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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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할 때
  • 한덕현 발행인
  • 승인 2022.05.0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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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9일 오후 6시쯤이면 청와대를 떠난다.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의 떠남이라서 아무래도 많은 착잡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살면서 늘 겪어 온 일이지만 익숙함과 결별한다는 건 한동안 상실감을 필히 수반하게 된다. 꼭 미련 때문만은 아니다. 또 미지(未知)의 삶을 준비한다는 설레임에는 그만큼의 두려움도 함께 하기에 그렇다. 그래도 사람이 떠나고 그 자리가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면서 세상은 달라지고 바로 이 것이 사회 진화와 발전의 단초가 되어 왔다.

바야흐로 떠남의 계절이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현 정부를 구성하던 숱한 사람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채 한 달도 안 남긴 지방선거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떠남을 채근하고 있다. 이 중에는 명예롭게 스스로 떠남을 자처해 박수를 받는 이들도 있지만 끝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리에 집착하다가 불명예스럽게 밀려나는 이들도 있다.

혼탁한 선거판에서도 스스로 물러남을 택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이들의 신선함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표를 호소하는 후보들이 제 아무리 시민을 위하고 도민들을 위한다고 해도 잘 나갈 때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이들의 진심과 참됨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치열한 선거전을 치러 당선되는 것도 힘들지만 포기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떠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은 이래서 아름답다고 했다.

새 정부의 총리,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세상은 참으로 겉과 속이 다름을 또 한 번 절감한다. 탈세, 횡령, 투기, 아빠찬스, 카드 쪼개기등 온갖 불법의 당사자들이 공정과 상식의 가면을 쓰고 국민 앞에 서 있다. 나라를 위해 “나 장관하겠다”고 말이다. 과거 같으면 낙마의 결정적 잣대가 되는 위장전입은 이젠 얘깃거리도 안 된다. 우리사회의 도덕적 기준과 관념이 그만큼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군다나 도심에 수십억대의 건물을 소유하고도 자동차구입비 몇푼을 아끼겠다고 위장전입한 ‘일탈 가족’의 가장이 우리나라 법을 다스리는 장관을 하겠다고 안달이다. 배우자가 엉뚱한 곳으로 주소까지 옮기는 일인데도 몰랐다고 발뺌한다.
 

 

본인의 결함과 부족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남의 흉만 볼 줄 아는 이들에게 나라를 맡긴다는 건 그 자체가 매국행위나 다름없다. 그래서 국민들의 걱정이 클 수밖에 없고 이 것의 실상이 차기정부에 대한 지지도 수치로써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각료 후보자들 중엔 분명 낙마하는 불상사를 간과할 수 없고 이렇게 될 경우 그들의 등떠밀린 떠남으로 인한 후유증은 곧바로 새 정부에 부하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온갖 추문에 휩싸인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윤석열 내각 첫 낙마자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본인의 실체를 고민했다면 처음부터 그 자리를 고사했어야 맞다.

역시 100세 시대의 최대 화두는 때가 되었을 때 떠남을 고민하는 것이다. 만약 나이가 들어 이런 고민을 한다면 누구는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즐기면서 사는 제2의 삶을 준비할테고, 또 누구는 형편상 생활의 전선을 벗어나지 못함을 탓하며 비록 늦은 나이임에도 새 일자리를 찾느라 노심초사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 누구든 언젠가는 현재의 삶과 결별하는 ‘떠남’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는 자신의 삶을 지속가능케 할 새로움에 대한 추구,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박제된 의욕을 다시 곧추세우고 삶의 목적을 재정립하는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선택은 당장의 안위는 줄지 몰라도 그 것이 삶의 정점이 될 수는 없다. 젊은이가 잘 나가던 직장을 내팽개치고 귀농을 택한다든가, 평생 밥 한끼를 아껴가며 힘겹게 살던 사람이 늘그막에 전 재산을 사회에 흔쾌히 내놓는 행위 등은 다름아닌 다시 ‘나’를 찾아 계속 살아가기 위한 일단 떠남의 실천일 것이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고은은 자신의 시 ‘낯선 곳'에서 이렇게 외쳤다.

“늙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산천이나 초목처럼 우아하게 늙고 싶지만 내리막길을 저절로 품위있게 내려올 수 없는 것처럼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 나이가 좋다.” 소설가 박완서가 생전 신문 기고에 남긴 말이다. 그의 나이 71세 때다. 그는 그동안 힘들게 부여잡으며 얽매였던 현실의 삶과 어느정도 별리를 준비하며 이렇게 썼다. “마음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안 하고 싶은 건 안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동안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좀 늦은 나이에 시작한 언론생할 35년, 어느덧 기자로서의 치열함과 투쟁력은 시들해지고 그 자리를 편의를 좇으려는 관성의 삶이 차지하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이제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다.

고백하건대 지난 대선의 결과와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일개 지방언론의 종사자에 불과하지만 일말의 긍지를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한계를 느끼게 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인간의 이성, 인간의 문명,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허구를 똑똑히 목격하면서 생각한 것은 이제 언론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다짐,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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