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하는 척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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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하는 척 대잔치’
  • 충청리뷰
  • 승인 2021.09.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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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하는 척’
내용보다 형식 중요시, 형식 채우기 급급

얼마 전 주로 공무원과 일을 하는 지인을 만났는데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가 진짜 선진국이 맞는 것 같아요.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안 하고 하나같이 하는 척만 하는데 나라가 이렇게 잘 돌아가는 걸 보니, 우리나라가 참 안정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와 공무원들의 뿌리 깊은 하는 척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이번에는 꼭 팔도 하는 척 대잔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공직 사회가 하는 척에 최적화된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을 최전선에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제라면 뭔가 피를 토해내는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문하는 척리그

원래 하는 척은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병이 공무원 사회에도 광범위하게 퍼졌다. 어떤 사업에 얼굴 한 번 비치고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한 것처럼 선전하는 정치인처럼 공무원들도 진흥 및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숟가락을 들이밀고 있다. 반면 하는데까지 해보는공무원은 현장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국가 중심 개발 문화와 저 신뢰 사회의 유산이 겹쳐 하는 척문화가 절묘하게 자리를 잡았다. 엄청나게 많은 보고서를 제출하고 과정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하면서 사업을 잘 하는 곳보다는 사업 보고를 잘 하는 곳을 공무원들은 선호한다. ‘기획하는 척다른 사업을 베낀 것이 그대로 채택되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실전파들은 서류 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과정을 증명하는 서류를 꾸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국세청, 정부24,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온갖 사이트를 돌며 자신을 증명하는 각종 서류를 확보해야 한다. 지자체와 일을 할 때는 지방채 공채를 매입했다 바로 되파는 눈 가리고 아웅도 해야 한다.

모든 과업의 성패는 하는 척을 얼마나 그럴듯 하게 하느냐에 달렸다. 어떻게 하는 척할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가 이렇게 하는 척해보라고 가이드라인을 충분히 제공해 준다. 빈 칸을 채우듯 하는 척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채워가면 된다. 사업의 완성도는 하는 척에서 결판나니까.

하는 척은 다양한 단계에서 발생한다. 내가 주로 참여하는 리그는 자문하는 척리그다. 제대로 된 자문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자문을 받을지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자문 방식이 천펼일률적이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자문받은 척보여줄 수 있을 지를 오직 회의라는 형식 안에서만 고민한다.

 

서류상으로만 최선 다하는 공무원

단순히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문제는 아니다. 일의 구조가 하는 척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압도한지 오래되었다. 형식을 채우기에도 급급하니 내용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시스템이 하는 척을 제대로 했느냐만 체크하기 때문에 하는데까지 해보는공무원은 오히려 욕을 먹는다.

많은 공무원들이 서류 양식이 복잡해서 하는 척 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이상의, 실제 성과를 내는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하는 척리그에 종속되어 서류상으로만 최선을 다한다. 다들 이렇게 하는 척리그에 충실하게 하는 척하는 서류 포맷을 정하는 공무원만 오직 하는데까지 해보는것 같다.

관광 개발 관련해 지자체 컨설팅을 자주 가는데 하는 척리그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회의에 참여하는 기간 동안 그 지역 여행을 꼭 개발해서 나 자신에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맹목적인 시간을 버틸 수 없다. 자문은 대부분 관광 개발이나 지역 재생에 관한 것이기에 여행 기획의 밑작업이 되어준다.

하는 척리그의 종사자들이 많은데, 언론은 감시하는 척하며 이 하는 척 리그의 종결자가 된다. 하는 척 리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알면 기사 쓰기 참 쉽다. 공식처럼 지적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그제의 기사가 오늘도 기사가 되는 계절풍 기사로 감시 하는 척하면 된다.

프리미어리그 선수를 불러와서 규정에 적합한 축구화가 몇 켤레인지, 축구복은 며칠에 한 번씩 세탁하는지, 시합이나 연습 전후에 단체사진을 찍는지 안 찍는지, 시합이 끝나면 패널티 에어리어에 몇 번 들어가고 몇 분 머물렀는지 회수로 그들을 평가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행정은 용역 사업자에게 매일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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