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계속되면 혁신인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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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가 계속되면 혁신인 줄 안다?
  • 충청리뷰
  • 승인 2021.07.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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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재활용법 다른 한·일
한국 레일바이크 설치 일본은 관광열차

SRT를 만들 때 명분 중 하나는 경쟁력 강화였다. KTX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SRT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강남에서 출발하는 노른자위 노선만 운영하는 SRT와 경쟁하기 위해서 KTX는 어떤 노선을 걸어야 할까? 인구가 적어 수익이 나지 않는 오지 노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속도 서비스 가격 경쟁 와중에 한국 철도가 수행했던 이동 복지를 계속할 수 있을까?

철도 노선을 기준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다면, 모세혈관이 없는 나라와 있는 나라로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모세혈관이 없는 쪽이 한국이다. 일본은 어떻게든 오지 지선을 유지한다. 아마 JR의 이용 요금이 비싼 것은 지선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반면 한국은, 특히 지자체는 이용자가 적은 철도 노선을 레일바이크로 바꾸는데 열심이다.

 

유행처럼 설치된 레일바이크 /뉴시스
유행처럼 설치된 레일바이크 /뉴시스

 

이젠 진부해진 레일바이크

 

철도역을 기준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다면, 한국은 철도역을 다른 용도로 바꾼 것을 자랑하고 일본은 역사를 허물어 무인역으로 만들어 유지시킨 것을 자랑한다. 한국의 폐역은 박제되어 추억을 판다. 일본의 무인역은 철도 고유의 기능을 판다. 무인역이지만 여전히 기차역으로 기능한다. 일본 오지에 가면 이런 무인역을 무시로 볼 수 있고 나름 관광명소가 된 곳도 많다.

마지막으로 철도의 재활용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다면, 한국은 레일바이크 등 레저 시설을 설치한 것을 자랑하고 일본은 관광열차를 만들어 다시 기차가 달리는 것을 자랑한다. 철도 노선을 없애면 한국은 공식처럼 레일바이크를 만든다(요즘은 산책로를 만들기도 한다). 최초의 레일바이크는 신선했지만 이제는 벽화마을처럼 안이한 지역재생의 클리셰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포기를 혁신이라 포장하는 곳이 없지 않다.

일본은 과거의 기능을 살리지는 못하더라도 기차를 달리게 하는데 주목한다. 특히 목재 운송용 협궤를 적극 활용한다. 일본 전통 편백숲을 보존한 아카사와 숲은 예전에 편백나무를 실어 나르던 협궤를 관광열차로 활용한다. 구로베 댐을 건설할 때 자재를 나르던 도록코 협궤열차 역시 관광열차로 바뀌어서 협곡 사이로 사람들을 나른다. 기존 협궤를 사용하지 않고 산책로로 활용하는 야쿠시마 산림열차 같은 곳도 있지만 대부분 기차를 다니게 한다.

두 나라 모두 나름의 일관성이 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레일바이크가 등장하는 것이 과연 맞는 방향인지 의문이 든다. 우리가 철도의 효용과 경제성만 남기고 모든 것을 버릴 때 일본은 철도가 할 수 있는 작은 기능을 악착같이 살려냈다. 의미를 되살리고 고유의 기능을 살려내는 모습에서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엿보인다.

사실 일본도 이렇게 적극적인 철도 정책을 펴는 것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애초에 협궤로 철도를 시작해서 표준궤와 호환이 안 된다. 심지어 협궤와 표준계의 중간 정도 레일도 있어 조건이 복잡하다. 일본 또한 오지 노선을 유지하는데 부담을 느껴 일부 간이역은 폐쇄시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철도로 근대를 이룩한 강렬한 원경험이 있어 철도 장인들은 오지 노선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최남단 니시오오야마역을 방문한 필자
일본 최남단 니시오오야마역을 방문한 필자

 

관광상품이 된 일본의 외딴역

 

우리의 철도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갈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미국식 도로 중심 교통 체계를 세우고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해 이에 더욱 집중하면서 철도는 뒷전이었다. KTX가 도입된 뒤에 주도종철구조에 변화가 생겼지만 KTX는 간선망 위주로 발전했다. 그리 넓지 않은 나라임에도 철도의 발전 방향은 속도였다. 서울~부산 그리고 서울~목포 간 운행 시간을 줄이는데 집중했다.

JR(일본철도)의 최남단 역인 니시오오야마역도 일본 철도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는 무인역이었다. 규슈 최남단의 명산 가이몬다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인스타 맛집으로 꼽히는 곳이다. 한국 관광객 중에서도 이런 이유로 이 외딴역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기차가 뜸한데 일부러 기다려서 가이몬다케를 배경으로 기차가 들어오는 풍경을 찍곤 한다.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기분 좋게 올릴 수 있었다.

이 니시오오야마역을 중심으로 검은모래 해변과 가이몬다케 그리고 인근의 용궁신사가 규슈올레로 연결되어 있다. 제주올레 외전 격인 이 길을 걸으면 가이몬다케의 웅장함과 검은모래 해변의 애잔함 그리고 용궁신사의 화려함을 두루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니시오오야마역에서 무료하게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 시간을 붙드는 역이 우리나라에선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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