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의 추억과 ‘공리주의’
상태바
식인의 추억과 ‘공리주의’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2.12.15 15: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사회는 없다. 정치는 다수를 만족시키면서도 소수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며 나온 사상이 공리주의(功利主義)’. 최대 다수가 최대의 행복을 느끼면 그것이 곧 선()이다.

그러니 공공의 이익 추구에 반()하거나 다수가 불편을 느끼는 소수의 바람은 이기주의로,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한다. 최근 마무리된 화물연대의 파업도 그렇다. 차주(車主)니까 사장님이라거나 매출만 보고 귀족노조라고 규정하며 애원을 외면했다.

1500만원 가까운 수입이 들어왔다고 치자. 하루 최소 10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내고 기름값으로 절반이 나간다. 할부금도 300만원 안팎이니 차 떼고 포 떼면 근근이 먹고살 정도였다. 목돈으로 살 수 없으니 할부로 산 것이고, 할부가 끝날 때쯤이면 다시 차를 사야 하니 할부금은 영세 자영업자의 월세와 다르지 않았다.

안전운임제 이전의 실수익은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인 시간당 5000원 남짓이었단다. 그들은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시간, 심지어는 생명과 돈을 맞바꿨던 셈이다. 그나마 안전운임을 적용하니 시간당 임금이 세 배 가까이 올랐다. 그런데 안전운임에 일몰을 적용한다니 차를 세운 것이다. 시멘트, 수출화물에만 적용하던 안전운임을 범위를 더 확대하자고도 주장했다.

일몰 3년 유예를 먼저 제안했던 정부와 여당은 차를 멈춰 세우자 낯빛을 바꿨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이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까지 나서서 유례없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고 형사고발, 허가 및 자격 취소, 유가보조금 중단 등으로 전방위 압박했다. 언론들은 업체가 계산한 출하 지연 총금액 35000억원을 피해액으로 보도했다.

화물연대가 사실상 백기를 든 다음에도 진행 중인 조치를 멈추지 않겠단다. 심지어는 피해기업의 손해배상소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일몰 유예는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런 과단성은 집단이익에 환호하며 지지를 보내는 여론에 기반한다. 실제로 강경 대응 이후 국정 지지도가 상승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며 1884년 발생했던 미뇨네트호 사건이 떠오른다. 영국 무역선 미뇨네트호가 난파되면서 선장 등 네 명은 구명정을 타고 탈출했다. 물과 식량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다수가 살기 위해 고아에, 가장 나이가 어리고 병약했던 한 명을 죽여 인육을 먹었고, 나흘 뒤 다른 배에 의해 구조됐다.

식민지 개척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아프리카나 아시아는 식인하는 야만인들의 땅이라고 선전하던 터라 재판에서도 선원 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들은 6개월 뒤에 이러저러한 사정을 고려해 풀려났다. 다수를 위해서 희생해도 된다는 공리주의가 만연해, 영국 국민 다수가 이들의 식인을 용인했기 때문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