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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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길을 잃다
  • 한덕현
  • 승인 2022.03.10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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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끝났지만 미완의 과제가 더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당장 선거전 내내 제기된 후보와 그 가족들의 각종 비위, 비리 의혹은 과연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부터가 그렇다.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 경쟁적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공언했으니 당선된 후보나 떨어진 후보 모두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에도 대선이 끝남과 동시에 슬그머니 묻혀진다면 결국 국민들만 사기당한 꼴이 된다. 정치보복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선거기간동안 어떤 이슈보다 국민들의 머리에 각인되고도 역시 해결을 위한 대안제시는 커녕 좌절감만 안긴 것이 또 있다. 언론문제다. 역대 대선마다 단골로 돌출된 소재라고 치부하기에는 언론에 가해지는 손가락질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아예 우리가 언론이다가 후보캠프의 슬로건이 되어 기성 언론보다도 개인 SNS가 선거판을 지배할 정도였다. 당연히 언론종사자들의 입장에선 자괴를 넘어 굴욕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언론불신이 사상 최고조에 달했고 그만큼 반발과 반작용 또한 역대 최악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언론을 향한 저주가 아주 상징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있다. 지난 6일 윤석열은 수도권 유세에서 “(민주당이) 집권 연장을 하기 위해서 국민을 속이고 공작하는데 수단 방법을 안 가린다민주당 정권이 강성노조를 앞세우고 전위대를 세워서 갖은 못된 짓을 한다. 그 첨병 중 첨병이 바로 언론노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말도 안 되는 허위보도를 일삼고, 국민 속이고 거짓 공작으로 세뇌해 왔다우리 대한민국 언론인들은 각성해야 한다고도 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조선일보 규탄 성명을 내고 조선일보가 보도를 통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다고 일갈했다. “조선일보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의 플레이어였다면서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가 맞붙을 당시 조선일보는 정주영 찍으면 김대중 된다는 칼럼으로 노골적인 선거개입을 시도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대선 투표 당일, 조선일보는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노골적인 이회창 후보 밀어주기를 한 바 있다고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이 자리에서 특별히 선거개입 기사라고 적시한 것은 결단과 용단으로 단일화, 정권 교체 여론 따른 순리다라는 34일자 조선일보 사설로 야당 후보들의 단일화를 찬양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선 4일에는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다 해직된 조선일보 기자들의 모임인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이번 대선 보도에서 드러났듯이 주류언론을 자처하는 보수언론들은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 편파 보도를 거리낌 없이 계속하고 있고 그 대표적인 예가 극우 언론사인 조선일보라고 전제, “(조선일보는)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언론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언론의 정치집단화를 비판했다.

 

 

같은 시기 방송에 출연한 유시민은 언론을 사회적 공기가 아닌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규정했다. 레거시 미디어가 공정보도를 호소하는 것은 위선, 헛짓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아무리 선거판이지만 언론의 행태를 사적 소유내지는 이익집단으로 폄훼한 것은 역시 언론종사들에게는 가슴아픈 얘기다. 그는 언론은 회사를 소유한 사람들과 거기에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해 운영하는 기업으로, 이윤추구에 도움이 될 때는 공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거대한 낡은 기득권 세력 중 하나가 언론산업이라고 깎아내린다.

언론은 지난 대선에서 양쪽으로부터 똑같이 공공의 적이 됐다. 정작 궁금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누구보다도 보수의 트로이카로 불리는 조중동에 의해 여론지원을 받은 윤석열이 듣기에 불편할 정도로 언론을 저주하고, 그동안 진보를 상징하던 유시민과 민주당 또한 우리나라 언론의 주축인 올드 미디어를 근본도 없는 장사꾼 쯤으로 매도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지금 언론이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대선을 통해 확인된 우리나라 언론은 지나칠 정도로 정파, 정치적이고 그러기에 어느 한 쪽으로부터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사회악으로 낙인찍혔다. 오랫동안 역사의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유독 언론에 대해선 정의와 진실의 보루라던 이른바 인식의 레거시는 이젠 종언을 고하려 한다. 똑떨어지는 민주주의의 후퇴다. 미국의 가짜뉴스(fake news)는 세계 최고 민주국가에서 모리배에 의한 국회의사당 침탈이라는 세기의 사건을 사주하고 만다.

현실을 돌아보면 대선과정에서 제기된 언론 혐오는 많은 부분 맞다. 허위 보도로 국민을 속이고 세뇌한다는 윤석열의 말도 맞고, 조선일보가 대통령 선거의 플레이어일 뿐만 아니라 언론을 팔아 정치를 한다는 민주당과 기자선배들의 일침도 옳으며, 어느덧 사적 이익집단으로 변질됐다는 유시민의 지적도 결코 틀리지 않다. 무슨 정책이니 해법이니 하는 이성적 판단의 제시보다는 증오와 갈등만을 부추기는 우리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흔히들 말하기를 언론개혁은 스스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집권세력에 의해 시도된 언론개혁이 좌절되면서 얻어진 교훈도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언론계 상황은 개혁의 동력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게 얼마나 허구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금 한국 언론은 비판이라는 무기로 탐욕스럽게 권력과 돈에 집착한다. 이러한 자기 내면의 허위(虛僞)가 가증스럽게도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고전적이지만 앞으로도 반드시 존중돼야할 사회적 합의가치에 숨어 오히려 정당성을 인정받는 지경이 됐다. 언론이 이성과 합리의 추진력 보다는 방종이나 난봉의 동력(動力)을 얻는데 익숙해진 것이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로인한 국가적 가치의 혼란은 도를 넘어서고 있고 언론의 중립은 가식을 은폐하는 장식으로 전락했다. 이익집단이 된 언론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정파성을 드러내고,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만들어내야 한다. 언론이 길을 잃었다. ~언론개혁! 언론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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