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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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 한덕현
  • 승인 2021.11.0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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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물론 앞으로 실제 후보등록까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미 경쟁구도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이들을 놓고 남은 4개월 동안 온갖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후보는 후보대로, 유권자는 유권자대로 요동치는 여론을 좇아가며 일희일비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국가라는 기제에서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유난히 크다는 대한민국이기에 이제부터 20대 대통령 선거가 연출해 낼 블랙홀의 조화에 누구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만큼 변칙적인 것도 없다. 무슨 정책이니 비전이니 하며 선거를 앞두고 오랫동안 예열을 거치지만 막판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반이성의 현상들과 폭로전이었다. 이번 대선은 극단의 적대적 진영논리가 나라 전체를 휘감은 상황이라 그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선거 목전에 터지는 돌발성 변수의 효용성(?)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역대 대선의 사례를 보면 그 것들이 얼마나 몰가치한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1987KAL기 폭파사건(13대 대선), 1992년 초원복국사건(14대 대선), 1997년 이인제 경선불복후 독자 출마(15대 대선), 2002년 이회창 아들 병역기피 논란(16대 대선), 2007bbk사건(17대 대선), 2012년 국정원선거개입논란(18대 대선) 등등... 이들 사건은 당시 대선판을 송두리째 흔들며 당락을 가르는 최대 이슈로 부상했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슬그머니 잊혀지거나 아니면 뒤늦게서야 사건화됐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통령선거가 이같은 저급한 것들에 휘둘리는 정치문화의 후진성으로, 이는 결과적으로 다는 아니지만 부적격한 대통령을 탄생시켜 나라에 큰 후유증만을 남겼다.

이번 대선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선거판의 최대 쟁점이 된 대장동사건과 고발사주사건은 지난 대선에 못지 않은 폭로전과 천박한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이를 부추기는 것은 현재 지지도에서 앞서는 후보들의 자질론으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참으로 헷갈리게도 그들 모두가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비호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그야말로 최선의 인물을 골라야 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불행도 없을 것이다. 쉬운 말로 인간 됨됨이가 뻔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맞아들여야 하니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벌써부터 사석에서 탄식으로 나오는 얘기는 오랜기간 민초, 국민들이 피로써 이룩해낸 나라의 기본가치가 그들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다는 한걱정이다. 그 기본가치라는 것은 실로 지난한 투쟁으로 얻어낸 민주주의일 수도 있고, 먹고사는데 고통이 없는 선진국일 수도 있고, 상식이 존중받는 사회일 수도 있다. 이 것을 흔들림없이 지켜내라고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데 오히려 그들 때문에 국가적 가치의 몰락을 우려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인가.

이번 대선의 최대 딜레마는 바로 이 것이 아닌가 싶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여야를 대표하는 후보들이 오로지 자신만이 대통령감임을 내세우지만 이에 선뜻 공감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맘에 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뽑아야 한다는, 패배감의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이를 진영논리로만 해석하는 건 무책임하다. 오히려 순수하게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서가 더 강하다. 평생 온갖 편의와 권력을 향유하다가 대통령까지 하겠다고 나섰으니 그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실언과 망언을 반복하는 건 그럴 수도 있겠다.

 

청와대 본관 전경. / 뉴시스
청와대 본관 전경. / 뉴시스

 

문제는 그들의 특권의식에 길들여진 내성(耐性)이다. 이는 대통령이 된다 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어묵을 먹는다고 해서 상인이 될 수 없고, 길거리에서 일일체험을 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서민이 될 수 없는 것과 똑같다. 오히려 국가에 의해 제도적으로 잘 보장된 권력을 맘껏 누린 그들은 대통령이 되는 순간, 거침없이 자신에게로 쏟아오는 더 큰 권력을 주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검사와 변호사등 임명직과 전문직의 단물을 빨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전횡을 누리던 그들이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권력까지 얻게 되니, 지금 뜻있는 국민들의 우려와 걱정, “왜 하필 저런 사람들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자책은 되레 상식의 발로일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결국 관건은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이다. 상대적으로 덜 타락하고 조금이라도 더 정직한, 자신을 위하는 만큼 상대에게도 배려와 이해가 넓은 사람에게 우선 시선을 줘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공직과 공인의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을 짓밟고 인정받은 사람은 피해야 앞으로 4년간 후회하지 않는다. 어떠한 순간에도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의 아픔에도 진정으로 공감할 줄 아는 후보를 골라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우리는, 국민들은 앞으로 왜 분노해야 하느냐이다. 지금부턴 분노하지 않고선 그나마 믿을만한 대통령을 뽑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이다. 왜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렇게 행동하지? 얼마나 국민이 같잖으면 저런 말을 하지? 저런 사람들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설치니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저들에게 환호작약하는 국민들은 또 뭐지?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대선이 이처럼 천박해도 되나? 그동안 별볼일 없는 인간을 터무니없는 신격화로 대통령에 앉혔다가 얻은게 뭐지? 일그러진 대통령문화는 정작 국민들에게 책임이 있지 않은가? 이런 분노를 투표날까지 끊임없이 일으켜야 그 때서야 비로소 최선(最善)이 아닌 차선(次善), 최악(最惡)이 아닌 차악(次惡)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진실은, 세계 어느 나라든 우상(偶像)을 좇는 국민들은 반드시 실패하는 리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도 남는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근자의 우리나라 대통령,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다. 이명박과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는 후보시절, 그리고 재임중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상화됐다. 하지만 그 우상(偶像)이 얼마나 허상(虛像)인지를 확인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구는 많은 사람을 죽이며 민주주의를 말살했고 또 누구는 치부에 눈이 멀었는가 하면, ? 하다가 형편없는 인간들에게 국정까지 농락당했다.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세 명의 또 다른 우상들이 국민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여론 지지도에서 우위를 다투는 이재명, 윤석열, 홍준표다. 지지자들은 이들의 실체보다는 본인들의 맹목적인 기대감으로 세 사람을 치열하게 우상화 하는 중이다.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전지전능의(almighty) 화신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우상화되는 인물들의 토론회나 공개적인 운신을 지켜보면 자괴감마저 든다. 그들의 자질, 수준, 인간성, 도덕성, 사회인식에 실망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대통령을 고른다는 건 설레임이 아니라 고문이다. 그래서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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