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렌시아’ 찾기 김성근 충청북도 부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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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렌시아’ 찾기 김성근 충청북도 부교육감
  • 충청리뷰
  • 승인 2021.10.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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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렌시아는 투우 경기 때 소가 쉬는 장소,
아이들에게도 그런 공간 필요”

김성근 충청북도 부교육감을 만났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공부를 마치고, 충북 사람이 되었다. 몇 년 전 충주에 터를 잡았다. 그가 충북사람인 것이 반가워 충북에 정착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스톡홀름에 바이킹 박물관이 있어요. 바이킹들은 배로 이탈리아까지 가고, 배에서 몇 십 년을 살기도 해요. 왜 고향을 떠나 끝없이 이동하는 삶을 살까. 학자들은 이들의 고향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고 말해요. 태어난 곳, 자란 곳이 아니라 내가 살아갈 곳, 아이들이 자랄 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미래지향적이지요.”

그의 긴 문장 속에 답이 있었다. 그리고 충북 출신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아이들을 지역의 미래를 끌고 나갈 구성원으로 보고, 이들 각자에게 주권을 주어야 한다는 그의 언행은 바이킹만큼이나 미래지향적이다.

 

케렌시아, 헤테로토피아의 다른 이름

 

케렌시아(carência)’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스페인에서 투우 경기를 할 때 소가 숨을 고르는 장소를 말해요. 정해져 있는 건 아니고, 경기 중에 소가 본능적으로 찾는대요. 소가 그 장소에 가서 숨을 고를 때 투우사는 공격을 하면 안돼요. 소의 고유한 공간인 거죠.

경주 양동마을 알아요? 보통 한옥에서는 여성들이 일하는 동선이 다 노출돼요 그런데 양동마을에는 부엌 뒷켠에 정갈한 꽃밭이 있어요. 꽃밭이 시집살이 하던 여자들의 케렌시아였을 거예요. 드라마를 보면 그런 장면들이 꼭 나와요. 좌절한 친구들이 맥주 한 캔 들고 어린이 놀이터를 찾아가요. 가서 그네도 타고. 어린이 놀이터가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인 거죠. 아이들도, 어른도 외로워요. 도시의 공간과 자연이 이들을 안아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환하게 웃고 있는 김성근 부교육감
환하게 웃고 있는 김성근 부교육감

케렌시아가 피어날, 교육 공간의 미래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공간이 필요해요. 어렸을 적엔 부모들이 거실에 텐트를 쳐주거나, 다락방을 만들어주거나 하잖아요. 어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 숨어서 울 수 있는 공간. 그런데 어린 시절 잠깐이에요. 학교에 떠밀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공간이 사라져요.

최근 시립도서관 리모델링을 시작했어요. 아이들의 쉼터를 조성해 주자라는 취지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디어 도서관을 만들고, 전망 좋은 곳에서 멍하니 있을 수 있고, 별도 볼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있어요. 학습과 쉼이 같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어요. 실패도 있고, 좌절도 하는데 그럴 때 멈추고 숨을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교육부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에 18조원의 예산을 확보했어요. 산업화 시대의 학교 건물이 미래 사회를 위해 열어 놓는 스마트한 공간으로 바뀌게 될 거예요. 건축학교를 열고, 그 곳에서 아이들이 참여해서 원하는 공간을 설계하도록 하고 싶어요. 지역 구성원들에게 주권을 건네는 겁니다. 공간 디자인에 대해 전문가들이 사례를 제시해 주고, 아이들이 직접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본연의 욕구를 찾아내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스마트해 질 수 없어요. 빈 공간들이 아이들과 어른이 같이 갈 수 있도록 의미 있게 배치되어야 스마트 해지는 거죠.

 

도시에서 케렌시아 찾기

 

예전에는 골목길이 많았어요. 골목 어느 구석에 앉아 있어도 시선이 차단되죠. 도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구멍가게, 연탄가게, 쌀집도 모두 대기업의 24시 편의점으로 바뀌고. 도시가 가지고 있던 아이들의 생태계가 모두 사라졌어요. 예전에는 숨을 공간을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공공에서 의도적으로 제공해 주어야 해요.

사회의 다층적이고 복잡한 관계에서 시선과 관련된 케렌시아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재생사업을 할 때 이런 공간들을 고민하고, 도시 군데군데 케렌시아가 생겨나면 좋을 텐데 아직은 그렇지 못한 거 같아요. 토건 개발이 아닌 지역 생태계의 가능성을 높이는,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공동체로 어울리고 또 따로 숨을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도시재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 교육청과 자자체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공간에 대한, 사람에 대한 진심

 

일상을 더 잘 살아가게 하는 쉼의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헤테로토피아와 케렌시아는 이음동의어가 아닐까. 그러나 사전을 찾아보면 케렌시아의 본래 의미는 '애정, 애착, 귀소 본능, 안식처'.

헤테로토피아를 묻는 질문에 그가 줄곧 '케렌시아'를 언급한 것은, 케렌시아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토대 때문이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지금에서야 깨닫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문장의 주체는 아이들이었다. 당신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디인가요? 라는 질문에 조차 그는 아이들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답했다. 아이들에 대한 그 확고하고 명백한 사랑 앞에 나는 겸허해졌다. 그리고 그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래전 학생-그가 말하는 아이’-의 자세로 돌아가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의 헤테로토피아가 어딘지 나는 끝내 모른다. 그러나 달뜬 기분이 되었다. 케렌시아는 헤테로토피아보다 더 구체적이고 일상에 더 가까우며, 케렌시아가 많은 도시는 그 자체로 모두의 공간, 헤테로토피아가 될 것이므로.

/ 이정민 청주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주무관·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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