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서 알게 된 문명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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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서 알게 된 문명의 의미
  • 충청리뷰
  • 승인 2021.09.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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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고인돌과 페루의 마추픽추를 보고

한가위 명절은 한해 농사를 마친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나누고 또 조상들에 제사를 지내고 놀이를 하며 함께 즐기는 축제이었다. 2주 남짓 다가오는 올해 한가위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열 살 남짓 어린 시절 한가위 명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 기억의 시작은 시골 마을로 가는 비포장 자갈길, 그 길을 달리는 마을버스의 덜컹거림에 신이나 바라보던 풍경, 그리고 버스를 내리면 마을 입구 표식으로 만나게 되는 커다란 바윗덩어리였다. 그 친근한 바위는 얼마나 오래전부터 왜 그 자리에 있게 되었을까? 라는 궁금증은 전북 고창을 여행한 지인의 페북에서 보게 된 고인돌의 매력과 평소 인간의 흔적으로 남겨진 바위와 돌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고인돌 /아이클릭아트
고인돌 /아이클릭아트

 

고인돌에 대하여

 

고인돌은 몇 개의 바위로 크고 평평한 바위를 수평으로 지지하도록 만든 구조물인데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만주 지역에서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었는데, 특히 서해 및 남해의 하천과 연안 지역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청동기 유물을 가진 고조선은 언어와 체질 면에서는 기마민족의 북방요소와 남방에서 유래한 벼농사를 중심으로 곡물을 경작하는 정착문화가 융합된 국가라고 보고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사막이나 높은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와 같은 초식 가축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그들이 돌을 쌓아 만든 울타리 안에서 밤에는 양과 염소들을 보호하였고, 돌무덤 같은 작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돌을 쌓는 것은 인류 최초의 건축기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거대한 돌을 쌓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창의적 노동이었다. 돌을 잘라 운반하고 배치하여 서로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는 데에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동원이 필요하다. 여분의 식량을 비축하여 동원된 사람들을 먹이며 불만 없이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안정된 지배층이 존재하여야 하였다.

이집트 문명의 지배층이 건설한 피라미드는 나일강 주변 비옥한 땅에 가축을 이용한 농경으로 풍족한 식량 생산이 가능하였고 세금으로 걷어 비축한 곡물은 농사를 짓지 못하는 시기에 대형 건축물을 짓는데 동원된 노동자들의 급료로 지급하였다고 한다.

현재를 기준으로 4000년에서 4700여 년 전 건설된 피라미드는 죽은 다음에 살 사후세계의 임시공간이라고 한다. 고인돌을 쌓은 고조선 사람들도 비슷하였을 거라 상상해본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지배자가 자신의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이었고 신적인 존재와 연결하는 매개체로 피라미드나 고인돌을 만들었을 것이다.

 

페루 마추픽추 /뉴시스
페루 마추픽추 /뉴시스

 

완벽한 계획도시 마추픽추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더 오래된 돌무덤 건축물을 유럽 서쪽 끝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20177월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북쪽 약 40떨어진 뉴그랜지 (Newgrange)를 방문하였을 때, 5,000여 년 전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돌무덤에 가게 되었다.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여전히 미스터리이지만 그 무덤을 만든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또 그 무덤 안에 통로와 묘실은 신기하게도 매년 동짓날 떠오르는 햇볕이 무덤의 가장 깊숙한 부분까지 도달하도록 만들어져 무덤을 만든 사람들은 천문학적 지식을 뛰어난 석재건축 기술에 활용한 창의적인 사람들이었고, 또 기후와 시간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나면서 인간의 문명은 돌을 이용하여 더 야심 찬 건축물을 만드는 기술을 고안하였고 그 야심 차고 창의적인 예를 잉카문명의 위대한 유적지로 알려진 마추픽추에서 보게 되었다. 해발 2,430m에 있는 마추픽추는 경사면을 일구어 구획을 나눈 뒤 주변 자연환경과 아름답게 어울리도록 거대한 돌을 쌓아서 건축물들이 배치되었고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땅과 주변 동물들이 안전하게 서식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완벽한 계획도시의 모습이었다.

그 완벽한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마추픽추 계단식 농경지 기후에 적합한 작물 (감자와 옥수수)의 개량연구를 하였고, 그 작물의 재배에 적합한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기 위해서 라마를 이용하여 흙을 옮겨와서 완성되었다. 잉카제국의 파차쿠티 왕은 정복 전쟁을 통해서 확보한 많은 노예를 마추픽추 건설에 이용하였다. 당시 정복한 땅에서 얻어진 다양한 작물과 가축을 이용하여 노예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선사시대 사람이 거주공간으로 동굴속에서 살았을 때부터 돌은 도구이었을 뿐만 아니라 돌은 시간 속에서 영원하고 미래와 연결하는 상징이었다.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농사를 지어 잉여자원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은 삶과 죽음, 그리고 구원에 대한 초인간적인 신을 섬기는 종교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돌을 쌓아 성전을 만들고 경작과 목축활동의 노력으로 얻은 곡식과 가축으로 제사를 지내며 문명의 기반이 생기게 되었다.

다가오는 이번 한가위에는 코로나로 인해 예전처럼 기분이 한껏 들뜨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 정착하여 농경을 중심으로 정착해온 우리들의 삶에서 먹는 것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문명이라는 것은 먹는 것과 먹는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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