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에 최초로 ‘권력’이 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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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에 최초로 ‘권력’이 등장하다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9.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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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읽기 (1)

정치고전들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새롭게 번역되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치고전 중에 단연 으뜸은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의 ≪군주론≫입니다. ≪군주론≫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30여 종 넘게 번역 출간되어 있는데, 지금도 새로운 번역서와 해설서가 계속 출간되고 있습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니콜로 마키아벨리

 

사실 ≪군주론≫은 비교적 짧은 소책자에 불과합니다. 마키아벨리 연구자들은 모두 마키아벨리 정치철학의 정수는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로마사 논고≫에 담겨있다고 말합니다. 흔히 마키아벨리는 황혼에 접어든 중세와 근대의 여명이 시작되는 중간쯤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고대 로마공화정체를 찬양하는 ≪로마사 논고≫가 고중세의 문을 닫는 마키아벨리라면, ≪군주론≫은 새로운 근대라는 문을 여는 마키아벨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군주론≫은 비록 정치에세이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정치고전의 역사에서는 혁명적 인식의 전환이 담겨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피렌체 공화정부의 외교관이었습니다. 15세기 후반의 유럽은 중세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고, 영국·프랑스·스페인 등에서는 절대군주가 등장하여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이탈리아는 로마교황청·피렌체 공화국·베네치아 공화국 등 5개 소국가로 분열되어, 대립과 외세의 간섭으로 혼란과 전쟁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피렌체의 외교관으로 수차 주변 강대국을 오간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절대국가로의 세기적 전환과 그와 정반대로 치닫는 조국의 한계, 그리고 냉철한 판단력과 원대한 이상을 가진 정치지도자의 중요성을 명확히 목도할 수 있었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군주론≫을 저술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정치()을 쓰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전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정치()를 주장합니다. 고중세에 정치()는 다른 어떤 것에 종속적인 것이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학이란 윤리학의 일부 혹은 그의 연장으로, 그들은 정치를 정의·좋음·훌륭함 등의 실현으로 보았습니다.

중세에 정치학이란 신학의 부속물로, 정치란 신의 계시의 실현이고 정치제도는 종교체제의 하부구조로만 인식되었습니다. ≪군주론≫은 이러한 윤리와 종교에 예속된 정치()의 독립 선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철학적·종교적 프리즘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 정치 현실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군주에 관한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밀쳐두고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을 고려하겠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종국에 권력의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즉 권력의 획득·보전·확대라는 관점으로 정치를 이해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를 권력의 문제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은 지금은 흔한 것이지만, 당시에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정치를 권력의 문제로 이해한 최초의 인물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 이전에도 많은 현실 정치인들은 정치를 응당 그렇게 이해하고 실천했습니다. 다만 정치사상의 역사에서만은, ≪군주론≫이 정치를 권력의 문제로 이해하고 체계화한 최초의 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현실 정치인들이 이미 다 알고 있고 또한 그렇게 행동해왔지만, 그러나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 정치의 실체를 공공연하게 내보이고, 오히려 그것을 정치의 본질이라는 수준으로까지 끌어 올린 것입니다.

 

정치는 권력의 문제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군주는 오직 권력의 획득·보전·확대라는 관점에서 합리적·계산적 숙려에 따라 정치를 운영해야 합니다. 즉 군주가 어떠한 정치적 선택을 하거나 어떠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것인가 고민할 때는, 오직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에 도움이 되는가 여부에 따라야 합니다. 자신이 평소 갖고 있던 도덕적·종교적 규범이나 개인적 감상·충동에 따라서는 안 되고, 대중이나 호사가들의 자신에 대한 평판이나 기대에 얽매여서도 안 됩니다.

 

군주는 짐승의 방법(힘에 의지하는 것)과 인간의 방법(법에 의지하는 것)을 모두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짐승의 방법 중에는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합니다.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에,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합니다.군주는 특히 신생 군주는 좋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처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때론 배신하고, 때론 무자비하고, 때론 비인도적으로 행동하고, 때론 신앙도 무시하도록 강요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운명과 상황이 변함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그것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바꿀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악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중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력 기반을 파괴할 정도의 악덕으로 인해서 악명을 떨치는 것을 피하고, 가사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일지라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그러나 악덕 없이는 권력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을 보존하기 어려울 때는 그 악덕으로 악명을 떨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일이 오히려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고,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일이 오히려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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