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첫 마음 ‘본정’ 이종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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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첫 마음 ‘본정’ 이종태 대표
  • 충청리뷰
  • 승인 2021.08.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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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베르사유 공원에서 초콜릿 떠올려
청주에 충격적인 초콜릿 맛 소개, 시민들 열광
'감칠본정' 상표 등록 마치고 소스 연구 중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사이공간이다. 어린 시절의 인디언 텐트처럼 숨을 수 있는 곳,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나만의 장소.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악을 공유하듯, 의미 있는 장소를 공유함으로써 도시가 커다란 헤테로토피아가 될 수 있도록 한 해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헤테로토피아를 묻고 찾아가고자 한다.

 

 

로컬은 지역을 말한다. 지역적인 것.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여기 가까이에 있는 고유한 것들. 새벽이나 늦은 밤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달릴 때 느끼는 싱싱하고 달큰한 공기,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돌고나서 먹는 두부부침과 같이 여기가 아니면 감각할 수 없는 것들.

코로나가 잠식한 지구에서 활동 범위가 좁아지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로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로컬이란 단어가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세계화를 외치던 1990년대 글로컬이 유행했다. 그리고 2020, 코로나는 글로컬에서 글로벌을 지우고 로컬만 남겼다. 로컬,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비즈니스, 비로컬. 넥스트로컬. 로컬푸드, 로컬 브랜딩, 로컬소비, 로컬에듀, 로컬시학, 로컬뉴딜. 로컬을 단 다양한 명명(命名)들이 쏟아진다. 바야흐로 로컬 전성시대다.

청주에서 로컬을 생각할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군산에 이성당,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청주에는 본정(本情)이 있다. 카페와 디저트 문화가 보편화되기 이전부터 우리에게 본정이 있었다.

 

본정 5층 갤러리, 이종태 대표
본정 5층 갤러리, 이종태 대표

 

헤테로토피아, 나를 세우는 곳

파리 세느강변을 걷다가 지겨워져 뒷골목에 갔어요. 그리고 우연히 초콜릿 상점에 들어갔어요. 바닥부터 천장까지 초콜릿으로 가득한데, 그런 장면을 처음 본 거예요. 먹어보니 가나 초콜릿과 다르더라고요. 가나 초콜릿은 버터 때문에 미끄덩거리는데 뭐랄까 깔끔하게 떨어지는 거예요. 서점에는 한쪽 벽면에 초콜릿 관련 서적으로 꽉 차있고. 한국에선 이빨 썩는 불량식품이라고 하는데. 그곳 사람들은 신비의 명약이라고 하는 거예요. 한국에 들어오면서 제품에 대한 진실성은 사라지고, 맛도 왜곡된 거죠.

섬유회사에서 원단 바이어와 브랜드 관리를 했어요. 덕분에 분기에 한번 프랑스에 갔어요. 1995년 가을이었는데, 파리에서 방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조금 떨어진 베르사유에 호텔을 잡았어요. 맞아요. 베르사유 궁전이 있는. 다음날 이른 아침 호텔 뒤 편의 공원을 산책하다 무심코 생각했어요. 프랑스에는 왜 디저트가 많을까. 초콜릿이 왜 많을까. 사업이 참 고행이에요.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일 호시절이었어요. 위로와 평온의 시간. 그때 그 생각의 시간이 있어서 본정이 있게 된 거죠. 살아가면서 자꾸만 만나게 되는 시간, 그때의 장소가 헤테로토피아가 아닐까요. 제겐 베르사유의 이름 없는 공원, 그 벤치가 헤테로토피아에요.

IMF가 되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초콜릿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올바른, 진짜를 도입해보자. 98년도에 인삼초콜릿연구소를 처음 만들고, 1999828일 본정을 오픈했어요.

왜 청주였냐고요? 유럽의 초콜릿 회사는 시골의 낙농에서부터 시작해요. 서울보다 지방에서 시작하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자금도 넉넉하지 않았고, 천천히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청주는 당시에 젊은이의 도시, 교육의 도시였고, 소비도시였어요. 스윗한 아이템이 통할 거라 생각했어요. 이화여대 앞 미고라는 유명한 무스케익 상점의 제과장을 영입했어요. 초콜릿 무스케익을 청주에 처음 들여온 거죠. 작품 만들 듯이 케익을 만들었어요. 꽤 센세이션 했어요. 새로운 맛과 볼거리를 연출한 거죠. 새로운 문화 촉매가 된 거에요.
 

그 시절 성안길 안쪽에 자리하던 본정을 기억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너무 예뻐서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초콜릿 조각 케익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헨젤과 그레텔속 마녀의 과자집을 연상시켰고, 그 안의 마녀와 잔혹한 스토리는 모두 잊은 채 설레는 마음으로 무엇을 고를지 한참을 망설였었다.

 

1995년 가을, 베르사유
1995년 가을, 베르사유

 

36.5사랑 이야기

초콜릿을 만지면 체온과 접점에서 녹는다. 엄마 자궁 안에서의 온도, 36.5의 사랑. 본정(本情),소리 내어 부르면 마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나올 법한 레트로한 고백 같다. 첫 마음 그대로 전하겠다는 그의 진심이 전해진다. 그 마음의 시작은 1995년 베르사유 아침 산책길의 공원일까? 본정 5층 갤러리 테이블에 그 날의 사진이 놓여있다. 그 사진에서 첫 마음을 기억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본다.

그의 첫 마음은 매일 갱신된다. 감칠맛 나는 한우를 맛있게 먹고, 고기 먹은 걸 잊게 하는 맛있는 디저트 한 상을 차려내고 싶다는 바람은 이미 실현중이다. 감칠본정상표 등록을 마치고, 한우와 곁들일 초콜릿 소스도 연구 중이다. 식사를 하면서 초콜릿과 관련한 공연을 보는 문화 콘텐츠도 구상 중이다. 맛과 즐거움을 동시에 연출해주는 새로운 식문화로서 지역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그가 창조해 갈 미래의 본정은 어느 누군가의 헤테로토피아가 되지 않을까.

/ 이정민 청주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주무관·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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