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EU택소노미
상태바
RE100, EU택소노미
  • 한덕현
  • 승인 2022.02.09 0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들 단어를 윤석열만 몰랐던 게 아니다. 지난 대선후보 토론이 아니었다면 국민 대다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동안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접했기 때문에 대략 그런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공개적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더라면 윤석열보다 더 버벅거렸을지도 모른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사실 무슨 선거만 되면 특정 단어나 현상에 대한 이해 정도를 놓고 방송토론회 등에서 후보간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선 더 그렇다. 자장면 값이 얼마냐, 지하철 요금이 얼마인지 아느냐, 요즘 버스 요금이 얼마냐 등등의 기습 질문을 받고 상대후보들이 당혹해 하는 모습을 한 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그 때마다 국회의원이나 시장 군수들이 꼭 그런 것까지 알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이 뒤따랐다. TV 토론 이후 윤석열이 했다는 말 대통령 될 사람이 RE100 이런 거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는 차라리 인간적(?)으로 들린다.

물론 선출직에 나서는 사람들이 사회현상의 모든 것들을 두루 꿰차고 이해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여건도 없다. 정책이나 시책 하나를 기획하더라도 상황을 알고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지 않는가. 어떠한 리더십도 그 영향을 받을 대상이나 영역이 잘 모르는 분야라면 당연히 요사이 유행하는 리스크는 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을 잘 쓰고, 모르는 건 전문가의 판단에 맡긴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쩔 수 없이 인()의 장막(帳幕)에 갇힌다는 권력자들의 최대 맹점은 다름아닌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의 주변의 농락이고 그러함에도 정작 당사자는 이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학습효과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국민들의 입장에선 대통령 될 사람이 뭘 모른다는 것, 즉 무지(無知)에 대해 굳이 관대할 이유는 없다. 자신이 전공한 분야이거나 또 먹고살기 위한 직업 외의 영역은 대체로 무지할 수밖에 없더라도 그렇다고 기본적인 개념, 상식의 판단까지도 간과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는 이보다 더 큰 리스크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것의 가장 악폐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로 상징되는 반이성의 언행들이다.

실제로 지금 이런 현상들이 국민들 눈앞에서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의 곳간은 안중에도 없고 후보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돈을 퍼주겠다는 공약을 남발한다. 사드도 전국에 설치하고 원자력 발전소도 원없이 확대하겠다고 거침없이 내던지는 것이다.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치부하기엔 그 발상의 위험이 너무 크다. 이들 공약이 초래할 역기능, 더 나아가 국가적 재앙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사드는 수도권 방위에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전문가 진단이 쏟아지고 있고 최근의 후쿠시마 원전은 차치하더라도 세계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인 체르노빌 참사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안철수, 김동연 후보
왼쪽부터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안철수, 김동연 후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검증받아야 마땅하다.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좋은 가문의 후광으로 쉽게 정치력을 인정받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이럴 경우 자칫하면 '조작된 신화'가 만들어진다. 이재명이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성공리에 수행했다고 해서 대통령까지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윤석열이 특수부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고 해서 정치, 심지어 대통령까지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확증편향이나 다름없다.

안철수는 성공한 학자 및 기업가이자 우리나라에 선하고 정직한 문화, 이른바 착하니즘을 선도한 인물이긴 하지만 그 것만으로 대통령의 자질과 결단력을 갖췄다고는 아직 국민들에게 비쳐지지 않는다. 윤석열측의 단일화 압박으로 또 기로에 서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역시 정치에서만큼은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함을 재확인한다.

현대(現代) 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한국적 경제개발이라는 신화로 무장한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면 7% 성장과 국민소득 4만불 시대, 세계 7대 경제대국을 견인하는 747점보기를 띄울 것이라는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지만 뒤에선 음산하게 돈만 탐하다가 영어의 몸이 됐다. 토목공사의 귀재 MB의 좌절과 부동산 투기의 달인 트럼프의 실패가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또 아무나 욕심부려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준비도 없이 어? 하다가 대통령 꿈을 꾸게되는 사람들의 공통점 즉 갑작스런 열공의 부작용은 다른 게 아니다. 그렇게 하여 섣부른 지식과 논리로 무장하게 되면 오히려 아집과 편견만을 충동한다는 것,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이겠는가.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면 차라리 우리나라를 떠나겠다는 말이 결코 허위로 들리지 않는 요즈음이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모든 선출직의 최대 덕목은 '예측가능한 리더십과 신뢰'를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당선될 때는 신()처럼 떠받쳐지다가 임기가 끝날 때 쯤이면 끝간데없이 추락하는 우리나라 '대통령 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국민들이 할 일은 분명하다. 설령 여야를 대표하는 후보들이 역대 최고의 비호감일지언정 그래도 마지막까지 예측가능한 리더십의 소유자를 찾는 것이다. 그러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RE100과 택소노미를 모른다고 해서 그 후보를 무지하다고 손가락질 할 게 아니라 민주주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는 대중은 우매하다를 되뇌지 않으려면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은 곧 를 의미한다. 기원전의 플라톤 예언이 요즘처럼 절박하게 다가온 적도 없다. 끊임없이 적을 만들며 자극적인 변설로 대중을 현혹하는 데마고그(demagogue)는 지금 우리나라에도 넘쳐난다. 국민은 우매한 존재라고 확신이라도 하듯 그들은 현란한 수사로 분열주의적 정치공학을 부추긴다.

하지만 인류역사는 우매하다는 대중들이 결국엔 현명해진다는 역설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세계사에 기록된 모든 혁명의 진원도 바로 분연히 일어나는 대중들의 깨어남이었다. 때문에 성공하는 권력의 든든한 뒷배는 바로 우매한 대중들의 자각과 결기가 아니겠는가. 한 달 후의 대선에선 그 독기의 발현을 기대해도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