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중성화수술 받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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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중성화수술 받은 사연
  •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 승인 2022.08.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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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 제한하기 위한 조치, 수술 후 갈기털 없어지고 귀 쫑긋 드러나

2016년 국내 어느 실시간 채팅 앱에서 갈기가 없는 사자 캐릭터를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갈기가 없어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왕위를 포기하기에 했다는 뒷이야기는 동글동글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외모의 캐릭터를 설명해냈다.

청주동물원에도 이런 수컷 사자가 살고 있다. 한때 베테랑 사육사들도 매료시켰던 멋진 갈기를 가진 먹보는 중성화수술을 받았다. 중성화수술 이후 성호르몬을 주로 분비하던 장기가 없어지자 수컷의 상징과도 같은 얼굴 주위의 갈기털이 모두 빠지고 지금은 귀가 쫑긋하게 드러났다. 예전엔 치켜 올라간 미간이 꽤나 날카로운 인상을 줬었다면 갈기가 없어진 지금은 다소 억울한 듯한 표정처럼 보인다. 물론 동물들은 몸의 언어가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사람 기준으로 사자의 표정을 해석하면 틀리기 일쑤다. 하지만 차가운 머리와는 다르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먹보가 억울해 보이는 듯한 착각을 피하기 어렵다.
 

귀를 쫑긋 세운 사자 먹보 

 

사자의 생태에서 갈기가 갖는 기능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70년대 발표됐던 한 연구는 사자가 공격당했을 때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부위인 목덜미와 배 쪽 가슴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갈기털로 덮여있다고 분석했다. 이후로 더 많은 정보가 축적되어 2000년대의 한 조사에서는 갈기로 덮인 부위를 공격당한 사자가 입은 부상이 특별히 더 치명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분석했다. 가독성 떨어지는 과학적인 결론이지만 결국 사자의 갈기가 목숨을 부지해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다만 사자의 모습을 본 따 만든 꼭두각시를 만들어 살아있는 사자들의 반응을 관찰했을 때, 암컷 사자들은 색이 짙고 길이가 긴 갈기를 가진 꼭두각시에 더 높은 확률로 관심을 보였다. 갈기가 멋진 수컷에 더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은 갈기가 없는 수컷 사자가 됐지만, 먹보와 함께 사는 도도는 여전히 먹보를 무척 사랑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왜 갈기를 포기하였는가

 

먹보는 왜 중성화수술을 받았을까. 동물원의 공간은 자연적인 동물의 행동반경을 생각하면 턱없이 좁다. 먹이 활동 등을 하기 위해 수십 킬로씩 움직이도록 설계된 신체를 가진 동물들을 자연적으로 사용하는 넓이에 가까운 크기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그 넓은 부지를 동물과 사람이 모두 안전하도록 봉쇄하려면 천정부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동물원이 동물들에게 마련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은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있고, 무료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넓이가 확보된 공간이다.

지난 3년간 청주동물원은 많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 동물 6종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현재도 2개의 공간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한 마리, 한 마리 식구가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그때마다 필요한 공간을 즉시 마련해 주기는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도 여러 가지 자원을 고려한 계획 임신을 권장하듯 동물들도 계획적으로 번식을 관리해야 한다. 계획에 없던 번식으로 귀여운 새끼가 태어나면 쑥쑥 자라 부모와 자원을 두고 금세 경쟁하게 될 것이다. 유통이 비교적 쉬운 먹이는 대부분 자라는 동안에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지만, 공간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늘 부족하다. 동물들은 가족계획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신 세워줘야 한다.

먹보와 도도는 둘이서 아늑한 사자사에서 살고 있지만 만약 식구가 늘어난다면 침상이나 장난감마저 꺼내버려야 할 정도로 좁은 공간이 될 우려가 있어 결국 번식 제한이 결정됐다. 확실하게 번식을 방지하기 위해 중성화수술이 채택되었다. 암컷은 해부학적으로 배를 갈라야 하는 수술인데, 장기 무게가 상당히 큰 동물은 수술 후 예후가 불량한 경우가 많아서 수컷인 먹보의 수술이 진행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귀가 쫑긋해졌다.

 

동물원의 부동산 정책

 

동물원의 운영에 있어서 새끼 동물의 탄생은 굉장한 효과가 있다. 새끼 동물들의 앙증맞은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새끼 동물들이 연이어 태어날 수 있도록 번식을 무분별하게 하는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기존에 기르던 동물끼리 번식을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어 선천적인 질병을 가진 채로 태어나는 동물이 늘어나고 성숙한 나이가 되었을 때 공간이 부족해 열악한 환경으로 밀려나는 동물도 많아졌다. 이제는 번식 후 보낼 수 있는 좋은 공간을 먼저 확보한 경우에만 동물의 번식을 계획하는 동물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성화수술은 암수의 생활공간을 분리하지 않고도 번식을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어서 친구들이 더 많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생식기관을 완전히 절제(절단하여 제거)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결과를 되돌릴 수 없는 수술이다. 따라서 어떤 동물의 경우 개체 수나 유전정보를 보전하기 위해 중성화수술을 실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근래에는 동물의 피임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다. 해외 열방 중에는 대규모의 피임연구센터가 운영되는 곳이 있다. 다양한 피임법을 개발하고 각 프로토콜의 효과를 분석하여 동물들의 생활 환경을 유지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주동물원도 주기적으로 동물들의 호르몬 수치를 분석하고 생식세포를 보전하는 기법 등에 관한 연구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동물들은 야생을 그리워하진 않는다. 하지만 동물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친구들이 최대한 안락한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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