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아그리투리스모의 개척자, 오인숙
상태바
한국형 아그리투리스모의 개척자, 오인숙
  • 고재열 여행감독
  • 승인 2022.09.01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원 동편제마을영농협동조합 위원장으로 농촌형 휴양지 전범 만들어

이게 가능해요? 네 가능합니다! 모두들 놀랐다. ‘한국형 아그리투리스모(농가체험 민박)’을 경험하게 해주겠다고 했더니 다들 할매 밥상을 상상한 듯 보였다. 그런데 스탠딩 바에서 수제맥주와 샤퀴테리(수제 육가공품)가 나오자 다들 ~’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감탄은 숙소에서도 이어졌다. 지리산 능선을 닮은 숙소의 지붕 선과 둘레길을 형상화 한 긴 회랑에 12개의 방이 가지런히 열을 맞춰 배치되었다. 모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방에는 고슬고슬한 침구가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빔프로젝터 등 컨퍼런스에 필요한 시설까지 갖춰진 식당은 오픈형 주방으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우리 정자는 멀리서 보았을 때 멋있는 정자가 있고 그 정자에서 본 먼 곳의 풍경이 아름다룬 정자가 있는데 이 숙소는 후자에 가깝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냥 마을안에 자리 잡은 모던한 집으로 보이는데 숙소에 들어서면 안온한 풍경 속에 하나의 정물이 된 기분이다. 풍요로운 논뷰를 즐기며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다.

 

오인숙 전 남원 동편제마을영농협동조합 위원장
오인숙 전 남원 동편제마을영농협동조합 위원장

 

가족 모두가 개발자

 

처음 휴락을 보았을 때는 위치가 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딱 봤을 때 풍경이 좋다 싶은 곳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휴락은 동편제마을 언저리에 논과 밭, 논과 마을, 논과 숲의 경계에 있었다. 마을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간섭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원경은 좋았지만 근경은 다소 산만했다.

그런데 이곳을 예닐곱 번 드나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휴락은 독특한 공간감을 선사했다. 마을의 일부이면서도 마을과 적당히 분리되어 있었다. 사계절의 변화를 휴락을 둘러싼 농작물의 변화로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시골 마을이 주는 포근함이 있었다. 시골 출신인 나에게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마치 논 한가운데 있는 인도네시아 리조트들을 연상시켰다.

 

휴락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미식
휴락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미식
특별한 농가체험 민박을 제공하는 휴락

 

이 격조 있는 숙소 와 지리산의 맛을 간직한 식당 은 남원 동편제마을영농협동조합이 코로나19 기간에 구축한 농촌형 휴양지다. 그 중심에 오인숙 전 동편제마을영농협동조합 위원장이 있다. 그가 10년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올린 결과 물이다. 그가 기획해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전라북도와 남원시의 지원을 이끌어 내서 한국형 아그리투리스모의 전범을 만들어냈다.

동편제마을 휴락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히자 오 전 위원장은 다음 세대에게 위원장을 넘기고 이제는 옆에서 이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820~821일 진행한 고기에 진심인 사람을 위한 블랙투어에서 그 성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가고시마 흑돼지를 능가하는 지리산흑돼지 버크셔K로 샤브샤브와 샤퀴테리를 즐길 일행들은 도시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미식 체험이라며 엄지를 치켜 들었다.

샤브샤브는 레시피 개발을 부탁했던 메뉴라 더 애착이 갔다. 2년 전 휴락을 찾았을 때 돼지고기의 맛이 좋아서 품질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샤브샤브를 제안했었다. 흑돼지 샤브샤브는 일본 가고시마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회담했던 일본의 인기 료칸 백수관의 시그니처 메뉴이기도 하다. 지리산흑돼지 버크셔K라면 그 맛과 겨룰 수 있는 샤브샤브가 가능할 것 같아 제안했는데 이를 개발해 주었다.

지리산흑돼지 버크셔K는 오 전 위원장의 남편인 박화춘 박사가 버크셔 종을 한국에 맞게 개량한 품종이다. 박 박사는 소비자가 원하는 돼지고기의 지방과 육질에 맞게 버크셔K를 육종했다. 지방의 융점이 낮아서 국물이 탁하지 않고 단백질 근섬유가 가늘어 익혀도 퍽퍽하지 않다. 샤브샤브에 최적인 고기가 되었다.

오 전 위원장의 아들인 박자연 조아 대표는 버크셔K로 샤퀴테리를 개발했다. 샤퀴테리의 여왕으로 불리는 하몽을 비롯해 론지노 판체타 살라미 등 돼지고기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육가공품을 맛볼 수 있다. 동편제마을에 촙샵이라는 샤퀴테리 시식 매장이 있는데 휴락에 갈 때마다 밤에 샤퀴테리 파티를 벌이곤 한다. 참가자들은 도시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감각의 사치라며 감탄한다.

 

편안한 숙소+미식경험 제공

 

여행감독으로서 다양한 여행 실험을 벌이며 국내 여행의 격을 높이자는 생각에 '명품 한국 기행'명품 한국 스테이시리즈를 개발하고 있는데 휴락은 남도여행 코스를 짤 때 베이스캠프로 삼는 곳이다. 국내 여행을 3499만원 정도로 설정해서 기획하는데 마을숙소에서 잔다고 해서 실망했던 참가자들이 휴락을 경험하면 모두 기대 이상이라며 만족하곤 했다.

도시인들은 도시를 떠나 전원에 와서도 도시를 구현하고 싶어 한다. 샤워는 할 수 있어야 하고, 화장실은 깔끔해야 하고, 벌레는 방에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도시의 삶에 최적화되어 있는 현대 도시인들이 요구하는 '최소 도시'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마을 숙소는 청소년 수련 시설로나 쓸 수 있을 정도로 투박한데, 휴락은 처음부터 눈높이를 높게 맞췄다.

그래서 휴락은 소규모 워크숍에 적합한 장소를 추천해달라는 분들에게 맨 먼저 소개하곤 한다. 편안한 숙소 외에 다양한 미식 경험까지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촌에서 다양한 체험마을 사업을 벌였지만 동편제마을 휴락만큼 완성도 높은 공간과 아이템을 갖춘 곳은 드물다. 그래서 자신있게 추천하곤 했다.

오 전 위원장이 영농조합 일을 마칠 무렵 산티아고 순례길 기행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코로나19 국면이라 들어주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다녀왔다. 순례길을 완주한 그는 여행기획자로 거듭났다. ‘어게인 산티아고 in 지리산여행을 만들고 순례길에서 만난 길동무들을 초대했다.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지리산 둘레길 코스를 활용해 공식 루트와 비공식 루트(‘바래봉 둘레길등 본인이 이름을 붙여서)를 적절히 조합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추억하게 만드는 자신만의 코스를 구성했다. 스페인의 알베르게 사용 방식으로 숙소도 이용하게 해서 산티아고 순례길과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 여정이었지만 그의 섬세한 기획 덕분에 길벗들은 멋진 지리산의 추억을 담아갈 수 있었다.

고재열 여행감독
고재열 여행감독

올 가을 오 전 위원장과 코카서스 여행을 함께 가는데 다녀오면 휴락에 새로운 메뉴가 하나 더 등장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샤슬릭(꼬치구이)은 러시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돼지고기 요리 방식이다. 다음에 갈 때는 휴락에서 지리산식 샤슬릭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