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중도층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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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중도층이라는 것
  • 한덕현
  • 승인 2022.02.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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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얘기이지만 나는 안철수의 단일화 결렬 선언을 믿지 못한다. 그의 화법이 여전히 확신을 못주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기자회견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정곡이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그가 정치적 발언을 할 때마다 마치 닉네임처럼 따라 다닌 두루뭉술 화법, 안개화법을 재확인시켜줬을 뿐이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굳이 따져본다면 그의 결별 의지가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은 이렇다. “국민 여러분, 비록 험하고 어렵더라도 저는 제 길을 굳건하게 가겠습니다. 아무리 큰 실리가 보장되고 따뜻한 길일지라도 옳지 않으면 가지 않겠습니다. 기득권을 깨고 대한민국의 변화와 개혁, 미래로 가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가겠습니다. 그러나 한쪽편에, 기득권에 안주하고 아무런 노력 없이 상대편 실수에 의한 반사이익에 편승하는 짓은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어떤 상황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바른길을 가겠습니다.”

그동안 단일화 문제로 그토록 논란의 중심에 선 입장이라면 이 정도의 워딩은 너무 평이하다. 안 그래도 안철수는 지금까지 본인의 말처럼 자기 길을 걸어왔고 결정적일 때 철수하기를 반복해 왔다. 그러기에 이번만큼은 문제의 철수(撤收)에 대한 좀 더 확고한 결기, 예를 들어 머리가 두쪽 나도 완주한다든가 아니면 완주를 못할 경우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정도의 확고한 단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게 아니고 정치인 누구라도 쉽게 구사할 수 있는 그저 좋은 말, “제 길을 굳건하게 가겠다. 옳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 손해를 보더라도 바른 길을 가겠다고 했으니 듣기에 따라선 또 얼마든지 철수할 수 있음을 시한다고 볼 수 있다. 입장을 바꿔 다시 단일화로 선회하면서 이 길이 옳은 길이고 바른 길이라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의힘은 여전히 가능성은 열려있다며 군불을 때고 있고 안철수의 국민의당 내부에서조차도 단일화 결렬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개인적으로는 안철수가 이번만큼은 꼭 완주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고, 이보다도 더 절박한 이유는 만약 또 중도사퇴할 경우 그의 정치생명력은 이제 어쩔수 없이 종언을 고하게 되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토록 바른 정치, 깨끗한 정치를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력을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잊을만 하면 난데없이 달리기를 하고 또 선별진료소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정작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이것이 옳다는 자기만의 생각이 아닌 그 옳은 것을 대중에게 주입시켜 현실화시키려는 용기와 신념인 것이다.

그래도 현실을 직시한다면 안철수의 완주는 결국 쉽지가 않다. 당장 세 가지 걸림돌, 여전히 낮은 지지도와 당세(黨勢)의 절대적 열악함 그리고 완주에 따르는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을 생각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선거기간동안 윤석열은 물론이고 이재명 쪽으로부터 가해질 온갖 휘둘림에 그가 어떻게 버텨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차피 정치는 내가 값을 매겨 답을 내는 방정식이 아니라 상대의 변수에 따라 값이 결정되는 함수관계로 풀어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정치는 생물인 것이다.

 

안철수 대선 후보 /뉴시스
안철수 대선 후보 /뉴시스

 

이 시점에서 짚어볼 것은 안철수의 운신은 곧 중도층이라는 특정 집단의 표심과 연관지어져 해석되는 관성적 시각이다. 이번 단일화 결렬 선언에도 거대 양당은 안철수 지지세력을 아예 중도층으로 규정하고 서로의 유불리를 따지느라 분주했다. 안철수 지지자를 상황에 따라 이쪽으로도 가고 저쪽으로도 갈 수 있는 부동층(swing voter) 쯤으로 단정하고주판알을 튕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지금껏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소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중도층이나 부동층(浮動層)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재명과 윤석열의 무조건적인 콘크리트 지지자들과는 다른 분명한 소신파라고 보는 게 맞다. 그들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이라는 후보들이 만들어갈, 이재명의 마이너(minor)공화국도 싫고 윤석열의 검찰공화국도 싫어한다. 깜도 안되는 인물이 엉겁결에 대통령을 넘보는 것을 누구보다도 증오하며 그 대안으로 안철수를 꼽아온 것이다.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있다. 한 때 두 자리수로 치고 올라가던 안철수의 지지도가 윤석열과의 단일화 얘기가 불거지면서 급격하게 추락한 게 그 것이다. 단일화는 곧 안철수 지지지들에겐 배신행위가 된다. 지금의 구도라면 단일화를 안 하는 것이 차라리 이 나라의 정치를 바꿀 수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혼란속에서 <중산층은 없다>는 어느 인류학자의 책이 눈길을 끌었다. 비대면 사회로의 급속한 진화에 사람들은 주식, 펀드, 부동산, 가상화폐, ·무형 자산에 열광적으로 투자한다. 그렇게 되자 마르크스가 시조인 과거 중산층 개념의 근거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지금까지는 양극화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을 우려했다면 앞으로는 중산층의 비대화에 따른 계층혁명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론의 중도층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시소게임을 보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선 중도층이라고 폄훼되던 표심의 소유자들이 결정적 키를 쥐게 된다. 이들이 곧 차기 정권창출의 최고 주체인 셈이다. 그러기에 중산층이 없는 것처럼 여론의 중도층도 없다. 이들이 새로운 주도층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유럽의 중산층처럼 금수저를 싫어하고 자기의 독자적 삶과 독립성을 무엇보다도 중요시 한다. 그러니 자질없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마치 선무당이 사람잡 듯 어설프게 나라를 이끌게 될 것을 경계한다. 민주국가 대한민국이 부패공화국이나 검찰공화국, 무속공화국으로 변질되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완주가 되든 철수가 되든 안철수의 선택은 이래서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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