가 나자 가해자로 지목된 3명은 이장을 사퇴했다. 하지만 벌을 받은 한 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 명은 슬그머니 다시 이장이 됐다. 이들은 현재까지 이장으로 활동하고 그 중 한 명은 이장단협의회장이 됐다.

그래서 충북여성연대와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4월 19일 청주시청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좀비처럼 부활하는 성비위 혐의자를 규탄한다. 청주시는 조례개정 및 구조적인 검증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2016년에도 이·통·반장 관련 조례 개정을 촉구했으나 현재까지 되지 않았다. 그러나 B면 측은 두 사람이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없고, 이장단에서 협의회장을 투표로 뽑은 것이기 때문에 간섭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본인들이 양심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면 청주시가 나서야 하지만 아무도 관심갖는 사람이 없다. 피해자는 5년이 지나도록 고통을 호소하고 여성단체들은 지속적으로 항의하는데 가해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 문제는 해결될 때까지 시끄러울 것이다.

청주시 보도연맹 사건을 몸으로 표현한 이소리 대표
청주시 보도연맹 사건을 몸으로 표현한 이소리 대표

2016년 사건으로 삶이 바뀌다

이 대표는 “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게 없다. 여성친화도시 청주시는 이름에 걸맞는 행정을 해야 되지 않나. 민 모씨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실수로 공소시효 기간을 넘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3·8 세계여성의날 충북대회에서 여성인권상을 받았다. 성폭력을 고발하고 가해자들과 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이 일을 후회하지 않으나 힘들다고 했다. “나는 피해자이고 이를 세상에 고발한 것인데 꼬리표가 붙는다. 가해자는 그냥두고 피해자를 도마위에 올려놓는다. 너무 힘들다.”

이 대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주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그림 그리는 작가였으나 이 것으로 충족이 안되자 몸으로 표현하는 쪽을 택했다. 남편이 하루 아침에 저세상으로 간 것이 본인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를 극복하고자 퍼포먼스를 하게 됐다고 한다. 주변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서울과 청주 등지의 전시회 사전 행사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리고 2019년 서울을 오르내리며 유명작가와 감독한테 다큐 제작기술을 배웠고 지금은 단편영화를 만든다. 그가 대표로 있는 영상제작업체 ‘예술로통한다’에서는 단편영화 ‘이유있는 날개짓’ ‘소리 무심천에 묻다’ 등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작가의 재능을 살려 하고 있는 일. 연극 ‘치마’를 비롯해 다큐 ‘그날 곡계굴’ ‘1950 안덕벌’ ‘외눈박이 울엄마’ 등의 작품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사의 진실을 알린다는 것. 보도연맹, 민간인학살, 위안부 등의 역사적 사건이 배경이다.

여기까지는 예술활동의 일환이고 본업은 여행사 대표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려고 한다. 그 전에 할 일은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죄를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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