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발언과 배신의 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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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 발언과 배신의 역학
  • 한덕현
  • 승인 2022.02.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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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에 대한 윤석열의 적폐수사 발언은 무엇보다도 배신자 논란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윤석열의 검찰총장 중도사퇴와 대선출마에 대해 의식적으로 말을 아끼던 청와대였지만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언론에 분노로 표현될 정도로 강경함을 드러냈고 아예 대선정국을 문재인 대 윤석열 대결구도로 몰고가려는 여론까지 돌출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노영민의 언급이다. 그는 종편과 유튜브 방송에 나와 윤석열의 과거 언행을 적시하며 직설화법으로 윤석열을 저격했다. 발췌하면 이렇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윤석열은)가슴에 배신의 칼을 숨기고 국민들을 속였다” “제가 듣기로는 4명의 후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공수처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한 것으로 안다” “다층 면접과정에서 윤 후보는 검찰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공수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검찰의 수사 지휘 조항이 없더라도 검경 간의 협력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검찰의 수사 축소에 대해서도 찬성한다'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해 완전한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윤석열 검찰총장은 취임하자마자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노영민은 윤석열이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배신의 칼'을 품은 시점이 20199월 이른바 조국수호 촛불집회' 때부터였다는 추론에 대해서도 아니다, 처음부터였을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못박았다. 그의 말이 맞다면 윤석열은 천하의 몹쓸 인간이 된다. 상식에 근거하더라도 그렇다는 것이다. 임명장을 받을 땐 대통령 앞에서 충성맹세를 했다가 곧바로 뒷통수를 친 격이니 말이다.

어쨌든 윤석열에게 배신의 딱지가 붙기까지는 문 대통령이 신임한 조국을 검찰수사의 독기와 스킬(skill)을 총 동원해 끝내 그의 가족과 함께 이른바 정리적(情理的) 파멸에 이르게 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본인의 말처럼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찰직책의 신념을 백번 이해하더라도 동양의 가치관에선 마냥 선의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그는 과거같으면 똑떨어지는 역모(逆謀)의 처신, 결국 야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잖은가. 이것도 부족했던지 검찰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와 검찰의 예산독립권, (여의치 않을 경우)공수처 폐지 등을 공약으로 기습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완벽하게 반기를 든 꼴이다. 여당이 제기하는 검찰공화국, 검찰제국 주장에는 전면 동의하지 않더라도 향후 문재인 정권에 대한 그의 적폐수사 의지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심리학에서 배신은 인간이 자기중심적 사고를 구축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아울러 이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극도의 적대감 표출이다. 지금의 현실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집단보다도 서열이 중시되는 검찰기수를 무려 5단계나 파괴하고 벼락출세한 윤석열은 조국 수사에 대해 문재인 정권의 성공을 돕고자 한건데 오히려 나를 죽이려 했다고 각을 세우며 정치에 들어와 배신의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그를 총장으로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신임한 조국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참으로 답답할 정도로 침묵하더니 이제 와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결국 노영민이 나서 윤석열에게 배신의 확실한 주홍글씨를 붙이려 한다.

 

배신은 이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어제의 동지를 저주, 혐오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당사자의 삶도 결국에는 굴곡져 진다. 국정에 대한 지방언론의 영향력 없는 입장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윤석열의 검찰총장 임명을 반대했던 나로서는 작금의 형국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반대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특수통 검사로 강골의 이미지를 쌓아온 윤석열은 전술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질 수 밖에 없고 이 때문에 언젠가는 검찰개혁을 원하는 현 정부에 오히려 부하(負荷)로 작용하게 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윤석열에게 자기정치를 하도록 특단의 물꼬를 트여준 쪽은 다름아닌 문재인 정권인 셈이다.

어떤 삶이 됐던 인간으로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작태다. 그러기에 배신에도 정도가 있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역사적으로 배신이 인정받은 것은 대척점에 있는 상대를 주군이 아닌 그 주군을 둘러싼 사상과 가치관의 변화에 방점을 찍을 때이고 이것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경우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숙주다.

우리에게 배신 하면 숙주나물로 연상될 정도로 배신의 아이콘이 된 신숙주는 비록 배신과 변절을 계속하며 무려 3대 왕조에 걸쳐 영예를 누렸지만 역사적인 평가에선 오히려 긍정적인 면이 많다. 쿠데타를 일으킨 세조를 도와 계유정난의 공신이 된 후 성종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등지고 승리하는 쪽에 줄을 섰던 그는 되레 탁월한 외교와 행정으로 조선을 통틀어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룬 장본인이 됐다. 백성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배신은 없다. 지금도 간혹 배신자 논란을 일으키는 내부고발은 역시 자신이 따랐던 주군보다는 그 조직의 부정과 비위를 공개하고 바로 잡는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배신자 논란과 관련해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문재인 윤석열 모두 극단의 상황은 피하라는 것이다. 서로가 배신감은 숨길 수 없더라도 한 번 맺었던 인연과 신임관계를 그렇듯 쉽게 저버리지는 말라는 뜻이다. 범인들의 척박한 삶에서도 설령 한때 믿었던 사람이 엇나간다 한들 끝까지 신경쓰고 챙겨주는 게 인간된 도리다. 안 그러면 둘의 앞으로 삶은 반드시 피폐해진다. 이런 의미에서도 윤석열의 적폐수사 겁박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배신, 그것은 21세를 사는 지혜”. 최근 윤석열과 최재형을 놓고 SNS 등에 댓글로 달리는 글이다. 이 말이 이번 대선을 계기로 이렇게 바뀌었으면 한다. “배신, 그것은 21세기를 퇴행시키는 무지”. 한데 배신은 관성이라고 했다. ‘한 번 배신한 놈은 또 다시 배신한다는 것을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한다. 그것이 참으로 걱정되는 요즘 잠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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