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의 공공화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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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노동의 공공화를 향하여
  •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 승인 2022.12.14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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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오월의 아침
강아지풀 꽃이 막 피어나
복슬복슬하다.

꽃 보고 골내는 사람은 없지” 하시던
어르신 얼굴이 떠오른다.
한 움큼 꺾어 든
내 얼굴에 미소 가득
들뜬 발걸음이 바쁘다.

작은 유리병에 꽂아 식탁 위에 놓으니
더욱 귀엽다.
! 가락풀이네!”
반기는 어르신 얼굴에도 미소 가득

한 가닥 뽑아 들고
설게 구멍에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나도 한 가닥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큰놈이 물려 나오면 기분이 좋지
어르신 식탁은 서산 앞바다 갯벌판
오늘 점심은 튀길까요? 볶을까요?”
유쾌한 한나절

무심한 세월은 어르신 기억을
빼앗아 갔지만
지난날의 기억을
남겨두어서 다행이다.

오늘 밤도 서산으로 달려가
설게 잡는 꿈을 꾸세요.
꿈속에서는 꼭 큰놈으로 잡으세요.

<큰놈으로 잡으세요>, 오귀자


이것은 요양보호사로 방문요양을 하시는 오귀자 님이 지으신 시의 전문이다. 그는 이 시로 2021좋은돌봄 인식개선 글쓰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의 느낌을 울컥하다는 말로 표현했다.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어르신 돌봄이라는 구체적 맥락 안에서만 공감되는 내용이라서 목이 메었다는 것이다. 이 한 편의 시 안에는 그가 돌보는 93세 인지 장애증이 있으신 어르신과의 하루하루가 녹아있다.

재가방문요양에서 요양보호사는 기본적으로 식사 수발에 운동, 병원 동행, 말벗 되어 드리기 등을 한다지만 요양보호사들의 자기 서사에 따르면 이 하는 일의 목록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이 목록의 길이는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의 안전한 일상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가에 달려있다.

목욕과 머리 자르기, 머리 염색하기부터 시작해서 약 챙기기, 질환에 따른 음식물 신경 쓰기, 보일러나 콘센트 점검하기, 어르신이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를 노트에 다 받아적은 후, 시간이 날 때마다 그것을 다시 읽어드리기, 장 봐오기, 강아지풀이나 단풍낙엽 등 재료를 준비해가서 인지치료 프로그램하기 등등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오귀자 님이 쓰신 글들에서 알게 된 이 활동들을 의도적으로 일부 나열해보았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이 활동들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시에서 오귀자 님이 행하신 돌봄의 구체적 장면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나는, 그의 울컥하다는 말을 듣고 함께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봄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돌봄 종사자들이 어떤 일을 어떤 전문성으로, 어떤 책임과 응답의 태도로 하는지 사회구성원들이 필수 시민 지식으로 알아야 할 필연성은 그만큼 더 커지고 있다. 시민들이 이 을 심화하고 확산해야 돌봄의 공공성을 강하게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서울시는 각종 형태의 복지서비스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돌봄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상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2023년 예산 168억원 중에서 100억원을 삭감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2019년에 세운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을 안착하기도 전에 없애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민들 하나하나가 경각심을 갖고 돌봄사회로의 전환이 한 뼘씩이라도 진행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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