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도 건강검진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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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도 건강검진을 받는다
  •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 승인 2022.11.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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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가을에 적합, 청진기로 소리 들어보고 혈액 및 영상검사까지

건강검진 대작전

가을이 짙어지는 요즘 청주동물원은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물들어 쾌청한 하늘과 겹쳐 형형색색의 보석을 뿌려놓은 듯 화려하다. 선선한 가을은 동물들의 건강검진을 실시하기에 적합하다. 동물들의 자세와 표정으로 건강 상태를 읽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만져보고 청진기로 소리도 들어보고 냄새도 맡아야 더 많은 걸 알 수 있다. 거기다가 혈액검사와 영상검사까지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수많은 검사를 통해 얻어낸 여러 단서를 확보해도 간혹 선제적인 건강관리에 구멍이 생기지만, 표정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훨씬 꼼꼼한 관리가 가능하다. 오염되지 않은 피가 3ml 있으면 몸속 장기들의 기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효소를 수십 개 측정할 수 있다. 피검사는 말을 하지 않는 동물 친구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두루미 건강검진을 위해 혈액을 뽑는 장면.
두루미 건강검진을 위해 혈액을 뽑는 장면.

 

어릴 때 주사 맞는 일은 일생일대의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분명히 주사 맞기 싫다고 단호하게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어른들은 양보가 없었고 그렇게 난 다양한 항체를 가진 건강한 어린이가 되었다. 필자의 절친한 친구 중엔 얼굴이 유독 하얀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성인이 된 후로도 바늘에 공격당해야 하는(피를 뽑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산소 같은 여자처럼 얼굴이 하얗다 못해 빛이 나는 친구였다. 애석하게도 논산훈련소를 다녀온 이후론 그런 극적인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바늘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다.

동물들을 보면 주사기를 대하는 자세가 조금 다르다.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낼 때도, 주사기를 개봉하고 약을 뽑을 때도, 주사기에 들어간 공기를 제거하다가 약이 한 방울 튀어 올라도 동물들은 공포스러워하거나 불안감을 키우지 않는다. 바늘이 진입할 때 따끔한 일순간을 제하면 동물들은 불편감을 크게 표현하지 않는다. 주사 부위를 소독할 때 알콜 적신 솜으로 닦아주면 역한 냄새와 차가운 촉감에 동물 친구들은 십중팔구 깜짝 놀라는데, 주사를 맞을 땐 의외로 많은 친구들이 침착하다. 아무래도 주사기는 통증보다는 공포의 대상에 가까운 듯하다(다만 주사기에 담긴 약에 따라서 통증이 커지기도 하지만 논지에서 벗어나므로 길게 얘기하지는 말도록 하자).

 

마취의 굴레

 

효율적으로 사냥하도록 설계된 신체를 가진 맹수 친구들은 체중이 30kg만 돼도 상당한 위험을 품고 있다. 유대관계가 끈끈한 사육사라 하더라도 반드시 물리적으로 공간이 분리돼 있어야 한다. 동물의 습성이나 신체언어에 대한 학습을 충분히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예외가 있기 때문에 공공의 안전을 위해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이런 분리 원칙엔 예외가 있는데, 완전히 마취된 동물은 문을 열고 들어가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맹수들은 마취를 이용해 다가가 직접 만지고 청진하고 냄새도 맡는다. 그리고 혈관을 찾아 피를 뽑고 번쩍 들어 x-ray 영상도 촬영한다. 이렇게 건강검진을 실시하면 이 친구가 마취를 해도 안전한 건강 상태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마취는 사실 굉장히 위험이 따르는 처치이다. 자세와 표정만 보고 마취를 실시해야 하는 동물원 수의사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판단 중 하나다. 게다가 마취에 사용되는 블로건은 일반 주사기와 다르게 꽤 통증이 강해 꼭 필요할 때만 마취를 실시하는 편이다.

 

훈련, 긍정강화훈련

 

현대의 세련된 동물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불필요한 노동 대신에 긍정강화훈련이라는 훈련법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긍정강화훈련이란 특정 자극을 통해 어떤 행동을 강화하거나 감소시키는 훈련 원리를 지칭하는데, 자극을 더해(positive) 어떤 행동을 증가/강화(reinforce) 하는 형태, 긍정강화가 가장 인도적인 방식으로 여겨진.
 

표범
표범

 

예를 들자면 강아지가 앉을 때마다 간식(자극을 더함)을 줬더니 앉는 행동을 기뻐하고 자주 하게 된다(행동 강화)는 훈련 방식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 보상은 강아지도 앉게 하는 것이다.

필자의 강아지는 무척 잘 앉는다. 반대로 가장 폭력적인 방식은 특정 자극을 더해 어떤 행동을 감소시키는 긍정약화인데, 물리적인 체벌을 통한 행동 교정이 흔히 볼 수 있는 예시다(필자는 이 훈련법의 명명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자). 훈련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나 개체의 차이에 따라 훈련 방식을 선택하거나 훈련을 일정 기간 중단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훈련에 쓰이는 기본적인 개념이자 원리이다.

아무튼 이런 훈련을 통해 건강 상태가 의구심 드는 친구들도 부담스러운 마취 없이 자세한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게 현대 세련된 동물원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표이다. 훈련에 협조적이고 보상에 반응이 좋은 친구들은 긍정강화방식으로 훈련할 수 있다. 우리 친구들 중엔 반달가슴곰과 표범이 진도가 가장 빠른데, 협조적이고 학습 능력까지 훌륭한 친구들이다. 신뢰가 다져진 사육사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처치자가 무척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동물원 근무 수의사에게 매우 특별하게 주어지는 상황이다.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수의사의 여러 업무 중 동물들과 손잡고 들판을 달리며 하하호호 웃는 내 청사진에 가장 근접한 업무가 바로 이 긍정강화훈련이다. 우선 상대적으로 편안한 동물들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는 즐거움까지는 아니지만, 큰 부담 없이 혈액도 뽑고 주사 투약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호랑이 기운이 솟는다. 게다가 마취가 꼭 필요한 처치나 수술을 실시할 때도 마취에 앞서 실시할 수 있는 검사도 늘어나고 마취약도 통증이 덜 강한 주사기로 투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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