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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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한덕현
  • 승인 2021.11.1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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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가 이번 호에 내년 지방선거를 기획으로 다뤘다. 지역 주민의 입장에선 대통령 선거보다도 더 중요한 게 지방선거인데도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대선이라는 의제가 워낙 나라 전체를 짓누르다보니 지방선거는 어쩔 수 없이 하위개념으로 인식돼 왔고, 그러다보니 예비후보자들은 넘쳐나는데도 막상 그들의 실체에 대해서는 알려지는 게 별로 없다. 물론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선 지방선거라고 해봤자 결국에는 대선 결과에 따라 좌지우지될 게 뻔하지만 그렇더라도 후보들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 더 나아가 검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요즘 시중에 유행하는 말이 하나 있다. “지금까지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일종의 레토릭(修辭)이다. 며칠 전엔 한 지인이 역시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하여 깜작 놀라 물어보니 이제부턴 등산을 할테니 같이 좀 데리고 가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평소 걷기조차 싫어하는 그가 나이가 들면서 자꾸 이상신호를 보내는 몸이 걱정되어 결단했다는 말에 실소가 절로 났다. 그도 시중에 회자되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작심삼일 할거면 아예 욕심부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내년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 다름아닌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언론과의 접촉에서 혹은 개인 SNS을 통해 이렇게 언급하며 자신을 알리려 한다. 공직이나 공인 신분에 있다가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퇴직한 사람들이 특히 이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같다. 잘 짜여진 조직에서 삶을 영위하다가 허허벌판과도 같은 정치판에 뛰어들려고 하니 사실 이들의 처지에선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 말에는 나름 긴장감이 배어있어 듣는 사람들의 느낌도 남다르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다. 주변으로부터 종종 듣는 얘기가, 기회가 되면 그 사람들에게 그냥 가던 길이나 계속 가라고 글로 써달라는 청탁 아닌 청탁이다. 물론 여기엔 늘 보아오던 그들의 신분상승에 대한 불편한 속내도 엿보이지만 그보다는 섣불리 판단했다가는 당사자는 물론 지역사회에도 좋을 게 없다는 우려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선거를 반추해 보면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계기로 지역사회에서 의욕적으로 등장했던 정치신인들이 결국엔 선택받지 못하고 오랜 기간 방황하는 경우가 적잖았던 게 현실이다. 넓게 보면 가뜩이나 인물 키우기가 인색하다는 지역사회의 손실인 것이다.

가지 않은 길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것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다. 개인에 따라 해석이다를 수 있지만 이 시를 통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 인간이 태어나 오직 한 길밖에 갈 수 없는 숙명, 그리하여 가보지 않은 나머지 한 길에 대한 연민을 노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처음 선택한 한 길 만 가고 있는 삶의 회한에 대해 그는 시 말미에 이렇게 썼다. “먼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러나 시인 도종환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고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주려 했다.<처음 가는 길’>

그 뿐인가. 근자엔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면서 설령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길이 힘든 여정을 예고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 것을 최촉했다. 이렇게 말이다.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 2006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낭독해 화제가 되었던 이 시는 국민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도종환 자신의 심정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노리는 정치신인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겠다고 의지를 곧추세우는 건 도종환처럼 새로운 삶의 개척을 위한 첫 발이 될 테지만 그게 아니라 이를 두려워하고 주춤한다면 프로스트처럼 먼 훗날에, 가지 않은 미답(未踏)의 삶에 대한 연민과 후회를 남기게 될 지도 모른다. 결론은 도전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가지 않은 길은 없고 다만 내가 처음 갈 뿐이고,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기에 겁먹지 말고 대차게 부딪쳐야 그들, 정치신인들이 주창하는 인물교체가 됐건 세대교체가 됐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이들에게 긍정적인 한 가지는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변화에 대한 유권자의 갈망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다는 사실이다. 요즘 사석에서 특히 많이 듣는 얘기를 나열하면 그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방행정이 너무 고루하다, 역동성이 떨어지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충북은 음식이든 관광지든 바로 이거다! 내세울게 없다, 공직자들이 업자에게 끌려다니며 정작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퇴직후 자리나 이권에만 눈독을 들이는 바람에 난개발과 소각장만 늘리고 있다 등등.

하지만 정치신인들이 기득권을 깨기란 지역사회의 역학구조상 난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당장 조직에서부터 밀리기에 본인이 확실한 스타성을 갖추지 않으면 주목받기가 쉽지 않다. 지금처럼 행사장이나 쫓아다니고 어차피 지지그룹인 지인들 위주의 SNS를 열심히 공유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별다른 준비없이 주변의 충동질에 고무되어 단순히 전직(前職)만을 팔아 이미지를 세우려 하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다. 이미 이같은 조짐이 여기저기 엿보인다. 신인들의 도전을 받는 것으로 보도되는 현직 자치단체장들이 코웃음을 친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주말산행인들이 종종 경험하는 것으로, 정식 등산로가 아닌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가는 십중팔구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좀 더 빨리,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예단하고 그런 욕심을 부리게 되는데 기다리는 건 낙오와 탈진 뿐이다. 대부분의 산악사고가 이래서 발생한다. 정치신인들도 마찬가지다.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필패하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준비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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