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열풍, 이래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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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열풍, 이래도 괜찮은가
  • 한덕현
  • 승인 2021.10.27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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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장동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열받게 하는 곳이 있다. 골프장이다. 부킹은 하늘의 별따기 정도가 아니라 신의 가호가 있어야 가능하고, 이용료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대책없이 뛰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서 가장 혜택을 받는 곳이 골프장이라는 말은 이제 고리타분한 얘기가 됐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기록을 언급할 지경까지 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M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층과 동호인들이 대거 골프에 입문하고 그러다보니 골프장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그 호황이라는 것이 어느덧 국가경제나 산업, 심지어 문화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비중이 지나칠 정도로 급속하게 날로 커져간다는 데에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골프장 난립에 따른 부작용과 골프의 대중화를 고민하던 게 이 분야의 큰 기류였다면 지금은 이런 염려는 싹 사라졌다. 오히려 골프문화의 과잉 현상과 언젠가 있게 될 이로인한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최근 골프 열풍은 가히 광풍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같다. 당장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는 올해 기준 국내 골프인구를 5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10명중 1명 꼴로 골프를 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중 2030 세대는 115만명으로 추정됐다. 세대와 남녀를 불문하고 쉽게 레저활동으로 즐기는 스크린 골프 이용자를 고려하면 실제로 골프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인구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도 유독 화려하다는 우리나라 골프웨어의 산업지표를 보면 골프열풍을 더 실감하고도 남는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골프웨어 시장규모는 56천억원 규모로, 현재 추세라면 내년에는 6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국내 전체 패션 시장규모가 40조원대 임을 감안하면 이 역시 엄청난 비중이다. 때문에 주요 백화점의 골프의류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무려 50%이상 급성장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패션을 중시하며 자신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는 MZ 세대가 이같은 호황을 견인하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골프웨어 하면 손에 꼽을 정도로 몇몇 브랜드가 떠올려졌지만 지금은 하루 자고 나면 새로운 브랜드가 나올 정도로 난립이다. 현재 전문 골프웨어브랜드만 150여개에 달하는데 이중 50개가 올해 출시된 제품이다. 내년에도 이미 10여개 브랜드가 신규출시를 예고하고 있다. 근자에 유행하는 말, 등산은 레깅스-골프는 패션의 경연장이 되었다는 말이 결코 지나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도로 호황이니 골프장의 횡포 역시 안하무인 격이다. 그린피는 1년전과 비교해 거의 배 수준으로 올랐고 그동안 내장객을 채우기 위해 할인가격으로 유치하던 단체와 연() 부킹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서로 오겠다고 난리를 치니 굳이 나서서 깎아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청주권의 한 골프장은 지난해 2500만원 하던 회원권이 요즘 7, 8천만원까지 호가한다고 한다.

 

뉴스에 의하면 미국 역시 코로나 이후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고 한다. 풍부한 골프 인프라로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anytime) 어디서(anywhere)든 눈치보지 않고 1인 플레이까지 가능해 국내 골퍼들에게 그야말로 로망으로 통했지만 지금은 그 곳도 전쟁이라고 한다. 원하는 시간대를 받기 위해선 새벽같이 일어나 예약경쟁을 해야하고 골프장에 따라선 1, 2인 플레이는 꿈도 못 꾼다고 한다. 여성들과 청년, 유소년들의 골프입문이 20여년만에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골프용품 매출 역시 100% 이상 급증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야외활동이 상대적으로 용인되는 골프장은 이렇듯 코로나 시대의 가장 핫(hot) 한 곳이 된 것이다.

국내의 골프열풍은 갑자기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어플리케이션과 게임 개발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실제로 요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주요 키워드는 단연 이 것들이 차지하고 있다. 중고상품시장에선 골프용품 거래 계정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주요 TV의 예능프로그램에 골프가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최근 급격히 달라지는 풍속도다. 흥미에 자극적인 예능프로의 영향으로 다른 운동에 비해 상대에 대한 배려와 매너가 극도로 요구되는 골프가 잡()스포츠가 되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운동이 처음 만들어진 후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아저씨들의 운동으로 통했던 골프가 이젠 만인의 일상이 됐고 코로나가 이에 결정적 역할을 한 꼴이나 다름없다. 어르신들의 골프로 불리는 파크골프나 그라운드 골프가 졸지에 요즘 최고 전성기를 맞게 된 것도 코로나 때문이라고 하니 코로나와 골프의 상관관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책없이 커지고 있는 지금의 골프문화도 언젠가는 곡절을 겪게 될 테고 이럴 경우 그 후유증은 지금의 막무가내식(?) 호황만큼이나 큰 파장으로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7,80년대에 최고의 수익을 구가하며 국토 전체에 건설붐을 일으키던 일본 골프장업계가 돌연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한동안 나라경제에 큰 부하를 안겼던 사례가 좋은 반면교사다. 당시 경영난 타개를 목적으로 일본이 시도한 골프장의 프랜차이즈화가 얼마전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하게 논의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산업분야 뿐만 아니라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근자의 골프 열풍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자각이 절로 드는 이유다.

골프 붐에 편승해 다시 전국적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골프장 건설은 당장 집단민원의 개연성이 크다. 가뜩이나 손바닥만한 강토에서 해안가나 명승지에 경쟁적으로 조성되는 골프장이야말로 향후 환경문제는 물론 국토보전이라는 차원에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국내 골프장은 올해 공식적인 집계로 잡힌 것만도 무려 510여 개를 웃돌고 있다. 이를 한 곳에 모아 놓으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것부터 따져 보면 현재의 골프 열풍은 곧 병풍(病風)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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