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돌 대신 투표용지를 손에 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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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돌 대신 투표용지를 손에 쥔 노동자들?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12.0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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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슈타인, 로자, 레닌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논쟁 (1)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당시 국가기구는 상층계급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선진국이었던 영국에서도 1832년 이전에는 귀족과 대부호에게만 선거권이 인정되었고, 1832년 선거법 개정으로 자본가 계급에도 선거권이 인정되었지만, 노동자 계급에게는 선거권이 전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 계급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지 하나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기존 사회의 폭력적 전복, 즉 혁명뿐입니다. 시가전·폭동·테러는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 항목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주어진 유일한 저항 방법이었습니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1850∼1932)와 로자 룩셈부르그(1871∼1919)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1850∼1932)와 로자 룩셈부르그(1871∼1919)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면서(마르크스는 1883년 사망) 유럽 각국의 정치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고, 노동자 정당이나 사회주의 정당이 합법화되고, 제도권 정치로 진입한 이들 정당들은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최대 정당이 될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심각한 딜레마를 주었습니다. 노동자 계급에게는 조만간 제도적 절차로(짱돌이 아닌 투표용지로) 더 나은 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지만, 제도권 정치 밖에서의 폭력적 계급투쟁과 혁명을 선동하여 왔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심각한 이론적·실천적 문제를 야기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20세기로의 전환기에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부에서 있었던, 베른슈타인과 로자, 레닌 간에 있었던 마르크스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새로운 이행전략의 필요성에 대한 세기적 논쟁입니다.

 

투표권을 가진 노동자들

 

논쟁은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베른슈타인은 1899년 출간한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당의 과제≫에서, 자본주의 붕괴를 전제로 한 혁명적 이행전략은 폐기되고 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를 통한 사회개혁 전략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합의와 연대의 구축이나 다양한 영역에서의 점진적인 개혁을 통하여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치환경의 변화 특히 보통선거제 도입이 이러한 이행전략의 수정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당연합니다. “보통선거권은 민주주의의 한 요소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마치 자석이 흩어진 쇳조각들을 끌어모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민주주의 다른 요소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보다 느리게 진행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작동한다. 그리고 사회민주당이 이것의 작동을 촉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교의를 보통선거권의 토대인 민주주의 위에 세우는 것은 물론 자신의 전술을 그것과 일관성 있게 맞추어 채택하는 것이다그러면서 베른슈타인은 현실의 민주절차와 점진적 개혁이 아닌, 일거의 사회주의로의 폭력적 전환은 오히려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여 종국에 한 계급·정당·분파의 독재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로자(Rosa Luxemburg)는 이러한 베른슈타인의 주장(이를 수정·개량주의 노선이라고 부름)을 반박하기 위하여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1899)를 출간했습니다. 그녀는 현실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라는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기에 그것이 아무리 민주적이라고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계급지배의 한 형태에 불과하고, 그것이 아무리 개혁적이라고 할지라도 계급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며, 민주적·점진적·평화적 개혁으로는 사회주의로의 전환이 불가능하고 오직 그 토대인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혁명을 통해서만 사회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현실의 민주주의와 그를 통한 개혁 활동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가 주장하는 것은 현실의 민주주의와 개혁 활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권력 장악과 사회주의적 목표의 한 계기로 포함될 때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운동의 운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민주주의 발전의 운명이 사회주의 운동에 연결되어 있다.… 민주주의를 강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사회주의 운동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기를 바래야 하며, 따라서 사회주의를 위한 노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포기하는 것이다.”

 

베른슈타인 vs 로자 vs 레닌

 

베른슈타인과 로자 간의 논쟁이 시작된 후 2년 정도 지난 1902년 레닌(Vladimir Ilich Lenin)은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이론의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기적 기념비라고 할 수 있는 저작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사회주의 정당의 새로운 조직과 운영 원리입니다. 그는 사회주의 정당은 대중이나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되고, 지식인·학생·선진적 노동자 등 소수의 직업혁명가들(이들을 노동계급의 전위前衛라고 함)로 구성되고, 상명하복 등의 엄격한 규율이 있고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러한 레닌의 새로운 당 전략은 차르 정부의 혹독한 탄압과 비밀경찰이 활동하는 러시아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레닌이 반드시 러시아적 특수성만을 고려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때때로 노동계급과 당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의 기본적 논조는 대중이나 노동계급보다는 전위당을 우선시하고, 대중이나 노동계급은 전위당의 계획대로 조직되고 지도되고 동원되어야 한다고 주장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레닌의 전위당 이론에 대하여 베른슈타인은 물론 레닌과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로자도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레닌의 전위당 이론은 자코뱅·블랑키적이라며, 이는 종국에 반민주적 권위주의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는 실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거치면서, 베른슈타인의 개혁적 사회주의 노선과 로자·레닌의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은 명백히 구분되어, 전자는 사회민주주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라는 이름으로, 후자는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베른슈타인은 현대 북유럽과 서유럽의 주류 정치노선 중 하나인 사회민주주의의 시조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 합당한 역사적 평가를 전혀 못 받아왔습니다. 그와 정반대로 베른슈타인은 레닌·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그 이후 1백여 년 동안 지적 속물·자본에 매수된 자·사회주의의 배신자로 조롱과 야유만 받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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