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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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 승인 2022.10.1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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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현대인이 접하는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매일 국내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소식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이다. 단칸방에 누워서도 전 세계의 소식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면서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있다.

뉴스만이 아니다. 애플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하면 수많은 해외 대중음악까지 손쉽게 찾아들을 수 있고, 넷플릭스/디즈니/애플TV/왓차/웨이브 같은 OTT에 가입하면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를 무제한 볼 수 있다. 그 돈이 아까우면 유튜브에 올라온 무료 콘텐츠를 보면 된다. 그것도 귀찮으면 틱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온 숏폼 콘텐츠들이 기다리고 있다. 길어봐야 30초 정도인 영상들은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고, 연달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제 현대인들은 심심할 겨를조차 없다.

300년 전의 한국인들은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이렇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했을 리 없다. 대부분은 동네에서 오가는 소식만을 이웃들과 나눴을 것이다. 어쩌면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또 하고, 그제 들은 이야기를 내일 또 들을지 모른다. 예술체험 역시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해외의 소식 같은 건 거의 듣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한국인이 더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산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다만 지금처럼 막대한 정보를 소화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이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당장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잠시 훑어보기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누군가는 근사한 여행을 즐기고 있는데, 나는 컴퓨터 앞에서 밀려드는 일을 쳐내느라 헉헉거리고 있지 않나. 누군가의 기쁜 소식에 좋아요를 누르자마자, 누군가는 아프다고, 누군가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슬퍼요를 누르고 타임라인을 내리면 누군가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 에피소드가 보인다. 웃겨요를 누르고 나면 분노가 치미는 사건 사고 소식이 이어진다. 이제 희노애락의 감정 가운데 어떤 것도 오래 가지 못한다. 모든 감정은 초단위로 휘발된다. 싸이의 옛 노래처럼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한다.

시인이자 교육운동가인 김진경은 자신의 책에서 삼십년에 삼백년을 산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하고 물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300년 동안 일어난 변화를 30년 만에 해치운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혼란스러움과 고통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금 그 질문을 이어서 묻는다면 잠시도 순간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도착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감정이나 사건을 곱씹을 여유가 없다. 우리는 KTX, 혹은 LTE 속도의 인터넷만큼 빨리 수많은 이들의 사연과 국내외의 사건을 지나쳐야 한다. 그래야 겨우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는 영화 <헤어질 결심>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야기가 화제더니, 이제는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노래나 영화, , 드라마의 인기 역시 순식간에 치솟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진다.

세상의 좋고 재미있는 것들을 쫓아가면서 즐기는 것도 좋고, 여기저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한 후 관심과 의견을 보태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소식에 짓눌려 있다. 지식의 과부하, 정보의 과부하, 감정의 과부하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소셜미디어에서 탈퇴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가끔은 의도적으로 단절하고 고립될 수는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가진 게 많아야 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해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시간만큼은 남겨두어야 한다.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이기 위해서.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자유로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이건 국가나 사회가 해줄 수 없는 일이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고단하고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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