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에게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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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에게 바라는 것
  • 한덕현
  • 승인 2021.08.25 09: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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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의 대선출마에 대해 가장 호감이 가는 건 자신이 일했던 현 정부에 비열하게 각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 본인을 극진히 키워준 주군에까지 온갖 저주와 악담을 퍼부으며 대권까지 넘보는 윤석열, 최재형과는 분명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김동연도 현직에 있을 때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론 등을 놓고 정권과 마찰을 빚었지만 이는 국가정책에 대한 소신이었지 결코 인간적 배신이 아니었다. 때문에 새로운 정치를 주창하는 김동연에게 나름 신뢰가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한덕현 발행인 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시사 격외도리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건 그가 누구보다도 본인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또 스스로의 한계까지도 꿰뚫어 보며 대권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법으로 보장된 권력을 맘껏 누리다가 별다른 비전도 없이 여론에 편승해 어? 하다가 대통령 자리까지 넘보는 이들과는 분명 다르다. 정치하려는 목적과 방법부터가 윤, 최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그의 이제껏 행보를 보더라도 진정 충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며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기술력 하나만 믿고 산업전장에 뛰어드는 벤처기업, 스타트업이라고 소개하며 특히 한국사회에서 제 3지대 신당과 후보는 쉽게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사실, 김동연의 대선출마에 여론은 아직 큰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거대 양당 구도를 흔들기엔 아직 스타성이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역대 대선의 방정식, 즉 제 3지대 후보의 명멸을 국민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선 과거 반기문과 안철수의 전철을 우려하는 시각이 오히려 더 많다. 그가 출마의 변으로 내세우는 말들, “기존 정치세력에 숟가락 얹을 생각이 없다”,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세력 교체를 이끌겠다”, “아반떼(아래로부터의 반란을 꿈꾸는 떼)”, “경제 문제나 국가 경영은 몇 달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다. 경제 정책은 외주를 줄 수도 없다”, “좋은 사람을 갖다 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진흙 속 진주도 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고르는 것이다등 등. 하나같이 귀가 솔깃하는 워딩이지만 결국 관건은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는 현실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또 이를 통해 얼마나 세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김동연은 자신의 지론인 '대한민국 금기 깨기'는 기성 정치판의 관행과 어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의 바람대로 본인의 등장과 함께 대선판이 휘청거린다면 그 자체로도 엄청난 변혁이다. 이와 관련, 무엇보다도 희망적인 것은 국내 정치와 내년 대선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이 극에 달해 있는 작금의 시국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대선을 최악이라고 평가절하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얼토당토 않은 사람들의 출마 러시에 꼴뚜기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는 비야냥은 이젠 축에도 못 낀다. 겨묻은 놈이 설치니 똥묻은 놈은 아예 날뛴다고 자학할 정도다.

김동연의 출마는 단순히 링에 오르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여론 층을 흡수할 최적의 대안으로 인식돼야 그나마 설득력을 얻는다. 이도 저도 싫은 국민들에게 자기만의 눈도장을 찍을 수 있어야 비로소 설 땅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의 말대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치를, 그 것도 흔들리지 않고 뚝심있게 실험해야 할 책무가 있다. 설령 이번 대선에서 실패하더라도 차기를 위해선 그래야 한다고들 한다. 안 그러면 지난날의 안철수, 그리고 청년정치를 기치로 혜성같이 등장했다가 결국엔 구태정치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이준석 꼴이 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우려다.

불가능할 것도 없다. 국민들의 정치불신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건 역으로 그만큼 새로운 정치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것의 일단이 지난번 이준석 현상, 2030MZ세대들의 정치세력화와 여기에 덧붙여 기성세대들의 적극적인 공감까지 이끌어내는 이른바 반란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김동연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어필하느냐는 결국 본인에게 달려있다. 처음엔 호기있게 등장했다가도 현실 정치에 부딪혀 쉽게 타협하고 쉽게 포기했다가는 충북의 이미지만 흐리게 된다. 택도 없는 연고를 들이대며 충청권 대망론을 펴는 어느 후보처럼 국민 기망과 사기가 아니라 김동연이 진정 충청의 적자이기에 충청인의 뚝심을 기대해 보고 싶은 것이다. “충청권 대망론은 편협한 지역주의가 아니라 통합과 상생의 정치와 역할을 말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백번이고도 옳다.

또 있다. 앞으로 정치를 하면서 사사건건 남의 발목을 잡거나 흘러간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는 상생은 커녕 과거의 기억까지도 부관참시하려는 적 대 적 다툼만 넘쳐난다. 갈등과 대립, 반목은 민주정치의 숙명이라고 하지만 현 정치는 국민들을 너무 분열시킨다. 친일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도 정상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그 시점부터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가면 해결될 일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1970~1980년대 운동권 전력을 평생 우려먹으려는 진보에 환호하지도 않고 친일의 은혜로 대대손손 호의호식 하며 온갖 기득권을 누려 온 보수와 수구에도 현혹되지 않는다. 순국 78년만에야 고국의 품에 안긴 홍범도장군의 교훈은 이제 대한민국도 지긋지긋한 이념의 굴레를 벗고 역사발전의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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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런 대선판을 걱정하면 유독 두 사람의 유훈이 떠오른다. “정치란 선악을 판단하는 종교 행사가 아니고 덜 나쁜 사람을 골라 뽑는 과정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하면 가장 나쁜 놈이 당선된다.” 생전에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승만, 박정희 독재에 맞서 쩌렁쩌렁한 일침을 가한 함석헌이 남긴 말이다. 이상 정치, 이상 국가를 실현하려다가 끝내 좌절한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를 당한다는 것이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역대급 저질 대선, 배신자가 판치고 가정과 사회관계에서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불량아들이 서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대는 요즘, 아닌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벌써부터 찍을 X이 없다고 푸념한다. 그렇다고 관심과 투표에 주저한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건 저질스런 인간의 국가 지배와 이에 따른 국민 신음일 것이다.

김동연이 할 일은 이를 막아내는 것, 적어도 이를 위한 단초를 제공하려는 노력이다. 바로 이 것이 대권주자 김동연 역할론의 핵심이고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지상과제가 된다. 자신을 신임한 사람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실력과 비전, 그리고 인간의 심성으로 정치를 하는, 김동연이 말하는 새로운 정치는 결국 이 것이고, 여기에 실패할 경우 우리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저질스런 인간에게 지배당함을 괴로워하며 함석헌이 말년에 되뇌었다는 자책을 다시 반복할지도 모른다.

누가 나처럼 수줍은 놈을 미친놈으로 만들어 놓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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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범 2021-08-25 12:05:03
극진히 키워준?? 주군?? 도대체 지금이 어는 시대입니까. 주군 찾고 보은 찾고 하는 것이 파벌정치, 계파정치의 시작이고 결국 유구 이래 망조의 원인인것을. 김동연이 자신을 키워 주었기 때문에, 주군이기 때문에 할말을 못한다면 그는 국민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자기 주군의 집사노릇이 제격인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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