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사건들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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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건들의 민주주의
  •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 승인 2022.05.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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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야기 할 때마다 공식처럼 이야기 하는 사건들이 있다. 4·19 혁명, 5·18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 같은 사건이다. 이 사건들을 거치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교과서에 실리고 공교육에서 가르치며 시험문제에도 나온다.

그렇다고 이 사건들만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었을 리 없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도 어떤 사건들은 좀처럼 거명하지 않는다. 가령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이야기 하는 곳은 많지 않다. 전태일 열사 이야기도 흔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서울 종로5가에 있는 전태일 동상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스타그램에 가봐도 ‘#전태일동상’을 태그한 게시물은 155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뿐인가. 1991년 5월 투쟁을 이야기 하는 사람 또한 드물다. 2009년의 용산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건은 좀처럼 기념하지 않는다. 추억하지 않는다. 사건은 배제당하고 선별당하면서 일부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된다.

사건의 의미와 역할이 달라서일까. 그러다보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은 것일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사건의 의미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커지고, 반대의 경우에는 의미가 커지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다른 질문을 이어서 던져야 한다. 왜 어떤 사건에는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사건에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과 그러지 않은 사건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슈가 여럿 있다. 그 중 하나가 노동이다. 한국인들 다수가 노동자이거나 예비 노동자이거나 전직 노동자였음에도 노동의 문제에 냉담한 편이다. 언론에서도 잘 이야기 하지 않고, 언론에서 이야기해도 좀처럼 반응이 없다. 전태일 열사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 냉담한 이유다.

마찬가지로 빈곤의 문제에도 큰 관심이 없다. 빈곤의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경우는 빈곤한 개인을 불쌍하게 보여줄 때뿐이다. 보는 사람을 눈물짓게 만들 때에만 관심이 쏠리고 지갑이 열린다. 동정의 프레임만 효과가 있다. 이런 반응을 보면 한국 사회의 구성원 다수는 노동자가 아니거나, 가난하지 않은가 싶지만 그럴 리 없다. 다만 관심이 없을 뿐이다. 한국 사회는 권력의 향배나 국가의 위신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만, 실질적인 삶의 문제에는 관심이 덜하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노동자이거나 빈민임에도 스스로를 노동자와 빈민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신 중산층이나 고소득자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들의 삶을 동경할 뿐 아니라, 그들과 흡사한 라이프 스타일을 구가한다. 그들이 하는 정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에서 벌어진 중요한 논란을 살펴보면 이런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세금을 늘리지 않는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이나,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특권 카르텔 앞에서 무한정 자애로워지는 모습을 보라. 쥐가 고양이를 걱정하는 모양새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떤 사건들이 잊혀지고 지워지는 게 당연하다. 특정 사건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는 특권층의 카르텔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담장은 더 높아지고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잊혀진 사건의 위치를 바꿀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뀔 것이다. 그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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