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원과 비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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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과 비서라는 것
  • 한덕현 발행인
  • 승인 2022.03.3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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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요즘 장제원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의 운신에 따른 분위기의 변화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된 후 그의 표정과 말들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처음엔 말수도 적고 행동 전반이 음전하다(?) 할 정도로 조심스러워 하더니 청와대와 인수위의 갈등 국면에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가 문재인-윤석열 회동 자리에선 두손을 앞으로 다소곳하게 모은 모습이 이채로웠다.

아들 문제로 곤욕을 치르며 한 때 캠프에서조차 변방으로 밀려났던 그로선 꼭 주변의 이목이 아니더라도 알아서 절제를 해야 하는 이른바 자기검열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간 여론이 어떻게 돌변할지를 본인이 잘 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지난 행적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의심치 않는다.

하필 예민한 시기에 당의 중진인 김무성이 “윤핵관이라고 불리는 권성동, 장제원 같은 의원들은 인수위가 끝나는 대로 뒤로 물러나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고, 유독 진보에 대해 독설을 퍼붓던 진중권조차도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와 측근들이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러면 오래 못 갈 것이다”고 일침한 것도 장제원으로선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사실 윤석열 장제원 콤비만큼 극적인 것도 없다. 예상 외의 반전 때문이다. 윤석열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던 장제원이 다른 직책도 아니고 자신이 그토록 난도질하던 사람의 비서실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2018년 국감장에서 장모 사기문제로 당시 윤석열 중앙지검장과 장제원이 정면 충돌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9년 검찰총장 청문회 때는 둘간의 관계가 막다른 골목에까지 갔다는 게 중론이었다. 당시 장제원은 발언시간을 초과하면서까지 윤석열을 향해 “범죄를 밥먹듯하는 사람, 최악의 검찰총장, (수사하면서 사람을 많이 죽인) 피묻은 손” 등등 입에 담지 못할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 사람들을 TV 앞으로 몰려들게 했다.

이 것만 보면 최순실 사건의 청문회 스타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후 유독 자기주장과 목소리가 큰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굳힌 장제원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자기 것으로 순치시키는 순발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정적일 때 변신과 적응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실제로 당내 후보경선 때는 윤석열을 위해 매일 밤 보고서를 작성, 제출하는 극도의 성실함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를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데에 기인한다. 정치적 부침을 거듭하면서 그는 변모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굳이 개인 생각을 말한다면 윤석열 비서실장으로서의 장제원은 오래가지 않을 듯 싶다. 그의 캐릭터를 봐도 그렇고 윤석열의 입장에서 따져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원래 성격이나 이미지가 강한 사람은 단기간 제한된 상황에서의 역할과 효용성은 뛰어나지만 반대로 조직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왼쪽부터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문제인 대통령, 윤석열 당선인. / 뉴시스
왼쪽부터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문재인 대통령, 윤석열 당선인. / 뉴시스

 

실제로 장제원은 정치 초보 윤석열에게 둘도 없는 멘토로서 가장 화급했던 안철수와의 단일화까지 성사시켰지만 시쳇말로 한 성질하는 그로선 언젠가는 자기의 길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자칫하면 그 부하(負荷)가 다름아닌 주군에게 미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 적임자라로 철통같이 믿고 신임했던 윤석열에게 되레 정권을 넘겨주며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정치인 중에서도 장제원은 자기 논리로 무장되어 승부사 기질이 강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이를 의식했는지 모르겠지만 장제원은 최근 언론 취재에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지명받을 때 당선인께 ‘새 정부를 잘 만들어 출범시키고, 당선인을 대통령실까지 모셔드린 뒤 저는 여의도로 오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혀 윤석열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 하마평과 관련해선 일단 거리를 뒀다. 하지만 정치는 모르는 것이다.

오늘 날엔 비서만큼 그 역할과 해석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직업도 없다. 과거 같으면 단순히 뒤에서 상사와 주군을 도우며 비위를 맞추는 직책 정도로 인식돼 그 닉네임조차 무슨 가방모찌, 그림자, 복심(腹心), 문고리 집사, 무뇌(無腦), 인간푸들 등으로 붙여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비서라는 직업은 실제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 그저 도와주는 사람이 아닌 중간 관리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대학에서도 비서학이 전공으로 다뤄지고 커리큘럼 역시 국제화,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경제학, 법률학 등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외국어 실력까지 겸비케 하는 쪽에 비중을 둔다. 사정이 이러니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은 자체 CEO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비서직을 거치게 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됐다. 조직에 대한 종합관리와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비서직만큼 효율적인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비서와 비서실장이라는 자리를 오히려 준비된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각료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국무장관을 국가비서라는 뜻의 ‘Secretary of state'라고 표현한다.

꽤 오래된 얘기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출마 당시 “참여정부의 비서실장을 받아들인 것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럽다”고 했다. 본인의 성격상 주변으로부터 ‘결코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고 평가받던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은 것이 족쇄가 돼 끝내 대선에까지 나서게 된 처지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자 박근혜 정권에서 한 때 히어로로 등장했던 김성주는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세계 역사에도 없다”고 맞받아쳐 한동안 화제가 됐다.

비서라는 지위는 이런 것이다.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도 있고 정반대일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선 정치와 경제계에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비서라는 직업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맞춰 꼭 등장한 말이 있다. “비서는 비서일 뿐이다.” 결국 이 말은 비서의 역할과 능력이 아무리 중요하고 출중하더라도 그 경계와 한계는 반드시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장제원의 향후 운명은 어떻게 될까. 현재를 기준할 때 곧 퇴임할 문재인 대통령보다도 지지도가 떨어지는 윤석열 당선인의 성공을 원한다면 답은 분명해졌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겠다면서 자신을 키워준 대통령에까지 각을 세워 권좌에 오른 윤석열이 역시 강성 이미지의 장제원을 계속 껴안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국민통합과 화합을 국정의 첫 과제로 꼽는 새정부로선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곧 출항할 윤석열호는 거친 바람을 맞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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