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대형매장 논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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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대형매장 논란 유감
  • 한덕현 발행인
  • 승인 2022.04.1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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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청주에 대형매장을 유치할 것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지경이 됐다. 과거,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만약 후보들이 이런 공약을 내놨다면 선거는 하나마나였을 것이다.

제발 나를 떨어뜨려 달라고 호소하는 격이니 말이다. 어쨌든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몇 몇 후보들이 무슨 대형유통센터니 복합쇼핑몰이니 하는 것들을 들여오겠다고 공약하는 모습을 보면 시대는 분명 변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광주에서 대규모 쇼핑몰 유치를 공약했다가 한동안 논란을 빚은 것만 봐도 그렇다.

하루 시간을 내어 지인과 함께 대전 신세계와 원더랜드를 방문한 이유가 있다. 주변사람들이 여러 번 얘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과연 시설이 어떻길래? 하는 호기심이 더 컸다. 곳 곳을 살피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눈요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벅찼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몇몇 아는 사람들과 조우한 걸 보면 소문대로 이 곳을 찾는 청주사람들이 많은 듯 싶다.

두 곳이 최근에 들어선만큼 각종 시설과 먹거리, 구경거리가 역시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았다. 넓은 공간개념과 첨단의 대형 아쿠아리움 등 등...많은 부분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것으로 끝이다.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오히려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갑갑함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인공,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아날로그 마인드의 객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왜 사람들이 이 곳으로 몰려들까 하는 의문이었다. 단순히 쇼핑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방문객들이 대개 전가족을 동반한 것을 보면 쇼핑보다는 휴식이나 레저, 한 마디로 쉬면서 놀고 즐기러 온 측면이 크다고 여겨졌다. 그런 공간을 사람들은 바라는 것이다.

어느 업종보다도 게걸스럽게 돈을 좇는 매장유통업은 생명의 주기가 짧다. 70년대에 서울 신신백화점과 화신백화점은 그야말로 고급 소비자들의 순례코스가 될 정도로 위상을 자랑했지만 오래전 폐업으로 지금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쉽게 말하면 이의 후손들이 끊임없이 변신하여 오늘날 국내를 대표하는 대형매장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스스로 알아서 자기영역을 넓히고 돈을 벌어가는 대형매장의 유치를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공약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 것들은 돈이 되는 곳이라면 알아서 기둥을 박고 빨대를 꼽는다. 지역의 사정을 고려해 자치단체가 행정력으로 억제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다.

물론 대형매장의 입주는 곧 지역 소상공인과 전통재래시장에는 정도를 떠나 당연히 타격이 된다. 하여 지역과의 상생을 고민하는 것은 이제껏처럼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오로지 찬성과 반대라는 흑백논리로만 이 문제를 풀어가는 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게 중론이다. 의사결정의 민주적인 잣대를 감안하더라도 100만 도시를 바라보는 청주에 대형매장의 수요층이 폭넓고 확고하다는 점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온라인 쇼핑시대 아닌가. 코로나로 인한 사회변혁은 유통분야에도 획기적 변화를 안겼다. 냉정하게 따지면 대형매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청주의 지역경제에 별 도움이 될 리도 없지만, 안 들어선다고 해서 지역의 골목상권이 크게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다. 대형매장 입주를 곧바로 지역상권의 폭망과 연계시켜 얘기하려는 관성은 이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유명한 에른스트 슈마허는 죽은지 45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환경 운동사에서 최고의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경제 성장이 아무리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환경 과 인간성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다면, 성장지상주의는 선(善)이 아니라 오히려 성찰과 반성의 대상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경제 구조를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것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방안은 '작은 것'으로의 추구이고 바로 이 것이 인간적 삶의 단초라고 했다.
 

경기 고양시 한 실내대형복합쇼핑몰. / 뉴시스
경기 고양시 한 실내대형복합쇼핑몰. / 뉴시스

 

그가 ‘작은 것’을 꺼내들며 기술과 기계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나아갈 것을 역설했다고 해서 무작정 반대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면서 살아갈 수 없듯이, 과학기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면서 대신에 “과학의 발달과 방향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마허의 이같은 이념을 최근 지역에서 공방을 빚고 있는 대형매장 문제와 결부지어 해석하면 답은 분명해진다.

속도와 부피만을 키워가는 대형매장이 아무리 사람들을 유혹한들 전통시장의 우거지 해장국과 칼국수 집이 영영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의소비 행태에는 늘 다름이 있기 마련이고 그 것이 세대차이, 아니면 빈부의 격차 때문이든 서로가 이를 폄훼하거나 업신여길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부산을 여행할 때 해운대의 초고층 첨단 빌딩에 입이 딱 벌어지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은 감천마을과 자갈치시장의 질박한 아기자기함과 사람냄새에 더 감명을 받는다. 대형매장을 선호하는 다수의 팬덤 층이 굳이 먼 길을 마다않고 대전 신세계와 원더랜드를 찾는다면 청주에서도 이런 시설을 구체적으로 고민할 때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은 역시 절대 자비롭지 않다는 것, 아울러 세상사 또한 꼭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만 인정받지 않는다는 것, 나로서는 이러한 생각을 지난 대통령 선거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확고하게 갖게 됐다면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니 지역에 대형매장이 들어오니 마니 하는 문제는 그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고, 다만 우리는 그들이 벌어들일 돈의 일부라도 지역에 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악착같이 견제해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뿐이다.

요즘 주말 오후가 되면 청주 무심천의 인라인 스케이트장은 그야말로 해방구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 다양한 모습으로 서로 어울리고 즐기는 바람에 축제의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낮 시간대에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파리 에펠탑 주변 잔디밭에 온갖 차림의 시민들이 앉거나 누워서 여유를 즐기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오는 지방선거 후보들이 진정 지역을 위하겠다면 시대에 뒤떨어지게 대형매장 유치를 공약할 게 아니라 왜 시민들이 이처럼 작은 공간에라도 몰려들까를 고민하기 바란다. 늘 하는 얘기이지만 청주는 참으로 갈 데가 없다. 대형매장이 이런 약점을 빌미로 치고 들어오겠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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