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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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현상
  • 한덕현
  • 승인 2021.09.0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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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가 충청권 경선에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더블 스코어로 따돌린 것은 예상을 크게 벗어난 결과다. 역대 대선마다 충청의 민심을 캐스팅 보트라고 한 이유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영호남 같은 일방적인 쏠림 보다는 정당과 후보에 대한 균형잡힌 지지세를 보이는 충청권에서 그래도 다수 표를 얻은 쪽이 막판 승리의 결정적 키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1, 2위의 전국적인 표 차이가 충청권에서 얻은 표의 총 수, 혹은 표 차이와 유사했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비록 여당만의 경선이었지만 확실한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재명 본인도 박빙의 우세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일지는 몰랐다고 실토했다.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에서조차 조직력을 강점으로 내세우던 이낙연에 앞섰다는 게 쉽게 믿겨지지 않는다. 이재명 지지자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과 특별한 연고가 없는 첫 번째 경선이라는 점을 들어 약간 앞서거나 지더라도 크게 뒤지지만 않으면 성공적이라 생각했다는 이들이 많다.

분명한 것은 저간의 시중 여론을 보면 TV토론이 이어지면서 경쟁 후보들로부터 각종 네거티브에 시달린 이재명이었지만 그에 대한 이미지는 오히려 우호적으로 상승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지만 어쨌든 매우 복합적인 의미가 숨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향후 관심은 이재명 대세론이 이어질지, 아니면 이낙연의 반전이 이루어질지로 모아지게 됐다. 물론 다른 후보들의 선전도 현 시점에선 간과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이번 결과를 놓고 사람들은 벌써 이재명 현상을 입에 올리고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상황에서 섣부른 네이밍(naming)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말은 5년전 이미 공공연하게 회자되며 정치권과 언론을 자극했던 적이 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는 가정 아래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당시 잘 나가던 반기문(15.2%)을 제치고 문재인(23.8%)에 이어 성남시장을 하던 이재명이 2(17.2%)로 떠오르자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게 됐고 이 것의 한 가지 표현이 바로 이재명 현상이었다.

이 때 더불어 나타난 단어들이 파격적’ ‘사이다 발언등으로 특히 사이다 발언은 이후 이재명의 브랜드처럼 사람들에게 각인되기에 이른다. 그의 사이다 발언은 형수 욕설을 빼고는 누구처럼 천박하지도 않고 논리적이다. 사실 지금의 이재명을 결정적으로 대중에게 알린 것은 그의 사이다 발언과 이에 근거한 추진력이다. 과거 그는 촛불시위 과정이나 성남시장 시절, 그리고 현재의 경기도지사를 수행하면서 말보다는 행동하는 리더십'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에게 어필했다. 코로나19로 터진 신천지 사태 때는 현장에 직접 출동해 지휘를 했는가 하면 경기도 계곡 하천 정비, 배달의민족 관련 대응, 기본소득과 재난지원금 논란 등에서도 그의 추진력은 다른 지자체장들과 비교됐다. 이런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임기중 공약이행률 전국 1위의 성과로 귀결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놓고 유시민은 유튜브 방송에서 코로나19 과정에서 신속하고 전광석화 같은 단호함, 이런 것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샀다.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최대 강점이 바로 이 것이라고 말해 이재명 현상에 대해 나름 관심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417일엔 아예 행정만 잘 하는 게 아니고 기업을 운영해도 아주 잘 할 것이라며 “(앞으로 대선 과정에서) 상당히 튼튼한 지지율 기반을 구축할 것으로 본다고 언급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보논객의 예측이 이번 충청권 경선의 압승으로 일단(?) 현실화 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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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 욕설파문, 여배우와의 스캔들, 쿠팡화재시 먹방 촬영, 무료변론 등 자신에게 십자포화로 가해지는 각종 구설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지도를 유지하다가 결국 충청권 경선에서 압승을 거둔 저력은 분명하다. 이른바 그의 사이다 어법과 사이다 행동, 여기에서 지지자들은 그의 본선 경쟁력, 더 나아가 정권 재창출을 기대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것을 현 정권과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학습효과라고 본다.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이재명 현상은 최근 일련의 국가권력 기형현상, 다시 말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그 임명권자의 통치철학에 준하여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최고 권력자들이 오히려 임명권자에게 하극상을 하고 그 것도 부족해 대선에 나서는 작금의 나라 꼴이 만들어 준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윤석열과 최재형 얘기다. 이들 두 사람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둘을 믿고 신임했다가 뒷치기 당한 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그런 상황은 동서고금을 통해 역사적으로 늘 있어 왔고 또한 역사발전의 단초가 되어 왔다. 다만, 이럴 때 국가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다.

조국과 추미애로 대표되는 측근들이 피투성이가 되고 가정이 멸문지화를 당하는데도 방관했다. 아무리 민주주의와 3권분립도 중요하지만 이는 임명권자로서 기본적인 의지의 문제다. 온갖 이해가 상충하는 국가통치는 결코 도덕성과 인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선 악역을 자처하는 게 대통령이고 이런 것이 리더의 덕목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된 인사들의 경질만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고, 그 것도 안 되면 용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 너 나 할 것없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헷갈리는 시츄에이션을 만들었지 않은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만만했으면 저럴까 하는 자괴감을 숨길 수 없는 요즘이다.

이재명 현상은 다른 게 아니다. 현재 여당 지지자들은 과감하게 행동하고 과단성있게 실천하는 리더를 보고 싶고 이재명은 할 수 있을 거라 여기려 한다는 것이다. 이 것이 요즘 시중의 여론추세라면 그럴 수 있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재명을 대하면서 노무현의 투쟁력을 엿봤고 이번 경선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얻어맞을수록 강해지는 '인동초' 김대중 전대통령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추미애가 그동안 경선 과정에서 유독 이낙연을 향해 무위론(無爲論)을 트집잡은 것은 검찰개혁에 총대를 메는 자신한테 도움이 되지 않은, 결단과 행동을 주저한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우군들에 대한 서운함과 한()의 표현일 수도 있다.

지금의 이재명 현상은 그 것이 뜻하지 않은 상승효과로 다가오는 만큼 당연히 많은 위험성도 내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딱 맞는 반면교사가 다름아닌 과거 안철수와 반기문 사례다. 한 마디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우리의 금언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순간의 여론에 취해 언행에 힘이 들어가거나 자칫 허언(虛言)의 실수라도 하게 되면 당장 돌아오는 건 그러면 그렇지밖에 없다. 가설이지만 목하 고발 사주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윤석열이 만약 좌절한다면 원인은 다른 게 아닐 것이다. 그에게 지지를 표했던 사람들, 더 구체적으로 말해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의식을 너무 쉽게 여겼던 것의 업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이재명의 경쟁력은 더 분명해졌다. 자신의 공언대로 흙수저 출신의 초심을 잃지 않는 것, 오로지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행동하는 것, 말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것. 그러면 우리는 실로 오랫만에 사이다 대통령을 만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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